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낙연 vs 황교안’ 빅매치…종로 바닥민심 봤더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4 14: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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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역 일꾼 찾지, 대권주자 뽑자는 게 아니다”
정권‧야당 심판론 내세운 여야 대결에 정책 경쟁 ‘실종’

“일병이 필요한데, 왜 죄다 말년 병장만 오냐는 거죠.”

2월11일 창신골목시장 앞에서 만난 김필영씨(46)가 우산을 털며 말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이른바 ‘종로 빅매치’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김씨는 종로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3년 전 회사를 관두고 자영업자가 됐다. 그는 “회사에서도 실무를 가장 잘 아는 건 대리고 과장이지, 사장 노리는 상무나 전무는 아니지 않나”라며 “종로를 위해서 일할 사람을 뽑는 건데, 아래가 아니라 위만 보는 (후보들 간) 경쟁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2월13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물건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2월13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물건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지역 민심은 反문재인 vs 反한국당으로 나뉘어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종로의 민심은 복잡했다. 종로의 얽히고 설킨 교통, 부동산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큰 사람들’ 간 경쟁이 좋다는 의견도 다수 있다. 그러나 선거판이 이른바 ‘미니 대선’이 돼 버린 탓에, 정책 경쟁이 아닌 ‘정권 심판론 vs 야당 심판론’ 구도로 총선 모양새가 짜이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시사저널은 2월11일~12일 이틀간 서울 종로 일대를 돌며, 총선 전 민심을 마주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종로 5·6가와 이화동, 혜화동이다. 이곳은 여야 후보의 성패를 가를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꼽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은 박진 한나라당 후보,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승리한 정세균 민주당 후보 모두 이 지역에서 승기를 잡았다. 11일 늦은 오후에 찾은 종로5·6가의 노점 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한산했다. 가방에 태극 문양을 새긴 노인들이 마스크를 걸친 채 어묵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선거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혜화동에 살고 있다는 최영환씨(68)는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 나가면서 매일같이 외치는 게 ‘문재인 하야’인데 이게 곧 민심이다. 젊은 사람들도 조국 때문에 얼마나 실망했겠나”라며 “내가 고향은 전라도인데 곧 죽어도 문재인 사람은 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의 공약은 확인해 봤느냐’는 질문에 최씨 옆에 있던 강한오씨(70)는 “내가 종로 살이만 50년이 넘어가는데, 이 지역은 더 발전할 것도 없다. 종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실제 이른바 ‘정권 심판론’을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을 향한 실망이, 종로 선거판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경기 불황을 한목소리로 짚었다. 관철동 ‘젊음의 거리’에서 호프집을 운영한다는 김연자씨(58)는 “지난번에는 민주당 (정세균) 후보를 찍었는데 이제는 좀 고민이 된다”며 “한국당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먹고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뭐라도 바꿔보고 싶은 것”이라고 전했다. 대학생 유권자들은 ‘조국 사태’를 거론하기도 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김효은씨(가명·26)는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주면 마치 조국 사태를 옹호하는 기분이 들어서 싫을 것 같다”며 “총선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같은 것 아닌가. 지역 정책도 중요하지만 국민으로서 의사를 표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을 향한 민심도 냉랭했다. 이른바 ‘야당 심판론’이다. 광장시장 내 음식점에서 일한다는 최미려씨(가명·43)는 “한국당을 보면 ‘싸움닭’ 같다. 그런데 싸우는 방법이나 발언을 보면 구시대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며 “종로에 와서도 뭐가 다르겠나. 아마 황교안 대표가 종로에서 당선되더라도, 결국에는 청와대 발목만 잡다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곳에서 만난 직장인 황진서씨(33) 역시 “정부가 잘한 것도 없지만, 한국당 때문에 못한 일도 많은 것 같다. 여기서 황교안 대표에게 표를 주면 한국당에 잘못된 사인을 줄 것 같아서 (이낙연 전 총리에게) 주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전했다.

2월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만난 이희숙씨 ⓒ시사저널 최준필
2월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만난 이희숙씨 ⓒ시사저널 최준필

“큰 인물 많이 나왔다고 지역 뭐가 달라졌나”

앞서 황 대표는 2월7일 종로 출마 기자회견에서 “종로를 반드시 정권 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며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을 종로에서 시작해 서울, 수도권,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종로 선거는 개인 후보 간 대결이 아니다”면서 “나라 망친 문재인 정권과 미래 세대의 결전이기 때문에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두 후보 간 대결이 격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종로 선거는 ‘정권 심판론 vs 야당 심판론’ 구도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여야 간 자존심 대결로 흐르는 모양새가 적절치 않다는 종로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과 한국당, 이 전 총리와 황 대표 모두 종로를 대선으로 향하는 ‘길목’쯤으로 여기고 있는 탓에, 정작 지역 현안에 대한 고민은 얕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혜화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택시기사 이원재씨(가명·44)는 “솔직히 나는 (보수세가 강한) 대구 출신이라 그런가, 민주당에 정이 가지 않는다”면서도 “우리 지역 일꾼을 뽑는 게 총선인데, 당만 보고 표를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황교안 대표가 종로 출마를 너무 오래 끌다가 결정하는 걸 보면서 실망을 좀 했다. 벼락치기로 선거를 하려니까 자꾸 상대(민주당) 욕만 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평창동에서 30년간 살았다는 이희숙씨(66)는 “여태껏 광화문 북쪽 주민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따릉이하고 마을버스밖에 없었다. 자연경관 하나 바라보며 (평창동에) 살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에는 이낙연 전 총리가 대중교통 문제 해결을 약속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세우는 정책으로 사람을 뽑아야지, 이미지나 당만 보고 결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략 대결에 지쳐 기권을 하겠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이른바 지지하는 당이 없는 ‘무당파’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혜화역 인근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박이령씨(가명·35)는 “종로에서 ‘큰 사람’이 많이들 배출됐다고 하는데 그래서 종로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는지 모르겠다”며 “이번에도 또 어김없이 (정치 1번지라는) 같은 구호가 나오는데, 이 구호가 오히려 종로에 악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 전 총리와 황 대표) 모두 다른 생각이 더 커 보여서 표를 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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