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광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1.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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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ㅣ장석주, 송희복 엮음ㅣ글과마음 펴냄ㅣ204쪽ㅣ1만 2000원
ⓒ 글과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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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의 거울이며 인간이 갈구하는 이상을 향한 기록’이라거나 ‘문학은 시대를 읽는 거울’이라는 거창한 문장은 사족이다. 엄숙한 문학자를 위한 장식품일 뿐. 그저 소설은 소설, 시는 시, 산문은 산문일 뿐이다.

2017년 9월5일 초가을 햇빛이 유난히 좋았던 날, 마광수 교수의 자살적 죽음을 알리는 속보가 떴다. 각계각층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고 했다. 그 중에는 ‘그렇게 해야 자신이 의식 있는 지식인으로 포장된다’는 것을 아는 위선자도 있었다. 마광수 교수가 가장 치를 떨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군림하는 식자들의 ‘위선(僞善)’이었다. 위선이란 낮에는 엄숙하고 도덕적이나 밤에는 몹시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세상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며 헛기침이나 하던 어둠의 카르텔을 낯뜨겁게 작품에 드러냈던 그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공적이 됐다.

때문에 스스로를 광마(狂馬)로 칭하며 질주했던 그의 외로운 죽음을 놓고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후진 사회의 타살’이라며 비통해했다. 강준만 교수는 ‘마광수의 죄는 시대를 앞서간 죄’라는 선고를 내렸다. 어떤 문학담당 기자는 추모 기사의 제목을 ‘공공의 적이 된 천재’라고 뽑았다. ‘연세대 국문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고 하니 천재였을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는 갓 28살의 문학청년으로서 대학 국문과 교수(강사)를 맡아 소설가, 시인, 수필가, 문학비평가를 종횡무진했던 광마를 낯뜨거운(?) 뉴스 메이커로 만들었던 주역들이다. 《즐거운 사라》가 ‘건전한 풍속과 성도덕을 해치고,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외설적, 음란적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는 표현의 자유 대신 징역을 살아야 했다. 문학작품에서 대체 건전은 몇 그램이고, 성도덕은 몇 센티미터인가? 보통인은 누구며, 수치심의 척도를 검사, 판사가 정할 수 있는 것인가?

마광수를 모르면서 기사와 작품 제목만 보고 판단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문란한 변태성욕자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연세대 국문과 교수일 적에 학생들과 맞담배는 피울지언정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신사였다.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는 시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저 시의 내용이 몹시 문란할 것이란 예단은 삼가는 것이 좋다. 포르노비디오가 새빨간 거짓말인 것은 맞지만 그 일부는 현실의 투영인 것도 분명하다. 변태성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섹스의 어떤 의미를 모르거나 터부시하는 사람이 삶과 인생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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