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권력’ 인플루언서, 산업 지형도 새로 그린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3 10: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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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 규모 10조원…미디어 넘어 산업 전반에 영향력 발휘

지난해 여름 ‘양파 파동’이 있었다. 양파 값이 40% 이상 폭락하면서 농민들은 자기 손으로 애써 기른 양파를 폐기해야 했다. 정부는 농가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소비자들이 양파를 많이 소비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양파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정부의 권유가 아니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양파 레시피를 소개한 한 사람, 양파 농가를 응원한다는 취지로 양파 손질과 활용 영상을 올린, 요식 사업가이면서 유튜버로 활동 중인 백종원이었다. 양파 파동 당시 백종원이 공개한 5편의 양파 영상은 700만 회가 넘게 시청됐고(현재 조회 수는 총 1370만 회를 넘어섰다), 영상을 보고 양파를 구매했다는 ‘간증’과 양파 농가 가족들의 감사 댓글 및 응원이 줄을 이었다. 실제로 백종원이 영상을 올린 이후 양파 가격은 소폭 상승했고, 시장에서 소화하는 양파의 물량도 늘어났다.

백종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가 ‘인플루언서(influencer)’를 가장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인플루언서의 정의는 바로 그것이다. ‘인플루언서’ 백종원은 자신의 파급력을 선하게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움직였다. ‘백종원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임명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우스갯소리에 그치지 않은 이유는 양파를 비롯해 그가 올린 영상의 재료 판매량이 움직일 정도로, 백종원이 미치는 사회 전반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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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마케팅·유통·미디어 등 곳곳에 큰 영향 미쳐”

인플루언서는 이제 단순한 미디어 권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권위 있는 정부의 한마디보다 백종원의 한마디에 영향을 받고, 유명 연예인의 기업 광고보다 뷰티 유튜버 이사배의 화장품 리뷰를 신뢰한다. 인플루언서가 신(新)권력이 되고 있는 이유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대규모 팔로워(follower)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무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무한대로 확장됐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를 직접 제작·유통하고 충성도 높은 팔로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해 나가면서 신뢰도까지 확보했다.

특히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대중의 눈길을 끄는 개성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극도로 진화했다. ‘포털보다 유튜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튜브 이용시간은 포털의 이용시간을 넘어섰다. 실제로 TV에서 높은 지명도를 자랑해 온 스타들까지 최근 유튜브에 속속 입성하고 있다. 종합광고회사 이노션월드와이드는 ‘크리에이터의 성장이 이끄는 트렌드 변화’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유튜버가 신조어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기업 마케팅, 유통, 미디어 등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제, 산업 분야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극대화되고 있다. KOTRA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2017년 20억 달러(약 2조1300억원)로 집계됐고, 2020년에는 최대 100억 달러(약 10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콘텐츠를 시청한 후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도 높다.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55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브랜드 콘텐츠를 경험한 사람들이 전체 이용자의 58.7%에 이르고, 이 중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34%였다. 2019년 국제방송영상마켓에서 열린 뉴미디어 트렌드 분석 강연에서도 SNS에서 제품을 발견하는 비중은 60%에 이르며, 이후 SNS 리뷰 등을 통해 제품의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답한 이는 63%에 달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SNS에서 광고를 접한 후 추가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경험은 68%, SNS 광고를 통해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도 51%였다.

