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들…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봉준호 월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7 10: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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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페송' 송강호부터 이정은·최우식까지…'원조 페르소나' 변희봉도 재주목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다수를 함께한 그의 페르소나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라는 뜻의 ‘봉페송’이라는 별명이 이를 입증한다. 아카데미 4관왕의 역사를 쓸 때도 봉 감독의 옆에는 그가 있었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기생충 시나리오를 거절하면 프로젝트를 백지화할 생각까지 했다고까지 말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리얼리즘’의 정점이라면 그 중심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높은 연기가 있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송강호는 독보적인 연기를 펼쳤다. 블랙코미디, 범죄물, SF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그려내는 다양한 영화들에서 송강호는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연기했다.

《기생충》에 출연한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최우식·이정은(왼쪽부터)
《기생충》에 출연한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최우식·이정은(왼쪽부터)

둘의 첫 만남은 1997년 《모텔 선인장》 연출부였던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의 단역 배우였던 송강호의 연기를 보고 나서 이뤄졌다. 봉 감독은 무명이었던 송강호에게 ‘팬심’으로 연락해 만남을 제안했고, 언젠가 영화를 함께 하자고 말했다. 한 영화를 함께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봉 감독이 송강호에게 삐삐 음성 메시지를 남겼고, 예의 바르고 정중한 음성을 들은 송강호는 언젠가 봉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봉 감독의 주연급 남자 배역은 모두 송강호에게 주어졌다. 송강호 역시 봉 감독의 출연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다고. 송강호는 지난 20년 둘의 가장 좋은 추억으로 《살인의 추억》 크랭크업 날을 꼽았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어수선한 와중에, 봉 감독이 맞은편 논두렁에서 걸어와 아무 말 없이 송강호를 포옹했다고 한다. 송강호는 그렇게 봉 감독의 첫 상업 흥행작 《살인의 추억》(2003)부터 함께 하며 ‘봉준호 월드’에 동참했다. 이후 《괴물》(2006)은 봉 감독이 송강호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송강호는 무려 네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을 일궈갔다.

《기생충》의 페르소나들도 과거 인연이 있다. 가정부 문광 역을 맡은 이정은과의 인연은 《마더》(2009)에서 시작됐다. 극 중 죽은 여고생의 장례식장에서 싸우는 유족 역할이었지만, 이정은의 그 재능을 잊지 않은 봉 감독은 《옥자》(2017)의 목소리 연기를 그에게 부탁했다. 이정은의 연기는 《기생충》의 화룡점정이었다.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출연 제의를 받은 기우 역 배우 최우식 역시 《옥자》에 기업의 말단 직원으로 출연,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전력이 있다. ‘봉준호 사단의 비밀병기’라는 표현에 걸맞게, 《기생충》에서 최우식은 그의 연기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원조 페르소나, 배우 변희봉

아쉽게도 《기생충》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지만, 배우 변희봉도 봉 감독의 페르소나로 꼽힌다.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변희봉은 함께 했다.《플란다스의 개》를 준비하던 봉 감독은 배우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던 변희봉의 과거 출연작을 줄줄 읊으며 출연해 줄 것을 설득했고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8), 《옥자》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변희봉이 연기한 모든 인물의 이름이 ‘희봉’이었을 정도로,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를 생각했다.

그렇게 변희봉의 명품 연기는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정점들에서 항상 빛을 발했다. 봉 감독이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본 ‘원조 페르소나’ 변희봉은 2017년 칸영화제에서 돌아온 뒤 tvN 《미스터 선샤인》의 캐스팅 섭외를 받기도 했지만 출연 전 건강검진을 통해 췌장암을 발견하고 치료에 매진했다. 최근 변희봉은 봉 감독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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