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너무 멀 때 그대가 다가왔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1 16: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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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라는 여성

옛날 어른들도 이랬을까. 세상일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많이 알고 유능해질수록 실망과 좌절도 심해지는 것.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고 느끼는 것. 미래가 없다는 느낌. 이렇게 아무 일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지구별 인류세는 종말을 맞이할까 하는 낙담. 화내고 싶은 마음.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말세고, 나 개인이 어떻게 애를 써도 남들 때문에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고. 그러니 되도록 더 많이 나쁜 짓을 하고 더 많이 미워하며 더 많이 쾌락을 누리며 살다가 폭삭 망하자고. 나만 정의롭고 나만 너그러워 봐야 나만 손해 보고 나만 억울해지니까, 더 못되게 살아버리자고. 세상이 이런데도 ‘우리는 진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일은 꼭 연극 같다.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말하는 일은 꼭 바보 인증 같다. 비관적인 생각에 깊이 잠겨 있을 때도 이따금 저절로 미소 짓게 하고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은 이래야 한다’고 의지로 말하게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 행복하다. 얼마 전에도 그런 사람을 보았다. 너무 유명해진 이름, 변희수라는 여성이다.

1월22일 성전환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22일 성전환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답게 살고자’했던 변희수의 용기

그는 육군 부사관인데, 남군으로 입대를 했지만, 얼마 전 성전환수술을 통해 여성이 되었다. 그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었지만 딱딱한 머리를 지닌 군 수뇌부가 그를 내쫓아버렸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내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어차피 멸망할 그런 종족들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변희수 하사는 ‘성전환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이 사실을 자신의 소속 부대와 직속상관들과 군대 의료기관에 알렸다고 한다. 그들은 변 하사에게 호르몬 치료를 받게 해 주고, 최종적으로 수술을 위한 장기 휴가와 해외여행을 허락했다. 그의 결정에 어떤 비난이나 모욕도 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군들이 불편해할 것이니 어쩌니 하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변 하사가 함께 복무하게 될 수도 있었던 여군들도 마찬가지였다.

변 하사가 원한 것이 무슨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나답게 나로서 살고자 하는데 내 몸과 몸 안의 내가 일치하지 않으니 일치시키고 싶었던 것.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켰을 뿐, 다른 누구도 괴롭히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일상의 동료들은 그의 생각과 희망을 지지했고,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존중했다.

같은 군대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지만, 변 하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어떤 인간인가’를 아는 사람들은 희망을 줬다. 그런 것은 몰라도 되는 사람들은 절망을 줬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내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타인들에게 강요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과 군림하는 사람들의 차이라 해도 될 것이다.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역시 와글댔다. 변 하사의 선택을 당연한 그의 권리로 이해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이 이미 많아졌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낙담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목적은 영생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계속 생겨나는 이 일이 내게는 꼭 소돔성에 의인이 계속 등장하는 일 같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내 옆의 사람들의 손을 꼭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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