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는 예금이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6 11: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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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자산운용 중간 검사 결과 보니…판매사․운용사 불법에 감독 실패 합쳐진 비극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환매가 중단된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투자자들의 자산 가치는 절반 또는 그 이하로 떨어졌다. 일부 펀드는 원금을 100%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말 현재 환매가 연기된 펀드의 규모는 1조6679억원이다. 개인이 9943억원 규모고 법인이 6736억원이다. 손실액은 많으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손실액만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2월14일 대신증권 앞에서 시위 중인 피해자들 ⓒ시사저널 최준필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손실액만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2월14일 대신증권 앞에서 시위 중인 피해자들 ⓒ시사저널 최준필

라임자산 손실액 1조원 이상 추정

라임의 실패는 결국 부족한 실력 탓이었다. 라임이 주로 투자한 메자닌펀드는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을 가진 증권. 예를 들면 전환사채(CB) 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CB나 BW는 유동자금이 부족한 기업들이 투자금 유치를 위해 발행한다. 리스크 때문에 공모 펀드는 되도록 투자하지 않고, 시장에서 거래도 잘 안된다. 물론 기대대로만 된다면 발행기업의 주가가 먼저 오르고, 그럼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된다. 그 이후 주식을 처분하면 수익이 실현될 것이고, 운용사는 이 수익에서 수수료와 이자 비용을 떼고 투자자에게 지급하면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고도의 전문성이다. 기업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고, 그래서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라임이 투자한 40여 개 기업 중 약 75%가 주가 하락 상태다. 실패한 것이다.

메자닌펀드에 이어 문제가 된 무역금융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도 마찬가지다. 무역금융채권은 대출채권 혹은 매출채권의 성격을 갖고 있다. 흔히 무역 거래를 할 때 필요한 6개월 미만의 단기자금을 대출해 주거나 외상으로 수출한 대금을 할인해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낸다. 큰 회사의 확실한 거래야 은행들이 해 줄 것이고, 안전성이 높지 않아 은행이 취급하지 않는 약간 위험한 거래에 투자한다. 펀드가 위기를 맞은 것은 남미 경제의 추락에서 비롯된다. 특히 전체 자산의 40%를 투자한 미국의 글로벌 무역금융 펀드가 남미 경제의 추락으로 자산 매각을 결정하고 환매 불가를 선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래 무역금융 펀드는 전문적이며 어려운 분야다. 미국에서도 무역금융 펀드를 직접 다루는 대형 운용사는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다. 전문성이 없는 곳이 쉽게 돈 벌겠다고 함부로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TRS(Total Return Swap·총수익스와프)를 통해 투자금을 늘렸기 때문이다.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은 알고 보면 일종의 대출이다. 증권사가 자산을 대신 매입해 주기는 하는데, 다만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펀드는 TRS 거래를 통해 빌린 돈으로 원금의 두 배를 투자하는 것과 같은 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 대신 손해가 나면 당연히 손실도 두 배가 된다. 실력도 부족한데 빚까지 얻어 투자했다가 실패했으니 부실은 더 커졌다. 실력이 부족한 데다 어리석었다면 그나마 정직하기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라임은 거짓말까지 했다. 손실을 은폐했고, 특정 펀드의 부실을 다른 펀드가 인수하는 이를테면 ‘부실 돌려막기’도 했다. TRS로 인한 위험은 투자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금융감독원의 지적대로 펀드는 설계부터 비정상적이었다. 애초에 CB의 만기에 맞춰 3년으로 설정해야 하는 펀드를 만기 6개월 또는 1년짜리 펀드로 쪼개서 팔았다. 금융감독원은 상품의 설계와 운용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판매 과정에 불완전판매는 없었는지, 금융회사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단이나 내부통제는 적절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펀드 운용사의 위험관리 조직이나 체계, 내부통제에 관한 요건 등은 재정비해야 한다. 운용사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과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일이 급하다.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확대해야 하고, 당국의 감시와 처벌도 더 엄격해져야 한다. 판매직원의 전문성이나 고객 보호에 대한 직업윤리 역시 제고돼야 한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각국은 펀드에 대한 다양한 규제 장치를 도입했다. 2018년 국제증권감독기구는 개방형 펀드의 경우 설계 단계부터 환매 정책과 일일 유동성 관리 수단을 갖추도록 하는 방안을 권고하기도 했다.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도 검토하면 좋을 것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라임이 유동성 확보에 실수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지금 와서 보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라임의 실패는 감독에 소홀했던 금융 당국, 윤리의식을 상실한 판매사와 운용사의 불법행위가 합쳐진 비극이다. 횡령이나 수익률 돌려막기, 대출 사기는 당연히 범죄다.

 

투자자 스스로 의심하고 변화해야

다만 현재 논의에서 빠져 있는 한 가지 부분이 있다. 투자자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요하다. 자본시장 역시 제도적 장치가 아무리 잘 마련된다고 해도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게임의 규칙’이다.

펀드에 투자하는 두 개의 부류가 있다. 그 하나는 전문투자자라고 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다. 다른 하나는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규모의 돈을 가진 자산가들이다. 법은 이 두 부류의 투자자들을 같은 자격으로 간주한다. 선진 금융시장에선 위험한 투자를 일반인들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높은 수익률에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투자자 스스로 알고 이를 피하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선진 금융시장에서 훨씬 더 활발히 활동하는 데도 투자손실이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지 않는 이유다. 고위험-고수익 상품은 말 그대로 수익도 많을 수 있지만, 위험도 큰 상품이다. 투자자들이 예금이 아니라 펀드 상품을 선택한 것은 예금상품의 수익률에는 만족하지 못해서다. 예금이 아닌 펀드에 돈을 넣은 소비자는 그때부터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투자자가 된다.

금융회사를 보는 시각부터 달리해야 한다. 고수익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금융회사의 이익과 맞닿아 있다. 더 높은 수익을 찾는 것은 투자자만이 아니다. 은행이든 증권회사든 자산운용사든, 모두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찾는다. 소비자 스스로의 적극적인 변화 없이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동시에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앞으로도 내놓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펀드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신뢰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다. 그들은 실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펀드는 예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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