U-23 축구, 이(李)가 없어도 아시아는 씹는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05 10:00
  • 호수 15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회 연속 올림픽 진출 도전하는 U-23 대표팀, 이강인 차출 막판 조율 실패

새해 한국 축구의 문은 김학범호(號)가 연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축구 국가대표팀은 1월8일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격년제로 열리는 U-23 챔피언십은 올림픽의 해에는 올림픽 예선까지 겸한다. 원래 아시아 지역에는 4장의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지만,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함에 따라 3위 이내(일본이 3위 내 입상 시 4위까지)에 들어야 한다. 한국 남자축구는 지금까지 올림픽에 10회 출전했다. 특히 1988년 이후엔 한 번도 끊기지 않고 8회 연속 본선 무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연속 출전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김학범호는 이 기록을 9회 연속으로 늘려야 하는 지상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지도력을 증명한 김 감독은 올림픽까지 재신임을 받은 뒤 1년간 이 대회에 몰두했다. 지난해 3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U-23 챔피언십 예선에서는 호주와 한 조에 속하는 불운과 이틀 간격으로 치러지는 살인 일정 속에서도 전략적 운영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하반기는 소집훈련과 평가전, 두바이컵 참가로 옥석 가리기에 집중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결정적 한 수’ 사라진 김학범호의 고민

하지만 불운은 예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챔피언십 본선에서도 조별리그부터 우즈베키스탄·이란·중국을 상대한다. 한국이 속한 C조는 이번 대회 가장 힘든 조라는 평가다. 지난 대회 챔피언 우즈베키스탄은 수년간 23세 이하 연령대에서 아시아 최강 전력을 유지 중이다. 이란은 어느 연령대를 막론하고 아시아권에서 압도적 피지컬을 자랑하는 난적이다. 중국은 최근 각급 대표팀 부진에 대한 명예회복 의지가 강하다. 김 감독은 “예선부터 한 치의 긴장도 놓을 수 없다. 토너먼트도 마찬가지다. 아시아권 팀들의 전력 차가 상당히 좁혀졌다”며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실제로 2년 전 김봉길 감독이 이끈 대회에서 한국은 4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 기준이라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성적이다. 내용도 나빴다. 조별리그에서 2승1무를 기록했지만 매 경기 고전했다. 4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대4 충격패를 기록했고, 3~4위 결정전에서도 카타르에 0대1로 패했다.

지난해 12월10일부터 강릉에서 보름간 최종 소집훈련을 진행한 김학범 감독은 23인 명단을 꾸린 뒤 12월28일 베이스캠프를 차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떠났다. 그런데 현지에서 준비한 두 차례 평가전 중 첫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전이 경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폭우로 취소됐다. 경기력과 전술 점검이라는 목표가 흔들리며 대회 전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그 이상으로 뼈아픈 것은 목표로 했던 최상의 선수 구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김 감독은 U-23 챔피언십에 나설 23인 명단 발표 당시 22명만 우선 확정했다. 나머지 한 자리는 해외파 선수의 합류가 확정되지 않아 비워놓은 상태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28일 출국 당시에도 그 선수가 발표되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 감독은 “나 역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U-23 대표팀은 A대표팀과 달리 FIFA가 차출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우 소속팀과의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

김학범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가 물밑에서 협상한 최우선 대상은 이강인(발렌시아)이었다. 한국을 상대로 밀집수비를 기본 전략으로 삼는 상대를 깨기 위해서는 정교한 왼발을 앞세운 이강인의 개인전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제 만 19세에 접어든 이강인이지만 이미 U-20 월드컵에서 월반 경험이 있고, 성인 무대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증명한 만큼 이번 대회에서도 경기력 우위는 확실했다. 차출만 된다면 신의 한 수가 될 만했다.

하지만 이강인 차출은 결국 불발됐다. 축구협회는 작년 12월30일 남은 한 자리에 FC서울 소속의 측면 자원 윤종규를 발탁한다고 발표했다. 김학범 감독과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는 이강인 차출을 위해 지난해 11월에 직접 발렌시아를 방문해 협조를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이강인은 올 시즌 로테이션 방식으로 기용되는 중이고, 발렌시아의 다른 부상 선수들이 12월을 기점으로 차례차례 복귀해 공백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강인은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올림픽 동메달 혹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한 병역 혜택이 필요하다.

변수는 지난해 11월말 당한 부상이었다. 이강인은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을 다쳤다. 최근 치료와 재활을 마쳤지만, 발렌시아는 준비기간 없이 실전에 나설 경우 부상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 선수 보호 차원의 차출 거부였다. 국내에서 연말휴가를 보내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이강인도 아쉬움을 안고 발렌시아로 복귀했다.

백승호(다름슈타트)도 함께 접촉했다. 이강인과 달리 공격 2선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지만, 조율 능력이 좋고 정확한 패스가 장점이어서 필요한 옵션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백승호의 차출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11월 A매치 기간에 열린 두바이컵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의 협조를 얻어 이미 A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를 소집한 바 있다. 하지만 백승호는 다름슈타트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비중이 높아지며 소속팀이 일찌감치 차출을 반대했다. 결국 유럽파 중에서는 정우영(프라이부르크)만 이번 대회에 나선다.

2019년 12월28일 김학범 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인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전지훈련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 뉴시스
2019년 12월28일 김학범 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인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전지훈련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 뉴시스

다양한 2선 옵션으로 밀집수비 깬다

이강인 차출에 실패했지만 김학범 감독은 플랜A를 앞세워 대회에 돌입한다. 핵심은 2선 활용이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열린 친선경기를 통해 김 감독은 2선에 개인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를 다수 배치해 측면에서부터 상대를 파괴하는 전술을 선보였다. 김대원(대구), 이동준(부산), 이동경(울산), 엄원상(광주)은 체격 조건은 뛰어나지 않지만 기술과 속도를 두루 갖춘 선수들이다. 이동경과 이동준은 예선에서 김학범호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김대원은 대구 돌풍의 주역이고, 엄원상은 정우영과 함께 11초대 준족으로 역습 전략을 책임진다.

최전방에는 특징이 다른 두 명의 스트라이커를 번갈아 세운다.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오세훈(상주)은 높은 타점과 연계 능력을 이용해 2선 활용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또 다른 스트라이커 조규성(안양)은 K리그2에서 국내 선수 최다골을 기록할 정도로 득점 감각이 뛰어난 선수다. 상대 분석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타입으로 투입할 수 있다. 수비도 포백과 스리백을 모두 준비한 상태다. K리그1 우승을 이끌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송범근(전북)이 최근 골키퍼진에 합류해 골문을 지킨다.

조직력 끌어올리기에 집중한 김학범호는 조별리그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르는 걸 1차 목표로 삼는다. 조 2위로 갈 경우 지난 대회 준우승팀이자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박항서 감독이 있는 만큼 조기 격돌은 피해야 한다는 게 토너먼트 기본전략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