인플루언서 신뢰도, 연예인 압도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인플루언서의 유형도 구분된다. 수십만~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플루언서를 메가 인플루언서,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을 매크로 인플루언서, 1000명~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 국내 메가 인플루언서로는 키즈 크리에이터 헤이지니, 게임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뷰티 유튜버 씬님, 이사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메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만이 크다고 여겨졌지만, 현재는 매크로 인플루언서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메가 인플루언서에 비해 낮은 예산으로 섭외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인식을 주면서 특정 타깃층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그만큼 인플루언서 영향력의 배경은 ‘친근감’과 ‘신뢰도’에 있다. 인플루언서들은 SNS에서 자신들의 일상이나 제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구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제품의 장점만 나열하는 기업 광고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제품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보면서 더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한양대 김은재·황상재 교수가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플루언서는 연예인 못지않은 광고 효과를 내며, 뷰티 제품의 경우 일반인 유튜버가 연예인보다 더 높은 광고 효과를 발휘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10~30대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연예인의 그것을 이미 뛰어넘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15~34세 남녀 8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뷰티·화장품 분야에서는 연예인(26.6%)보다 유튜버(73.4%)가 알려주는 정보를 신뢰했고, 게임은 91.6%, IT·전자기기는 83.1%로 유튜버의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기업들이 ‘인플루언서 잡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홈에스테틱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인기 인플루언서인 유한나 한스스타일 대표와 협업했다. 인플루언서 영향력이 큰 뷰티 업계는 크리에이터를 직접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애경산업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 체험활동을 진행할 인플루언서들을 모집했고, LG생활건강은 뷰티 인플루언서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소비자들과의 접점 마련에 나선 바 있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기업은 세일즈와 마케팅을 해야 한다. 마케팅은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고, 세일즈는 물건을 파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며 “이미 팔로워들에게 신뢰를 확보한 인플루언서가 물건을 판매할 경우 그 효과는 기업의 광고 효과를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도 인플루언서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체들까지 인플루언서 유치에 뛰어들었다. 네이버와 페이스북은 유튜브에 맞서기 위해 동영상 크리에이터들을 잡기 위한 적극적인 수익배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네이버는 유튜브에 뺏긴 동영상 주도권을 찾기 위해 ‘인플루언서 검색 베타테스트’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텍스트 기반의 검색 한계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 네이버가 아닌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이용자들을 잡기 위함이다. 인플루언서의 모태 중 하나인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인플루언서를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플랫폼의 입지를 더 강화하기 위해 인플루언서의 수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는 콘테스트 기반의 프로그램 ‘유튜브 넥스트업 코리아 2019’를 통해 국내 게임 분야에서 떠오르는 크리에이터 12명을 선발, 차세대 크리에이터 육성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한국이 '왕홍'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 

해외의 인플루언서 산업은 국내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인플루언서 산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 인플루언서들은 시장을 이끄는 핵심 플레이어가 돼 상품 판매 프로세스와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인터넷을 뜻하는 왕뤄(網絡)와 유명인을 뜻하는 홍런(紅人)을 줄인 말인 ‘왕홍’들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시나 웨이보, 웨이신, 텐센트 QQ, 유쿠 등을 통해 활동하면서 뷰티나 미용, 패션에 그쳤던 과거의 쇼핑 영역을 게임과 여행, 육아용품 등 영역까지 확대시켰다.

인플루언서경제산업협회에 따르면 홈쇼핑 등 허가를 받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만 판매가 가능한 한국과 달리,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개인 라이브 방송을 통한 판매가 가능하다. 이들의 활동이 산업 지형도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한국에서도 중국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왕홍’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왕홍 위얼과 손잡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중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해당 방송은 누적 접속자 수 100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울산시가 왕홍 탕린예를 초청해 실시한 관광 홍보 마케팅 역시 조회 수 1000만 뷰를 넘어서면서 중국 여행객을 유치하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중소기업의 유통을 돕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단순히 광고를 하기 위해 크리에이터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의 유통 판로를 위해 크리에이터들과 손잡는 것이다. 위메프가 대댕커플, 엔조이커플, 홍사운드, 소프, 애주가TV참PD, 쯔양 등과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소상공인협동조합에서 엄선한 상품을 홍보한 것이 그 예다. 새로운 형식의 판로를 개척하고 소상공인 제품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활용된 것이다. 지난해 7월 창립된 인플루언서경제산업협회 역시 중소기업과 지역 우수기업의 마케팅과 유통의 활로를 인플루언서를 통해 찾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인플루언서 산업 확장 위해 법적 제도 완비돼야”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인플루언서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장애물은 많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일명 ‘임블리 사태’로 불리는 ‘곰팡이 호박즙’ 사건을 비롯해 인기 유튜버 밴쯔가 건강기능식품을 과장 광고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인플루언서와 관련된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인플루언서가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면 전자상거래법에 의거해 통신판매업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거래 규모가 1200만원 미만, 6개월간 거래 횟수 20회 미만인 경우 신고 의무가 없다. 개인 계정에서 일어나는 거래량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데다, 신고하지 않은 인플루언서가 제품을 거래하거나 과장·허위 광고를 통해 판매할 경우 규제할 근거가 없다.

마케팅 협업의 경우에도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 지침에 따라 대가를 받았다는 내용을 콘텐츠에 표시해야 하지만, 실제로 따르지 않는 사례가 많고 적발도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인플루언서 산업을 긍정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성 인플루언서경제산업협회장은 “아직까지 개인 대 개인으로 커머스를 하는 것을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법안을 정비해 미디어 커머스에 참여하는 모든 인플루언서들을 사업자로 등록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유통을 소비하는 속도와 법률적인 제도 정비의 속도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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