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시에 필요한 것은 창조 아닌 재생”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2 11: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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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기 도시의 비결 담은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간의 가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사는 도시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예술과 문화의 축적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물리적인 도시의 양적인 생산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새로운 프런티어를 향한 공간의 확장은 이루기 힘든 시대가 됐다. 이제는 우리가 이미 주어진 도시들 안에서 어떻게 행복한 도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머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재발견되고 재조명돼야 하는 공간들은 단순한 화려함보다는 그 공간 속에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적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지난 30여 년간 세계 50여 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하고 탐구해 온 이창민 공공협력원 원장이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간의 가치》를 펴냈다. 이 원장이 세계 20여 개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62개의 스토리텔링이 담긴 공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도시 공간에 공감을 일으키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냈는지를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소개하는데, 어떤 방식의 개발이 옳거나 틀리다는 규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협력하고 공감해 일궈낸 지속 가능한 공간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두는지 생생하게 전한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간의 가치》 이창민 지음│위에스앤에스 펴냄│424쪽│2만2000원 ⓒ 공공협력원 제공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간의 가치》 이창민 지음│위에스앤에스 펴냄│424쪽│2만2000원 ⓒ 공공협력원 제공

“입지 좋아도 매혹적인 이야기 없다면 쉽게 도태될 수도”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부동산의 경우에는 입지적 균형(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균형)에 따른 공간의 가치가 차별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 안에 스토리텔링적인 공간적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입지적 조건이 좋은 공간이라도 그 안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야기가 없다면 그곳은 쉽게 도태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도시 개발과 관련해 독일의 네스트픽(Nestpick)이라는 부동산 중개회사에서는 매년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20~39세 사이의 젊은 층이 거주하기를 원하며 그곳에서 일하고 싶고 놀고 싶은 도시들의 인기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베를린, 몬트리올, 런던, 암스테르담 등이 상위에 올랐다. 이에 대한 이 원장의 설명은 이렇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의 경우 비영어권의 외국 젊은이들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에 힘입어, 직장이나 대학에서 영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패션, 문화 및 예술 분야, 스타트업 등 다양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적 공간이 융합된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 도시들은 역사적 풍경을 잘 보존한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세대들을 매혹하는 요소들도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한편, 관리에 소홀하거나 고질적인 문제를 방치한 도시의 경우에는 깨진 유리창의 이론처럼 점점 악명이 높아져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 하게 되고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기피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원장은 이런 경우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도시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된 주된 요인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를 개발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도시 지역의 낙후에 따른 환경오염과 빈부격차 발생, 폐쇄적인 낙후지역의 범죄 증가는 물론 지속적인 개발이 불가능한 도시계획으로 인해 도시의 성장이 멈추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이와 관련해 현대 도시는 왜 불평등한지에 대해 다섯 가지의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그가 말한 이유들은 승자독식의 도시화, 슈퍼스타 도시의 성공에 따른 금권도시화, 이로 인한 중산층의 소멸, 교외지역의 위기,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도시화 위기로 구분된다. 그가 제시한 다섯 가지 요인은 각각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문제들이다.”

 

“낙후된 지역 재생시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된 경우도”

이 원장은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하는 도시가 아니라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처럼 전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도시를 우리나라도 가질 수 없을까 고민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낳는 도시 공간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고 모든 사람이 함께 발전의 과실을 누릴 수 있는 도시의 틀을 만든다는 것. 하지만 한번 완성된 도시의 틀을 바꾸기란 황무지나 오지를 도시화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다. 도시의 구조와 성격은 그 도시의 문화와 시민들의 삶을 결정하는데, 그런 도시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도시를 허물고 완전히 새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원장은 “필요한 것은 창조가 아닌 재생”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도시 재생이란 이미 존재하는 도시의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것과 새로운 것의 단절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도시 공간에 기반해 역사를 계승하면서도 부분적인 변화를 도모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도시 재생으로 생겨난 건물과 공간들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물리적 시설의 새로움만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도시만이 가진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도시 재생을 이뤄 고유의 정체성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이 원장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명소들이 기호소비론에서 말하듯 그 공간 자체의 효용성보다는 공간의 ‘분위기’를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공간에 담긴 역사와 스토리, 거기서 흘러나오는 공간의 이미지 자체를 소비하거나 또는 참여하기 위해 그 장소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 원장이 그런 공간들을 많이 가진 도시들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 공간이 많은 도시들이 속속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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