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헌정사상 첫 ‘셀프제명’ 현실화…실정법 위반 논란도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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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헌당규 무리하게 고친 합당절차도 정당법 위반 가능성 제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시사저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시사저널

바른미래당 내홍이 깊어지는 가운데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제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7일 오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자신의 2선 후퇴를 전제로 한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의 통합 추인을 보류했다. 앞서 세 당 통합대표들은 회의를 열고 현재의 지도부가 공동대표로 하되 2월28일 이후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다는 합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박주선·김동철·주승용·임재훈·채이배·최도자 등 당권파 의원은 이날 손 대표가 거부 의사를 밝힘에 따라 별도회동을 갖고 “손 대표의 마지막 결단을 촉구하며 만약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18일 오전 11시 의원총회를 열어 비례대표 제명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바른미래당은 사실상 공중분해 된다.

계획대로 의총에서 제명이 최종 결정되면 자유한국당행을 모색 중인 김중로 의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안철수계 비례대표 5명(이태규‧이동섭‧신용현‧김삼화‧김수민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추진 중인 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수 있다. 이들은 지역구 의원인 권은희 의원과 힘을 합쳐 신당인 ‘국민의당’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바른미래당 17명 의원중 비례대표는 13명이다. 당권파 내에서도 임재훈‧채이배‧최도자 의원 등은 비례대표여서 제명돼야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당권파가 셀프의총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 제명 절차를 밟는 것도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박주현‧장정숙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현재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느쪽에서도 활동하고 있지 않은 비례대표 의원은 박선숙‧이상돈 의원 두 사람뿐이다.

바른미래당이 셀프제명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가칭 민주통합당이 원내교섭단체를 유지해 4월 열린 총선에서 기호 3번을 받기 위해서다. 현행 바른미래당 당헌에는 ‘당 소속 국회의원의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다.

 

바른미래당 일각, 당적변경 문제 생길 수도

실질적인 행정 절차를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당 관계자는 “당에서 제명을 하면 탈당증명서나, 제명증명서 등을 국회사무처에 제출해야하는데, 지금 상태로라면 당 대표의 직인을 찍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 세 당은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통합의원모임’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선 일부 의원이 바른미래당의 셀프제명 위험성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분위기를 전한 당 관계자는 “제명 절차가 깔끔히 마무리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1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표 직인으로 대표되는 당의 공실적인 의사결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과거 통합진보당 때도 당 대표 직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도 국회사무처나 선관위가 이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지난해 12월18일 국회에서 야 3+1 선거제 공조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동영 민주평화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지난해 12월18일 국회에서 야 3+1 선거제 공조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국회법 33조 3항에 따르면,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이 당적을 취득하거나 소속 정당을 변경한 때에는 그 사실을 의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보고 주체 외에 절차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탈당의 경우 탈당확인서와 같은 서류를 첨부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하는 만큼 제명도 같은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중앙선관위나 국회사무처는 “셀프제명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인의 당적 변경과 관련해 뚜렷한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최근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김관영 의원의 경우 국회사무처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으며, 당시 당의 공식 날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의 통합방식도 논란이다. 앞서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2월7일 오전 국회에서 제200차 최고위 회의를 열고, 당헌‧당규 일부를 개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최고위는 ‘모든 전당대회의 기능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개정했다.

기존 바른미래당 당헌에 따르면, 정강정책의 채택과 변경, 당헌의 제정과 개정, 당의 해산과 합당에 관한 의견, 대통령후보자‧당대표‧최고위원 지명 등은 전당대회를 통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을 최고위 결정으로 대체한 것은 현실적으로 바른미래당이 정상적인 전당대회를 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월16일 국회에서 취임 인사차 예방한 최경환 대안신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월16일 국회에서 취임 인사차 예방한 최경환 대안신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2018년 2월13일 마련된 당헌 부칙에 따르면, 전당대회에 구성되지 못할 경우 당무위원회가 전당대회 권한을 행사하며, 당무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하면 최고위원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번 개정을 통해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전당대회-당무위원회-최고위원회의 단계를 전당대회-최고위원회로 간소화시켰다.

또 이날 최고위에서는 ‘당의 합당 및 해산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한 당원의 투표권(당헌 제6조)도 일부개정했다. 개정 전 당헌은 당대당 통합 및 당 해산에 있어 전당원의 의사를 묻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날 최고위 추인으로 탄생한 대통합추진위원회는 일종의 통합 수임기관이다.

 

당원 의사 묻지 않은 최고위 통합결정도 논란

하지만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이 새로운 당명으로 합당하거나 다른 정당에 합당될 때는 합당하는 정당의 대의기관이나 그 수임기관의 합동회의 결의로써 합당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참고로 1975년 5월21일 ‘어느 한 정당이 ’합당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지 않고 전당대회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받은 기관에서 합당을 위한 위임기관’을 구성할 수 있는지(민주통일당 이상원 사무처장 의뢰)를 물은 질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의기관인 전당대회에서 합당에 관한 권한을 명시적으로 위임받지 아니한 기관에서는 합당을 위한 수임기관을 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바른미래당이 당무위나 전당대회를 거치지 않고 최고위를 열어 당대당 통합을 진행하는 것에 문제가 제기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 참고로 자유한국당은 2월13일 국회에서 대의기관 성격인 전국위원회를 열어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과의 합당을 결의한 바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아직 당에서 공식적으로 유권해석을 의뢰하지 않아 뭐라 평가하기는 힘들다”면서도 "현행 정당법에서 대의기관과 수임기관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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