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나라’ 일본, 왜 코로나19 방역 실패했나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6 14:00
  • 호수 15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염자 속출로 아베 내각 지지율 하락… 보수언론도 "한국보다 못하다" 비판

2월13일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으로 의심받는 20대 남성 환자가 확인됐다. 이 감염자에 관한 정보는 언론이나 정부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먼저 나왔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지하철을 이용했는지를 먼저 알린 것은 SNS였다. 어느 정보를 믿어야 할지,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 의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일본 국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믿을 만한 기관에서 신속하게 전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시돼야 한다며 상세한 정보를 밝히길 꺼려했다. 일본 국민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식의 한 단면이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집단 발생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정박 중인 일본 요코하마항 크루즈 터미널 ⓒ연합뉴스
코로나19 감염자가 집단 발생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정박 중인 일본 요코하마항 크루즈 터미널 ⓒ연합뉴스

日 보수지도 "한국보다 못한 코로나 대책"

각 지자체들 “중앙정부 정보 제공에 불만”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의 정보 공개 방식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많은 지역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수도권을 포함해 북쪽 끝 홋카이도, 남쪽 끝 오키나와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1월29일 중국 우한(武漢)에서 온 관광객들을 안내했던 가이드의 감염이 확인되자 오사카(大阪)부의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지사는 다음 날 이동 경로를 상세하게 공표했다. 후생성의 방침과는 다른 조치를 취하며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냉정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며 공개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오사카시의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郎) 시장도 요시무라 지사의 판단에 일정 부분 지지를 보내며 “혼란을 억제하고 걱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감염자가 확인된 다른 지자체, 와카야마(和歌山)현과 홋카이도(北海道)에서도 지역 주민의 안전과 불안 해소를 위해 구체적인 정보를 지자체 차원에서, 감염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 제공하고 있다. 중앙정부 방침과는 별도로 정보를 제공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정부와 자치단체, 의료현장 사이에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으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히라이 신지(平井伸治) 돗토리(鳥取)현 지사는 2월17일 일본 언론에 중앙정부의 정보 제공 부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만약에 우리 현과 관련 있는 인물이 (크루즈) 선내에 있다면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알려줬으면 좋겠지만 중앙정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며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비판했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책도 여러 방면에서 비판받고 있다. 2월19일 오전 격리됐던 승객들 중 바이러스 검사에서 감염이 확인되지 않고 증상이 없는 약 500명이 하선을 시작했다.

다음 날인 20일, ‘아사히(朝日)신문’은 사설에서 갈피를 못 잡는 일본 정부의 크루즈 대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러스 검사 태세가 늦게 정비되고 대응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증상이 없고 건강한 사람, 검사에서 음성이었던 사람까지 선내에 머물게 할 필요가 과연 있었는가 하는 일본 국민들의 비판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감염 의심이 있는 사람을 상륙시키지 않고 미즈기와(水際)에서 막겠다는 방침을 고집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지적하고 있다. ‘미즈기와’는 일본어로 물가를 뜻하는데, ‘미즈기와 대책’은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외부의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방역 정책 중 하나다. 크루즈의 해상 격리도 그 일환이었다.

전문가들로부터 유효성을 지적받고 있는 이 구멍투성이인 미즈기와 대책만을 고집하는 일본 정부에 한국 정부를 본받으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극우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산케이(産經)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黒田勝弘)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조차 ‘일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 정부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 2월18일 ‘모든 재난은 인재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거국적인’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전했다. 지하철 승객의 70~80%가 마스크를 하고 있으며 마스크 착용을 싫어하는 자신이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적었다. 칼럼은 박근혜 정권 당시 메르스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초기부터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조치를 대체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고 있는 도쿄 시민들 ⓒ 연합뉴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고 있는 도쿄 시민들 ⓒ 연합뉴스

부실한 코로나 대책에 아베 지지율 급락

장관은 대책 수립 뒤로하고 후원회 참석해 논란 일본 정부의 전세기 대응을 한국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다. 일본 정부의 경우 1월29일 첫 전세기로 우한의 자국민 일부를 귀국시켰다. 이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처럼 탑승 전 ‘귀국 후에 바이러스 검사를 받겠다’는 서명 등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사를 받는 것은) 자유 의지”라며 검사를 받지 않고 돌아간 이들이 생겼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사전 준비 부족으로 귀국자들이 머무는 호텔에서 2인 1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 방을 사용했던 사람들 중 2명의 감염이 확인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거리의 슈퍼나 편의점 등에서 마스크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에서의 마스크 가격은 몇 배나 올랐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경우 마스크 증산을 위해 마스크 제조 기업에 보조금을 교부하는 방침만을 세운 상태다. 인터넷 쇼핑 등에서의 가격 상승은 해외로부터의 구입 등도 원인이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은 “가격은 수요가 정한다”며 개입을 피하고 있다.

이에 아사히신문의 독자 투고란에는 “한국에서는 마스크의 대량 사재기를 처벌한다”며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 속에서 자유경쟁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지금처럼 심한 가격 변동의 경우 국가는 생명 방위가 필요한 이런 때에 시장에 개입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실리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도마에 오르면서 내각 지지율도 급락했다. 2월15일과 16일 이틀 동안 ‘교도(共同)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41%로 1월 조사에 비하면 8.3%포인트나 하락했다. 아사히신문이 같은 날 실시한 조사에서도 정부의 대응에 대해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50%로 ‘(좋게) 평가한다’는 대답 34%를 웃돌았다. 또 일본 내의 감염 확산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낀다는 대답이 85%에 달했다.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환경대신이자 차기 총리 후보로도 주목받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는 2월16일 열린 코로나19에 관한 정부 회의에 결석하고 지역구 신년회에 참석해 국가의 위기관리보다 후원회 활동을 우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