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으면서도 “전쟁 불사” 외쳐야 하는 불편한 진실
  • 오은경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0 16: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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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와 트럼프 모두 지금 전면전 벌일 상황 아니란 것 잘 알아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미국이 드론 공격으로 이란의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표적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공격하면서 이란과 미국이 전면전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와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 반격 대신 경제 제재라는 미온적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지구촌 전체를 긴장시킨 전쟁 위기는 일단 봉합되는 양상이다.

1월6일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관 주변에는 수천 명의 조문객들이 모여 희생된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UPI 연합
1월6일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관 주변에는 수천 명의 조문객들이 모여 희생된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UPI 연합

솔레이마니, 중동에서 이란 영향력 확장시켜

솔레이마니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란은 이토록 격분하는 것일까. 그는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며, 최정예군으로 일컬어지는 ‘쿠드스군’의 지도자다. 1979년에는 이란 혁명대에 가담해 친미 정권이었던 팔레비 왕조의 붕괴에 기여했다. 1997년경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이라크 민병대 카다이브-헤즈볼라를 지원했고, 시아파 헤즈볼라의 본격적인 지도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슬람 혁명군인 그가 과거 한때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협조한 전력이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솔레이마니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 협조해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기지의 지도를 제공함으로써 미군이 탈레반을 공격하도록 협조한 인물이었다. 쿠드스군과 미국의 밀월 관계는 이란 내 알카에다 잔당 소탕과 아프가니스탄 전후 체제 구축단계에도 계속되며,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진행된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서도 양측은 서로 협력했다. 양측 관계가 경직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IS 소탕전이 마무리되어 가면서부터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미군기지 공격으로 미국인이 목숨을 잃자 미국이 솔레이마니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중동에서 서구 영향권에 맞서 시아파 이슬람과 이란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주도해 왔다는 점은 미국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 그는 이란의 매우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였으며,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 이어 권력서열 2위였고, 이란인에게는 국민영웅이었다. 최고지도자가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를 갖는 이란 신정 체제의 특수성 속에서 솔레이마니가 서열 2위였다는 것은 대통령보다도 높은 지위와 실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 군부의 실세이며, 시아벨트를 움직이는 중추였던 솔레이마니를 표적 살해한 이후 이란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솔레이마니 장례식에서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붉은 깃발’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붉은 깃발은 피의 전투와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시아파 무슬림들이 가장 숭배하는 이맘 후세인이 680년 수니파 전투에서 사망한 후 붉은 깃발이 올라간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하메네이는 ‘키사스’ 보복을 맹세했다. 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확히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이슬람식 비례 맞대응 방식이다. 국민영웅이었던 솔레이마니는 피살된 이후 ‘순교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맘 후세인에 버금가는 존경과 애도의 마음은 그의 장례식에 몰려든 인파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장례 나흘째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60여 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할 정도였다. 하메네이는 이란 국민들의 자존심과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다분히 이란 국민의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하메네이는 정권 자체를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순교자 솔레이마니’ 작전명을 달고 보복전이 시작되었다.

1월8일 새벽 1시45분, 정확히 솔레이마니가 피격 살해당한 같은 시간이었다.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22발의 미사일을 쏘아 폭격했다. IS 격퇴 작전을 위해 미군과 연합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아르빌 기지 두 곳이었다. 이란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스라엘과 두바이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써 “괜찮다”라는 트윗을 날리고, 인명 피해에 대한 정확한 집계를 공개하지 않고 미루다가 대국민 성명을 통해 미군 사상자는 1명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군사공격 대신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직전, 이란이 보복해 올 경우 몇 배의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며, 이란의 문화유산까지 무자비하게 폭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탓에 ‘반미’로 똘똘 뭉치는 이란

일단 전쟁의 위기는 수그러들었지만 트럼프의 대응은 앞으로 중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혼란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미국이 ‘정상국가’의 최고 군사령관을 드론으로 피격 암살한 사실은 국제여론에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헤즈볼라를 비롯한 테러단체를 지원해 왔으며,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등 미군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던 “임박한 공격 위험” 때문에 사전에 위험요소를 제거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제법 위반과 주권침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란이 미국의 솔레이마니 피격 암살 행위를 “테러 행위”로 규정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이란 내부적으로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정국의 혼란과 진보·보수의 분열을 봉합하고 ‘반미’로 뭉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경제난과 실업, 신정정치로 인한 억압에 분노해 시위를 벌이던 이란 국민들은 오히려 ‘반미’라는 가치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중동 국가 그 어느 나라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라크·레바논·예멘 등 친이란 시아벨트의 결속을 다져주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시아파와 수니파를 넘어서는 화합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자각을 조심스럽게 확산시키고 있다. GCC(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이 친미 노선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반미 정서는 정권이나 권력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란과 미국의 분쟁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공허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란의 하메네이나 미국의 트럼프 모두 국내 정치와 여론을 인식하고 무모하게 맞붙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국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두 지도자 모두 사실은 지금 전면전을 벌일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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