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건설이 평생 일군 회사 짓밟았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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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군부대 공사 수주 도왔더니 약속 안지켜…끝까지 알릴 것”
“약속을 지켰더니 남는 건 망해버린 회사뿐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울동부지검은 한 형사고소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증거불충분이었다. 무려 16년 전인 2004년에 벌어진 일인데다 증거가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소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항고했다. 이 또한 서울고검에서 올해 1월 항고기각 결정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인은 또 재정신청까지 했다. 

고소인은 왜 약 16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법적 절차에 나섰을까. 고소인의 이름은 박세용. 박씨는 당시 세광이앤디(세광)라는 전문건설업체 대표였다. 박씨는 과거 통일재단 산하였던 일성건설의 미군부대 공사 수주를 도와줬다고 주장했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일성건설 측은 미군부대 공사 수주 자격이 있었던 세광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수주 자격을 갖춘 세광이 일성건설 수주를 돕는다면, 향후 일성에서 진행하는 모든 공사를 세광에게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박씨는 일성 측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세광) 임원까지 일성 측으로 보내 일성이 수주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왔다. 일성건설은 1년여의 시간이 지나 미군부대 공사를 수주할 자격을 갖췄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이후 일성의 공사를 수주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커졌다.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세광 측에서 오히려 세광 측을 배제시켰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박씨는 계속해서 일성건설 측에 경영 어려움을 호소하며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때마다 일성 측 인사들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10년 넘는 시간이 지났다. 박씨는 일성건설 측이 자신을 철저히 농락했다고 했다. 1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 법적 조치까지 취하게 됐다. 박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갑’의 위치에 있는 원청이 하청 업체에게 회사가 망할 정도로 이른바 ‘갑질’을 한 셈이다.

시사저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을 끄집어낸 박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통일재단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철저히 한 회사를 망쳐놨다. 그동안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버텨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이다.

2004년 당시 대표이사로 있던 세광이앤디는 어떤 회사인가.

“1996년부터 미극동공병단(F.E.D, 이하 FED)의 공사를 수주한 업체로부터 하청을 받아 미군부대 관련 공사를 많이 진행해온 전문건설업체였다. 철근콘크리트나 철거공사 등을 주로 했다. 그 결과 미군 부대로부터 직접 수주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2004년에는 전문건설업체를 벗어나 종합건설업체를 탈바꿈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일성건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나.

“일성건설은 오래 전부터 사업관계를 맺어왔던 회사였다. 그러던 중 2003년 경 미군주둔지를 평택으로 옮기기로 결정되면서, 수많은 건설업체들이 이 공사를 수주하려 시도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FED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미군 관련 공사를 진행했어야 했고, 사고도 없어야 했다. 그 때문에 일성이 수주 자격을 갖춘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떤 도움을 요청했나.

“당시 일성건설의 방아무개 회장과 송아무개 부사장, 김아무개 상무 등 경영진이 2004년경 회장실로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일성건설이 입찰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향후 일성건설에서 진행하는 모든 공사를 줘 수익이 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박세용 전 세광이앤디 대표. ⓒ시사저널 최준필
박세용 전 세광이앤디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그래서 그 약속을 믿고 도와준 것인가. 어떻게 도와줬나.

“그렇다. 구두약속이라고 해도 계약효과가 있기 때문에 향후 사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미군복지단체 공사수주 담당자를 일성건설로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진행하려던 공사의 계약자 명의를 일성건설로 변경하도록 해 줬다.”

그 결과 일성건설이 입찰자격을 갖추게 됐나.

“맞다. 2004년부터 공사를 소위 ‘밀어줬다.’ 그 결과 1년 정도 지난 2005년 말쯤 일성건설이 FED의 등록업체가 될 자격을 갖췄다. 자격을 갖춘 이후 약 2개월 정도 지난 뒤에 일성건설이 자체적으로 수백억원대의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일성 측에서 이후 약속을 지켰나.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일성을 도와줄 당시 다른 종합건설회사의 하도급을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영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일성이 자격을 갖춘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를 외면했다. 개인 자금으로 회사의 급여나 운영자금을 충당하기에 이르렀다. 그 상태로 약 1년을 버텼는데, 일성건설 관계자들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시간만 끌었다.”

이후 세광은 어떻게 됐나.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일성에 보냈던 공사수주 담당자를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일성 측은 미군부대 공사 수주를 위해 계속 필요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주지 않았다. 이후 다른 회사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면서 2007년 4월에 최종적으로 청산됐다.”

당시 일성건설 경영진들은 어떻게 됐나.

“통일재단 입장에서 이들은 큰 사업을 해낸 셈이다. 이후 방아무개 회장은 통일그룹재단 부이사장으로, 송아무개 부사장은 선원건설 사장으로, 김아무개 상무는 일신석재 사장으로 영전했다. 모두 일성건설을 떠나면서 세광과의 일은 없던 일처럼 잊어버렸다.”

손해 금액은 얼마나 되나.

“검찰에 고소하면서 산정한 손해 금액은 465억원 가량이다. 일성건설은 우리 회사로 인해 2004년 이후부터 수천억원에 달하는 이득을 본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에 왜 곧바로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나.

“(약속을 지킬 거란)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던 중인 2006년부터 경영진들을 자주 찾아가 계약을 이행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합병 이슈가 있으니 끝나고 도와주겠다’, ‘통일그룹 내부에 문제가 좀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등의 핑계만 대고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온갖 요구를 다 했다. 2007년에는 하도급 계약을 약속해놓고 발주를 안하는 일도 있었다. 2008년에도 도와주면 하도급을 주겠다고 약속하더니 약속을 안 지키더라. 2016년에도 구리시 공사 철거를 나에게 맡기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다른 업체와 계약했다. 철저히 농락당한 셈이다.”

그 때문에 이제서라도 법적 절차에 나선 것인가. 이미 무혐의 처분되거나 항고도 기각됐다.

“그동안 순진한 기대로 계속 매달렸다. 돌이켜보니 이들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조치에 들어가게 됐다. 물론 시간이 오래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법 위반 문제뿐만 아니라 작은 업체들의 어려움을 짓밟은 비도덕적인 사건이다. 이들의 만행을 널리 알릴 것이다.”

현재 박씨는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알리겠다며 과거 일성건설 관계자들이 몸 담았던 통일교(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측에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박씨는 “한 사람이라도 이 사건을 더 알도록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연합 측은 “이 사건은 이미 너무 오래된데다 일성건설과의 문제다. 가정연합은 통일재단과 달리 기업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가정연합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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