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혼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7 16:20
  • 호수 15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개월 조정 끝 헤어진 영국-EU…희비 극명하게 엇갈린 영국 시민의 얼굴

지난 1월31일, 42개월 동안 이어진 긴 이혼 절차 끝에 영국이 47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유럽연합(EU)을 탈퇴했다. 이날 영국 전역에선 많은 사람의 브렉시트 자축과 애도가 대비를 이뤘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의회 광장에 모여 환호하며 축배를 들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트위터를 통해 ‘브렉시트가 가져올 모든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 힘을 합쳐 영국의 잠재력을 펼치자’며 브렉시트를 기념했다. 반면 EU 잔류를 원했던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및 에든버러 등 주요 도시에선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곧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집회를 열었다. 특히 스코틀랜드 여당 대표인 니콜라 스터전은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으로서 EU에 돌아갈 것’이라고 트위터에 밝히기도 했다.

1월31일 브렉시트 직후 영국 런던 의회 광장에 게양돼 있던 유럽연합 국기가 영국 국기 유니언잭으로 전부 교체됐다. ⓒ 연합뉴스
1월31일 브렉시트 직후 영국 런던 의회 광장에 게양돼 있던 유럽연합 국기가 영국 국기 유니언잭으로 전부 교체됐다. ⓒ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EU와 작별 아니다”

영국 주요 일간지 가디언은 1월31일 저녁 브렉시트 직전 마지막으로 운행한 파리발 런던행 유로스타에 탑승한 영국 승객들을 인터뷰했다. 업무상 주기적으로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혹은 네덜란드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은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브렉시트로 인해 직장에서 유럽 각국 직원들이 떠나며 인력난을 겪고 있거나, 영국 소재 직장이 인근 유럽 국가로 이전해 불편을 겪는 등 많은 이의 우려가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었다.

브렉시트 당일 영국 주요 일간지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헤드라인으로 브렉시트를 맞이했다. 가디언은 ‘작은 섬…, 세기의 가장 큰 도박’이라 표현하며 우려를 담은 반면, 보수 매체인 데일리메일과 더선은 각각 ‘영국을 위한 새로운 새벽을 기리며’ ‘우리의 시대가 왔다’ 등의 메시지로 브렉시트를 환영했다. 스코틀랜드의 더 스콧츠맨은 ‘안녕, 하지만 작별은 아니다’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통한 EU 재가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사회는 분열됐고 경제적 불안도 고조됐다. 브렉시트 합의문을 통과시키기까지 국회는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되며 상황이 일단락된 만큼, 브렉시트를 찬성하거나 반대했던 이들 모두 이제 과연 존슨 총리의 말대로 ‘영국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지에 주목하며 기대와 걱정을 품고 있다.

환호 속에서도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 사회의 불안정함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첫 거래일인 2월3일, 영국 파운드화는 2% 넘게 급락했고, 영국 은행 금융정책위원회는 향후 3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1%대로 저조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로, 특히 현 영국 재무장관 사지드 자비드가 계획했던 2.8%대 성장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영국 외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인들 중 유럽 여권 취득자 수도 급증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해인 2015년에 아일랜드 이중 국적을 신청한 영국인 수는 3만2000명 정도였으나, 2016년을 기점으로 이는 4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프랑스·스페인 등 EU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 중 해당 국가 여권 신청자 수도 2016년을 기준으로 적게는 4.5배에서 최대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16년 이후 현재까지 총 36만 명의 영국인이 EU 국가의 여권을 신청했으며, 이 중 일부는 영국 여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EU 잔류를 외쳤던 스코틀랜드도 다시금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도널드 투스크는 스코틀랜드가 개별적으로 EU에 재가입하는 걸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밝히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지했다.

1월31일 브렉시트 시행 직전 마지막 런던행 유로스타를 타러 가는 프랑스 시민들.시민들은 향후 유로스타 운행 중단에 따른 불편을 우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31일 브렉시트 시행 직전 마지막 런던행 유로스타를 타러 가는 프랑스 시민들.시민들은 향후 유로스타 운행 중단에 따른 불편을 우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EU와 영국의 기싸움은 이제부터 시작

브렉시트가 됐다고 해서 EU와 영국의 기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오히려 둘 간의 신경전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많다. 무역 관계, 어업권, 북아일랜드와의 국경 문제, 정보 공유, 금융 서비스 기관에 대한 접근성 등 사실상 모든 것에 대한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렉시트 이행 기간은 오는 12월31일까지로, 그동안 영국과 EU는 무역, 이민 규정, 분담금 등 모든 사안에 대한 실질적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최종 합의안은 비준을 위해 11월26일까지 마련돼야 한다. 어업권에 대한 논의는 7월까지 완료돼야 한다. 어업은 영국 경제 내 비중이 0.1%밖에 되지 않지만 영국 영해 내 어업활동의 70%가량이 인근 유럽 국가와 노르웨이에 의해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브렉시트 협상의 시금석이 될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동시에 현 영국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협력 발전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영국 통상성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영국의 무역 상대국 비중은 EU 49%, EU 무역 협정국 11% 그리고 기타 국가들이 40%를 차지했다. 이처럼 EU가 영국 무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영국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영국은 국제무역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3년 6개월 4일이라는 오랜 진통 끝에 드디어 영국은 EU를 탈퇴한 최초 국가가 됐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은 EU의 족쇄를 벗어나면 미국 등 EU 외 다른 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고 효율적인 교역관계를 일궈낼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다시금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주요 일간지 가디언과 이브닝스탠더드의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자인 사이먼 젠킨스는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국제사회 내 영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과거 대영제국의 향수에 젖어 브렉시트가 영국의 영광을 되찾아줄 것이라는 여론에 대해 브렉시트에 대한 맹목적 기대와 신뢰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