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비수도권, 두 개의 대한민국
  • 안성모 공성윤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4 14: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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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현상 가속화
국가적 위기 넘어설 연대·협력 모색해야

설 명절을 며칠 앞둔 1월21일 저녁, 충북 청주 청원구의 한 식당 안은 한산했다. TV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지만 손님은 16명 남짓 했다. 이마저도 회식을 마친 단체손님 9명이 자리를 떠나자 식당이 더 횅해 보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양아무개씨는 “한때는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30% 정도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인근에서 우리 식당이 제일 장사가 잘되는 편”이라며 “다른 식당들은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청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성안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유동인 수가 적어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 빈 가게도 눈에 띄었다. 400여m 걷는 동안 8개의 공실을 발견했다. 이 거리에서 계란빵을 파는 김아무개씨는 “오후 1시부터 장사했는데 아직 3판(90개)도 못 팔았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일본에서 넘어온 ‘지방 소멸’, 한국에서도 현실화 

밤늦은 시각, 주로 20대 젊은 층이 모이는 ‘젊음의 거리’ 충북대 중문 일대를 찾았다. 여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주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는 조용했다. 이곳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강아무개씨는 “사람들이 몰리는 가게가 있어 파급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전한 후 “오픈 때에 비하면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한민국은 둘로 나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이를 제외한 지방 비수도권이다. 같은 한반도에 위치해 있지만 처한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과 기업과 돈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국토의 12% 남짓한 수도권의 등록 인구와 활동 기업, GRDP(지역내총생산)와 지방세 규모가 전국의 절반을 넘어선다.

청년 인구, 고성장 기업, 예금액 등은 그 격차가 더 심하다. 이로 인해 삶의 질도 한쪽으로 쏠린다.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비수도권이 35만 명 더 많아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이 비대해질수록 비수도권은 쇠퇴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일본에서 현해탄을 넘어온 ‘지방 소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나마 수도권에 인접한 충청권은 다른 비수도권 지역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수도권 규제로 기업들이 진천이나 음성 등으로 옮겨왔고 투자도 상당 부분 이뤄졌다”며 “분권운동의 성과를 일정 부분 거뒀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원장은 “여전히 제조업 중심이고 관광산업은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실질적인 임금과 소득 수준이 낮고 소비가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자료: 국토연구원

인구절벽 위기 깊어질수록 격차 더 커질 듯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은 부침이 더 심하다. 활황기를 누리며 지역 경제를 떠받혀 온 기간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시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서울에 이어 ‘제2 도시’로 오랫동안 각인돼 온 부산은 그 자리를 인천에 내줄 처지에 놓였다. 자동차와 중공업 등 대기업 공장들이 많은 울산과 경남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 경남 창원에서 기계 제조업체를 창업했던 40대 정아무개씨는 최근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한때 잘나갔던 회사가 직원 월급도 주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6년에 샀던 창원 동읍의 아파트가 깡통이 돼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대출금이라도 갚기 위해 집을 내놨지만 아직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월세도 들어오지 않아 1년째 비어 있는 상태다.

문제는 제주에서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택배 일과 함께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다시 창원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 중이다. 정씨는 “고등학생을 비롯해 애가 3명인데 교육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 위기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현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중심에 ‘일자리’가 놓여 있다. 국토연구원의 구형수 책임연구원은 “지방 인구 유출의 주요 요인들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부족→청년층 유출→저출산·고령화→상품·서비스 수요 감소→상점·공장 폐쇄→일자리 부족’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따라 지방의 청년 인재 수도권으로 집중

실제 지방에서는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청년 인구 감소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는 단순 지표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서 집계한 2019년 4분기 청년 고용률에 따르면 수도권(서울 47.7%, 인천 49.8%, 경기 46.7%)은 전국 평균(44.1%)을 상회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거의 대부분 평균에 못 미친다. 전북(32.8%), 세종(34.1%), 대구(38.5%), 경북(39.5%) 등은 30%대에 머물렀다.

기술혁신에 따른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현수 단국대 교수는 “산업구조의 변동에 따라 전통 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후 “그런데 신성장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어 격차는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산업의 쇠퇴에 앞서 대학의 쇠퇴를 우려한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집중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20대 초반 청년은 주로 대학 입학을 계기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주한다. 20~24세 인구 유출 현황을 보면 서울(+5.4%p), 인천(+0.9%p), 경기(+6.1%p) 수도권 3곳만 수혜를 받았다. 취업 기회를 찾아 이주하는 20대 후반 청년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25~29세 인구 유출 현황을 보면 서울(+12.18%p), 경기(+8.97%p)가 10%p 전후로 증가한 반면, 전남(-14.2%p), 전북(-14%p), 강원(-12.7%p), 대구(-11.4%p), 경북(-10.6%p)은 10%p 넘게 청년 인력이 유출됐다.

4차 산업의 핵심 인력이 될 엔지니어의 경우 이른바 ‘취업 남방한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연구원의 조성철 책임연구원은 “생산직은 경기 남부와 충청 산업벨트, 부산·울산·경남 산업벨트 2곳에 집중 분포돼 있는 반면, 엔지니어는 경기 기흥 위쪽으로 한 곳에 집중 분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기흥 라인’을 경계로 엔지니어 취업의 남방한계선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R&D(연구개발) 기능을 하는 대기업 연구소들도 비수도권을 이탈해 판교를 비롯한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다. 청년 인재들이 수도권에 집중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간 불균형, 국가 전체에 심각한 타격 줄 수도

국가균형발전은 현 정부의 핵심국정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대선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적인 국가균형발전시대를 선포했다”며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40년)에서도 ‘모두를 위한 국토, 함께 누리는 삶터’가 비전으로 제시됐다. 특히 3가지 목표 중 하나가 ‘어디서나 살기 좋은 균형 국토’이며, 6가지 전략 중 첫 번째가 ‘개성 있는 지역 발전과 연대·협력 촉진’이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연대와 협력을 강조한 것인데 의미하는 바가 크다”며 “서울처럼 잘사는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과 연대해 지원을 하자,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고 지역 간에도 협력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간 불균형은 국가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비수도권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20년 앞서 위기에 직면한 일본의 시행착오는 반면교사로 삼기에 좋은 사례다. 국가 성장은 ‘일극’보다 ‘다극’일 때 훨씬 더 효과적이다. 강 원장은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균형발전’ 요즘 용어로 ‘포용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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