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다수를 함께한 그의 페르소나다. ‘봉준호의 페르소나 송강호’라는 뜻의 ‘봉페송’이라는 별명이 이를 입증한다. 아카데미 4관왕의 역사를 쓸 때도 봉 감독의 옆에는 그가 있었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기생충 시나리오를 거절하면 프로젝트를 백지화할 생각까지 했다고까지 말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리얼리즘’의 정점이라면 그 중심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높은 연기가 있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송강호는 독보적인 연기를 펼쳤다. 블랙코미디, 범죄물, SF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그려내는 다양한 영화들에서 송강호는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연기했다.
둘의 첫 만남은 1997년 《모텔 선인장》 연출부였던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의 단역 배우였던 송강호의 연기를 보고 나서 이뤄졌다. 봉 감독은 무명이었던 송강호에게 ‘팬심’으로 연락해 만남을 제안했고, 언젠가 영화를 함께 하자고 말했다. 한 영화를 함께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봉 감독이 송강호에게 삐삐 음성 메시지를 남겼고, 예의 바르고 정중한 음성을 들은 송강호는 언젠가 봉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봉 감독의 주연급 남자 배역은 모두 송강호에게 주어졌다. 송강호 역시 봉 감독의 출연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다고. 송강호는 지난 20년 둘의 가장 좋은 추억으로 《살인의 추억》 크랭크업 날을 꼽았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어수선한 와중에, 봉 감독이 맞은편 논두렁에서 걸어와 아무 말 없이 송강호를 포옹했다고 한다. 송강호는 그렇게 봉 감독의 첫 상업 흥행작 《살인의 추억》(2003)부터 함께 하며 ‘봉준호 월드’에 동참했다. 이후 《괴물》(2006)은 봉 감독이 송강호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송강호는 무려 네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을 일궈갔다.
《기생충》의 페르소나들도 과거 인연이 있다. 가정부 문광 역을 맡은 이정은과의 인연은 《마더》(2009)에서 시작됐다. 극 중 죽은 여고생의 장례식장에서 싸우는 유족 역할이었지만, 이정은의 그 재능을 잊지 않은 봉 감독은 《옥자》(2017)의 목소리 연기를 그에게 부탁했다. 이정은의 연기는 《기생충》의 화룡점정이었다.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부터 일찌감치 출연 제의를 받은 기우 역 배우 최우식 역시 《옥자》에 기업의 말단 직원으로 출연,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전력이 있다. ‘봉준호 사단의 비밀병기’라는 표현에 걸맞게, 《기생충》에서 최우식은 그의 연기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원조 페르소나, 배우 변희봉
아쉽게도 《기생충》에 함께 참여하지 못했지만, 배우 변희봉도 봉 감독의 페르소나로 꼽힌다. 봉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변희봉은 함께 했다.《플란다스의 개》를 준비하던 봉 감독은 배우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던 변희봉의 과거 출연작을 줄줄 읊으며 출연해 줄 것을 설득했고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8), 《옥자》까지 총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변희봉이 연기한 모든 인물의 이름이 ‘희봉’이었을 정도로, 봉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를 생각했다.
그렇게 변희봉의 명품 연기는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정점들에서 항상 빛을 발했다. 봉 감독이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함께 지켜본 ‘원조 페르소나’ 변희봉은 2017년 칸영화제에서 돌아온 뒤 tvN 《미스터 선샤인》의 캐스팅 섭외를 받기도 했지만 출연 전 건강검진을 통해 췌장암을 발견하고 치료에 매진했다. 최근 변희봉은 봉 감독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