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글 윤동주, 그림 빈센트 반 고흐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2.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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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빈센트》ㅣ윤동주. 빈센트 반 고흐ㅣ저녁달고양이 펴냄ㅣ288쪽ㅣ1만 5800원
ⓒ 저녁달고양이
ⓒ 저녁달고양이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 … …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冊床)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詩人)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 …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 … ‘

‘별이 빛나는 밤에 (The Starry Night), 빈센트 반 고흐, 1889

일제식민지 시대 민족저항시인으로 일본 감옥에서 요절했던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의 일부분이다. 만약 위의 예처럼 이 시 끝에 프랑스 파리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가 함께 편집된 책이 있다면 그 느낌은 어떨까? 호불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주와 빈센트》는 전체가 이런 형식으로 편집된 책이다. 시는 모두 124편, 그림은 129점이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에 만주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다녔고 일제강점에 문학으로 저항하다 1945년 옥사했다. 만 28세, 참으로 안타까운 나이였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890년 프랑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만 37세였다. 고흐와 동주의 활동시기는 약 반세기 정도 세월의 간극이 있다. 불운했던 운명만큼이나 둘 사이에는 텔레파시라도 통했던 것일까? 한 세기를 지나 서로 만난 동서양 두 작가의 글과 그림은 놀라우리만치 메시지의 조화를 이룬다. 아래와 같다.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며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Self-Portrait). 빈센트 반 고흐. 1889
자화상(Self-Portrait). 빈센트 반 고흐. 1889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one). 빈센트 반 고흐. 1888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one). 빈센트 반 고흐. 1888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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