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은 죽지 않는다…두산 베어스의 베테랑 활용법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3 16: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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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최고의 강팀 두산 베어스, 그들만의 베테랑 활용법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란 말이 예전엔 통용됐지만, 최근엔 유망주의 값이 소위 금값이다. 유망주를 얻기 위해 즉시전력감을 팔거나, 유망주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기존의 베테랑 선수들을 내보내는 상황은 이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이런 풍토는 최근 KBO리그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매년 나이가 들어가며 기량 상승보다는 하락의 여지가 더 많은 베테랑들에게 겨울 시장은 추울 수밖에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롯데의 손승락이나 고효준 투수가 해가 바뀌고 2월이 된 지금까지도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FA 미아’가 된 게 단적인 예다.

2019년 10월26일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배영수 투수를 향해 달려오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10월26일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배영수 투수를 향해 달려오며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벤치 리더’로서의 역할 톡톡…두산의 이유 있는 베테랑 수집

그런데 이런 상황과는 전혀 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팀이 있다. 바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근 국내 최고의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다. ‘화수분 야구’로 대표되는 전통의 육성 강자인 두산의 유망주 선구안, 그리고 선수단 육성 능력은 KBO리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산은 이런 특유의 육성 능력을 앞세워 2015년부터 5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총 3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그런데 두산이 2016년부터 매년 다른 팀에서 외면당한 베테랑 선수들을 수급하며, 노장들을 정리하기에 바쁜 최근 KBO리그 추세와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2016년에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투수 정재훈을 복귀시켰고, 시즌 중 트레이드로 투수 김성배도 복귀시켰다. 2017년에는 SK에서 방출되었던 투수 김승회를 자유계약으로, 2019년에는 한화에서 방출되었던 투수 배영수와 권혁, 삼성에서 방출된 내야수 정병곤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올해도 LG 트윈스에서 방출되었던 베테랑 포수 정상호를 영입하며 ‘노장’을 데려오는 행보를 꾸준히 이어 나갔다.

두산은 매번 2차 드래프트 때마다 팀내 유망주들을 지키기 위해 즉시전력감을 빼앗기고, 가장 많은 선수 유출을 겪을 정도로 좋은 유망주 자원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그리고 매년 지켜낸 그 유망주들 중 누군가 주전으로 성장해 히트 상품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런 선수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있던 베테랑도 방출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데, 두산은 오히려 정반대 행보를 보인 셈이다. 특히 올해의 정상호 영입은 기존 박세혁·이흥련·장승현 등 우수한 포수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뤄진 행보라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두산은 왜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물론 기본적으로는 해당 선수들이 아직은 1군에서 더 활약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산이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벤치 리더’로서의 역할이다. 쉽게 말하자면 선수의 역할보다는 플레잉 코치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영입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구단은 베테랑 선수들에게 벤치 리더, 그리고 멘토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긴 프로 생활 동안 겪었던 다양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길 바라는 것이다.

다만 단순히 경기 경험이 많은 것, 프로 경력이 긴 것보다는 게임 외적인 상황에서도 겪은 것이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해당 부분에서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였다. 정재훈·김성배·김승회는 두산에서 오랜 기간 뛰었던 선수들로 두산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들이었다. 두산은 그들의 합류로 두산 특유의 문화를 더욱 굳건히 하고자 했고, 팀에 헌신했던 투수 셋을 다시 복귀시키며 선수단에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배영수·권혁·정병곤은 2000년대 이후 삼성 왕조 시절의 멤버들로 팀에 위닝 멘털리티와 수성전에 대한 경험을 이식해 줄 존재들로 꼽혔다. 특히 배영수는 2004년 MVP 수상 등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으나 큰 부상으로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구속을 잃어버렸음에도 이를 이겨내고 어느 정도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했던 선수다. 배영수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후배 이영하를 집중적으로 챙겼고, 배영수의 영향을 받은 이영하는 작년 완전히 다른 투수로 탈바꿈하며 17승을 기록, 국가대표 우완 에이스 후보로 떠올랐다.

이번에 영입된 정상호는 잦은 부상으로 입단 당시의 기대치를 단 한 번도 충족시킨 적이 없는 선수다. 다만 박경완이라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포수와 주전 경쟁을 통해 성장했고, 잦은 부상을 경험하면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확실하게 아는 포수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배영수가 그러한 것처럼, 장규빈이라는 신인 포수의 스프링캠프 파트너 역할을 정상호에게 기대하고 있다.

 

보상선수 등급제가 불러올 베테랑 FA의 변화

두산 베어스가 최근 몇 년간 리그를 대표하는 최강의 반열에 있었던 힘은 물론 구단의 유망주 선구안과 육성 시스템의 존재 때문이다. 그러나 베테랑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무형적 가치를 잘 활용한 점도 두산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런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선수 이동이 활발해야 하는데, KBO리그는 FA 보상선수 규정 등의 요소로 특급 선수가 아닌 이상 선수 이동이 쉽지 않다.

다만 이번 시즌 이후부터는 FA 등급제가 시행되며 보상선수 규정이 다소 완화된다. 베테랑들은 나이와 FA 횟수 등으로 인해 B등급 혹은 C등급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보상선수 보호명단이 20인에서 25인으로 늘거나, 보상선수가 아예 없어진다. 베테랑들이 보다 쉽게 팀을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셈이다.

현재 FA 시장에서 홀대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승락, 고효준 같은 투수들도 이런 등급제가 시행된다면 베테랑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수요가 생길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 등급제가 당장 다음 오프시즌부터 시행된다면 많은 베테랑들이 적극적으로 FA를 신청, 이동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베테랑 벤치 리더들의 가치가 높은 것처럼 KBO리그에서도 베테랑 선수들의 무형적 가치가 인정받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두산 베어스는 베테랑들의 무형적 가치를 잘 활용해 큰 성과를 거뒀으며, 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성적을 통해 보여줬다. 그리고 베테랑 선수들이 이동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다음 오프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KBO리그의 다른 팀들도 추후 베테랑의 무형적 가치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야구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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