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역사 품은 경주의 변신은 무죄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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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역사 관광 넘어 해양관광레저도시로 탈바꿈 시도 중인 경주

경주는 신라의 천년고도다. 함께 삼국시대를 호령했던 백제와 고구려가 수도를 여러 번 옮겼던 것과 달리, 신라는 단 한 번의 천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경주는 천년동안 한 나라의 수도로 군림하며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남긴 역사도시가 됐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으로, 또 가족여행으로 몇 번이나 경주를 찾았었다. 경주의 이미지와 역사를 대표한다고 할 만한 불국사, 석굴암 같은 유명 유적지들은 수학여행의 단골 목적지였다. 이 역사적인 장소들의 의미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에는 별 관심도 없이, 현장학습이란 이름으로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재미에만 흠뻑 빠졌었던 것 같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신라시대 유물들 ⓒ김지나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신라시대 유물들 ⓒ김지나

사실 불국사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전략적으로 추진한 복원 사업의 결과물이다. 그 배경에는 ‘경주관광종합개발’이란 그림이 있었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었지만, 불국사 복원은 해방 후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문화재 복원 사업이란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불국사의 모습은 처음 지어질 때의 그것과는 다른 재창조물에 불과하단 논란 속에 놓여 있다.

불국사 외에도, 대릉원의 둥근 언덕처럼 솟아 올라있는 왕릉들 또한 경주의 상징이다. 이 중 천마총은 관광객들이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된 유일한 고분이었다. 1976년부터 이루어진 천마총 개방은 박정희 정권의 야심찬 경주 관광개발의 일환이었다. 어렸을 땐 왕의 무덤에 직접 들어가본다는 경험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왜 다른 무덤들은 이렇게 공개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었었다. 하지만 오래전 땅 밑에 파묻힌 유물들을 발굴해 꺼내고, 사라진 유적지의 옛 모습을 복원해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만이 역사관광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범종이자,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덕대왕신종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그 소리를 더 이상 라이브로는 들을 수 없어 신비함을 더 한다. 종에 새겨져 있는 비천상과 연꽃 문양들의 섬세함은 덤이다.

이 성덕대왕신종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는 문화재도 드물다. ‘에밀레종’이란 별칭에서도 묘사되듯이, 종을 만들 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다. 종의 고리가 ‘현대 과학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성덕대왕신종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종의 높이 때문에 경주시내의 전깃줄을 매번 끊었다가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했으며, 그렇게 천천히 이동하는 종을 따라 시민들이 퍼레이드 행렬처럼 뒤따라갔다는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다.

비록 본래의 기능은 다했지만, 천년도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이 시대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저 박물관에 전시된 채 죽어 있는 유물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라 할만하다.

‘경주동궁원’은 동궁과 월지를 모티브로 만든 경주의 식물원이다. 동궁과 월지는 ‘안압지’라고도 불렸는데, 안압지의 본래 이름이 ‘월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공식적으로 명칭을 수정했다 한다. 동궁식물원은 동궁과 월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 식물원이었다고 해석하며 모티브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창경원의 대온실을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식물원으로 보지만, 경주는 지역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동궁식물원에 새로운 위상을 더 했다. 옛 신라의 한옥 양식을 따랐다고 하는 메인 온실의 외관도 이색적이었다.

경주시가 해양관광 활성화의 거점 중 하나로 육성 중인 감포항 ⓒ김지나
경주시가 해양관광 활성화의 거점 중 하나로 육성 중인 감포항 ⓒ김지나

새 관광개발 그림 그리는 경주

최근 경주시는 내륙 중심 역사도시의 한계를 벗어나 ‘해양관광레저도시’가 되겠다는, 또 한번의 대대적인 관광개발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역사’와 ‘해양관광’을 꼭 배타적으로 놓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주가 가지고 있는 많은 스토리 자원들을 기반으로 할 때 더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레저 공간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깝게는 문무대왕릉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죽으면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유언한 왕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수중왕릉이다. 문무대왕릉에 실제로 석관이 있는가에 대한 수년 전의 논란은 결국 ‘전설에 불과하다’란 결론으로 마무리됐지만, 경주 봉길리 앞바다의 ‘대왕암’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역사 경관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경주는 분명 천년의 시간동안 한 나라의 수도로서 수많은 유적과 유물을 가진 역사 도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상상과 재해석의 가능성 또한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나 신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인 동시에, 여전히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은 신화이기도 하다. 때로는 억지로 재현하는 방식이나 무리한 발굴 혹은 복원보다, 자유롭게 재구성하고 방문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된다. 그랬을 때 신라 천년고도의 변신은 무죄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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