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병천 순대집의 초심(初心)
  • 함인희 이화여대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2 18: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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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 아우내 지역에는 저마다 원조 간판을 내세운 순대집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 한 집 있다. 주변 순대집 앞 주차장엔 빈자리가 그득하건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손님들은 굳이 그 집만 찾는다. 덕분에 그 맛집 앞엔 시도 때도 없이 긴 줄이 늘어서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큰 가위를 딸깍거리며 전통 엿을 파는 상인도 등장했다.

지난달 진눈깨비가 흩뿌리던 날 뜨끈한 순댓국이 생각나 병천 순대집을 찾았다. 점심시간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이미 우산을 쓴 채 삼삼오오 기다리는 행렬이 제법 길었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로 가족이나 친지들과 어울려 오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이곳 특유의 매력인 듯싶다. 그날 우리들 바로 뒤로는 70대 중반의 멋쟁이 노신사분들이 서 계셨는데, 당신들은 고등학교 동창들로 용인에서 왔노라 하셨다. 이 집을 단골로 삼은 지 어언 십여 년이 다 돼 가는데, 그동안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칭찬 또한 아끼지 않으셨다.

순대집 출입문에는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따로 장소를 마련하지 못해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고객을 위한 사과문이 붙어 있다. 더 넓은 장소로 옮겨 손님들 기다리는 불편도 해소하고, 더욱 많은 손님에게 충분한 양의 병천 순대를 맛보게 해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다. 고객들의 성화에도 여전히 좁은 장소에서 하루에 제한된 양만 판매하는 이유인즉, “저희는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방식으로 순대를 만들고 있기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한데, 고유한 맛을 지키겠다는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불편함을 계속 감수하겠노라”는 것이다.

눈앞에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이 훤히 보임에도 굳이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겠노라는 주인장의 의지가 새삼 남다르게 다가온다. 순댓국 한 그릇에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 다짐하는 그 마음을, 우리네 주변에서 발견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기 때문일 게다.

꽤 오래전 신촌 지역에는 이름난 냉면집이 있었다.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는데, 다 쓰러져 가던 집을 떠나 인근에 깔끔하고 세련된 집을 지어 이전했다. 한데 새로 개장한 집은 예전만큼 손님을 끌지 못했다. 무엇보다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주인장의 인심 또한 박해졌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 ‘주방이 바뀌면 음식 맛도 바뀐다’ 했지만, 그보다는 초심을 잃은 탓 아니었겠는지.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싶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은 새 학기를 시작할 때면 “작심삼일을 삼일마다 하면 된다”는 훈시를 하시곤 했다. 새해 첫날이면 그해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적어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날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점검한다는 지인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2022년 대선의 전초전이 될 21대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연합뉴스
2022년 대선의 전초전이 될 21대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연합뉴스

‘기필코 담배를 끊어야지’ ‘1주일에 1권씩 독서를 해야지’ ‘부모님께 매일매일 문안인사를 드려야지’ 등등의 나 홀로 약속이야, 초심을 잃고 작심삼일로 끝난다 한들 자신을 향한 자괴감 이외에 다른 이들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일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책임 있는 자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공복(公僕)으로서, 초심을 잃은 채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 좇기에 여념이 없다면,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하며 공약(公約)을 지키기는커녕 공약(空約)만을 남발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은 자명하다. 석 달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돌아온다. 이번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기본을 지키는 데 충실한 인물들이 우리네 선량(選良)에 이름을 올리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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