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한반복 두더지 게임, 집값의 심리학
  • 노영희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6 18: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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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일찍이 ‘무의식적 모방 학습, 관찰 학습’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이 보상받거나 처벌받는 것을 보기만 해도, 학습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고, 결국 그 상황이 되면 자신도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런 제3자의 행동이 야기하는 보상 혹은 처벌 중 어떤 것에 좀 더 초점을 두느냐다. 심리학적으로는 보상이 주어지면 원인이 되는 행동의 빈도수가 증가하게 되고, 처벌이 주어지면 원인이 되는 행동의 빈도수가 감소하게 된다고 본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학습심리에서는 결국 적당한 보상과 처벌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향후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정부가 수립한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어느 정도는 예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잡힐 듯 잡힐 듯, 절대 잡히지 않으며 우리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게 뭘까. 새벽에 일어나서 한밤중까지 쉴 새 없이 일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결혼을 미뤄두게 만들고, 마치 절대 당첨되지 않을 로또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우리를 들뜨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게 뭘까. 바로 그것은 집값이다.

6·25 전쟁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 세상으로 바뀌면서 대한민국 모든 정권은 ‘집값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은 없다. 한 번은 강남을, 한 번은 강북을, 한 번은 수도권을, 한 번은 저 멀리 제주도를 누르고 누르고 또 눌러보지만, 결국 절대 끝나지 않을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서 두더지는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고, 풍선 효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한 정부 관료들이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국민들의 학습 능력을 너무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강남·서초의 집값을 누르니, 수용성(수원·용인·성남)이 고개를 쳐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정부가 2월20일 ‘수용성’ 등 풍선 효과 지역을 타깃으로 19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니, 이제는 시흥·군포·산본 등 소외지역이 들썩거리고, 김포·양주 등 경기 북부도 난리가 났다. 아마 총선을 앞두고 이런 경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가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풍선효과로 집값이 국지적으로 뛴 수원 영통·권선·장안구, 안양 만안구, 의왕시를 조정대상지역으로 묶는 핀셋 처방을 내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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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정부가 9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구매할 때 자금의 출처를 보고하게 하고, 담보 대출을 못 하게 했더니 결국 대출에 의지해야만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서울이 아닌 수도권 인근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썩거리게 된 것이 바로 이른바 수용성 효과였다.

사람들이 그렇게라도 해서 집을 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결국은 그렇게라도 해서 집을 마련하지 않으면 평생 내 집 한 번 가져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몇 년 안에 그 이상으로 오른 집값이 내게 큰 보상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 때 최경환 노믹스의 모토였던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정책을 욕했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집을 샀던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정부 관료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국 무리해서 집을 사거나, 실질 거주 목적이 아닌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사면 망한다는 것을 결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집값 잡기 두더지 게임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정부는 적절한 보상과 처벌이 어우러진 현실적인 부동산 대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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