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ㆍ주가 폭락ㆍCEO 퇴임…3중고 시달리는 한화생명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7 10: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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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 영업이익 1년 만에 70%대 폭락

국내 생명보험업계 2위인 한화생명이 휘청이고 있다. 각종 경영지표에 적신호가 들어온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한화그룹 최장수 CEO 중 한 명으로, 김승연 회장의 복심으로 꼽히는 차남규 부회장이 돌연 퇴임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한화생명의 악재 중 우선 주목되는 것이 실적이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2019년 3분기까지 한화생명의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9조4453억원, 1823억원, 161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은 각각 72.4%, 63.8% 감소했다.

4분기 상황은 더 암울하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4분기 한화생명이 3666억원의 영업손실과 132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국내 2위 생보업체 한화생명이 최근 실적 악화와 주가 폭락, CEO 퇴임 등 악재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국내 2위 생보업체 한화생명이 최근 실적 악화와 주가 폭락, CEO 퇴임 등 악재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부진한 실적에 주가도 내리막길

부진한 실적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1월29일 종가는 2145원. 고점이던 2017년 10월27일(8160원)과 비교할 때 73.7%나 주가가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7조원대에서 1조8630억원으로 감소했다. 한때 900원을 웃돌던 주당순이익(EPS)은 지난해 말 169원까지 하락했다. 상장 시 주식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는 순자산 가치(PBR)는 0.15배로 생보업계 평균(0.3~0.4배)을 밑돌고 있다.

한화생명 측은 “최근의 실적 하락은 보험업계 공통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업황이 어려운데, 올해부터 신회계 제도까지 도입돼 고민이 크다”면서도 “한화생명의 경우 국내 1호 생보사다 보니 역마진이 많다. 주가가 실제 회사 가치보다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거래소 등에 상장된 다른 생보사의 실적과 주가를 비교한 결과는 달랐다. 삼성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의 주가 하락률은 각각 47.2%와 35.7%를 기록했다. PBR은 0.37배와 0.37배를 보였다. 최근 실적 악화 상황을 감안해도 한화생명의 실적이나 주가 하락세가 과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한화생명 경영진은 최근 몇 년간 주가 부양 차원에서 자사주를 잇달아 매입했다. 지난해 말 퇴임한 차남규 부회장과 여승주 사장은 2018년 7월부터 꾸준히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높였다. 지난해 12월18일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보험 상무까지 나서 지분을 취득했지만 주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한화생명의 극단적 투자를 우려한다. 회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해외의 특정 채권이나 주식, 운용 수익률이 낮은 부동산 등에 ‘몰빵’하면서 투자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올해 도입되는 신회계기준을 적용하면 경영 수치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한화생명을 상대로 종합검사를 벌였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금감원의 ‘경영유의사항·개선사항 공개안’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해외 자산이나 채권 등 고위험 자산의 비중이 높다. 그럼에도 운용자산 이익률은 3.7%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운용자산 이익률은 1.5%나 하락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화생명은 2016년부터 국내 채권 비중을 줄이고 해외 채권을 늘리는 전략을 취해 왔다. 이후부터 이익률이 줄었고, 회사 전체 운용자산 이익률 역시 하락하는 등 자산운용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실적 하락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 회사에 대한 지원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한화생명은 2016년 12월 회사 전산망 해킹 방지를 위한 ‘전사(全社)망분리 IT 용역계약’을 에이치솔루션(당시 한화에스앤씨)과 체결했다. 이 회사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인 동관·동원·동선 형제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고속 성장하면서 그 동안 논란이 적지 않았던 회사다.

당시 한화생명은 과거 발주했던 사업의 입찰참가 조건과 기술평가 배점을 조정해 부족한 기술력을 메워줬고, 한화에스앤씨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가 금감원 종합검사에서 개선을 권고 받았다.

한화생명 “금감원 지적 겸허히 수용”

실제로 에이치솔루션은 2001년 설립 첫해에만 46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8년 기준 연결 매출은 1조1634억원, 자산은 3조8337억원을 기록했다. 한화에너지 지분도 100% 보유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현재 한화종합화학(39.16%)을 통해 한화토탈을 지배하고 있는 알짜 회사다. 최근에는 지주회사인 (주)한화의 지분까지 확대하면서 3세 경영 승계의 핵심 회사로 지목받고 있다. 한화생명과 한화건설, 한화케미칼 등 계열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한화생명은 한화건설과 함께 에이치솔루션을 가장 많이 지원한 회사다. 2002년 한화그룹에 포함된 직후부터 적게는 100억원, 많게는 500억원의 일감을 매년 지원했다. 지난 15년간 지원한 일감 규모만 4000억원에 육박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한화생명 관계자는 “금융사의 경우 유지·보수나 보안 문제 때문에 계열 SI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화생명의 한 해 매출만 15조원대, IT 인력도 1500명에 이르는 만큼 에이치솔루션에 준 일감은 높은 수준이 아니다”면서도 “금감원의 지적 사항은 해석상 차이는 있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고 추후 업무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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