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싫어 민주당? 차악 찍어선 최선의 정당 가질 수 없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2 07: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칼럼 고발’ 당한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칼럼 후회 안 해...선거법 보다 표현의 자유 보장돼야”
“기득권화 된 민주당 진보당 자격 없어...586세대 퇴장해야”

신문에 기고한 칼럼 하나가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었다. 진앙지는 1월2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는 "촛불 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주장했다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민주당은 고발을 취하했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도 팽팽히 맞섰다.

2월18일 임 교수를 자택 인근에서 만났다. 임 교수가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다만 다소 지쳐 보였다. 그는 “(칼럼 고발이 알려진) 다음날부터 구토하고 몸이 안 좋았다”며 “내가 이렇게 체력도 약하고 겁도 많다”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정당, 정치, 진보’에 대해 묻기 시작하자, 이내 임 교수는 ‘그 칼럼니스트’가 돼 잔뜩 날이 선 말을 뱉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한국 정치가 80년대 이분법적 지형에 머물러 있다”며 “안으로는 이견을 봉쇄하고, 밖으로는 배타적 태도만 취할 뿐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 연구교수가 2월1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카페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고성준 기자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 연구교수가 2월1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카페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있다. ⓒ고성준 기자

 

“표현의 자유 막는 선거법 폐지돼야”

언론에선 그를 ‘진보 교수’라 부른다. 임 교수가 민주당을 저격한 게 더 큰 파장을 부른 이유기도 하다. 실제 임 교수는 사회 바닥의 문제 그리고 한국 정치 왼쪽의 문제를 파고든 학자다. 통합진보당 문제를 다룬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을 주제로 논문을 썼으며 택시노조운동, 도시하층민의 정치적 주체화 과정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민주당 지지자들은 임 교수를 배신자라 부르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 ‘내부 총질’을 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 같은 반응을 예상했을까.

“내가 쓴 논문(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이 한 통신사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모든 언론에서 받아썼고,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도 너무 무서워서 전화를 끄고 도망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겪어도 겪어도 (대중의 반응은) 무섭다.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 그거라도 안 하면 나의 자존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나.”

임 교수는 자신을 ‘비주류’라 불렀다. 그가 정의 내리는 비주류란 2018년 10월29일자 교수신문에 실린 임 교수의 칼럼 ‘비주류를 위한, 비주류의 학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칼럼에서 임 교수는 “나의 학문적 관심은 내 존재와 마찬가지로 비주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생략) 인문사회과학에서 소외분야란 소외계층이나 소외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지배와 권력의 이면을 밝힘으로써 사회와 역사의 실체에 더욱 접근하게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이번 칼럼도 ‘권력의 이면’을 고발했다는 측면에서, 그 특유의 비주류성이 발동한 것으로 풀이됐다.

다만 궁금했다. 왜 그의 펜이 민주당을 향한 것일까. ‘민주당을 빼고 투표하자’는 격한 표현을 꼭 넣었어야 했나. 단순한 물음 뒤에 단순한 답변이 나왔다. 차를 한 잔 들이켠 임 교수가 “난 성격상 돌려서는 얘기 못 한다”며 답을 이었다.

“(칼럼을 통해) 민주당에 ‘이대로는 안 된다’고 협박한 것이다. 선거를 가장 무서워하니까, 민주당을 빼고 투표하라고 말해야 목소리를 듣고 겁을 먹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데 되묻고 싶다. 선거법의 입법 취지가 무엇인가.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것, 부정부패 방지 차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선거법이 돈은 못 막으면서 입은 봉쇄시킨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 선거법은 폐지돼야 맞다.”

 

“민주당은 최선 아닌 차악의 정당”

임미리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경향신문
임미리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경향신문

왜 하필 임 교수는 진보지로 분류되는 경향신문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창당 전)이 아닌 민주당을 비판한 것일까. 이에 임 교수는 “지금의 민주당은 진보당이 아니다. 한국당 때문에 존재할 뿐, 독자적 가치가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민주당의 기득권층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탓에 진작 사라졌어야 할 ‘민주 대 반(反)민주’라는 논리에만 매몰돼 당이 자기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DJ 정권시절 수혈된 5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으로 대학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50대의 나이를 가진 세대) 정치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 이상의 비전을 개발하려면, 운동권 정치인들이 신진 정치인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민주당의 건너편에서는 보수 진영 간 통합 작업이 한창이다. 미래통합당이란 새 간판도 내걸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임 교수가 과거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방선거 출마하거나 문국현 캠프, 안철수 캠프 등에 몸 담았던 것을 보면서, 그가 ‘보수 DNA’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각에 임 교수는 덤덤히 답을 이었다.

“민주당이 기득권화됐다면 한국 보수당은 구습에서 못 벗어난 과거의 흉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한국의 이분법적 정치 지형은 깨져야 한다. 이 지형 안에서는 같은 진영 내 이견의 봉쇄, 밖으로는 배타적 적대만 지속될 뿐이다. 조금 더 다원화된 전선이 형성돼야 한다.”

일각에선 그의 ‘민주당 디스’가 결국 통합당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실제 SNS 상에서는 ‘#민주당만_빼고’라는 해시태그가 공유되고 있다. 임 교수의 칼럼 제목을 빌려 민주당 보이콧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 같은 전망과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통합당이 싫어서, 대안이 없으니까 민주당을 찍는다? 그 생각 탓에 본인의 목소리를 못 내는 것이다. 물론 (칼럼 탓에) 보수당이 득을 볼 수는 있다. 거기에 대한 고민도 물론 있었다. 다만 최악의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게 무서워서 차악에 종속해서 표를 줄 경우 우리는 최선의 정당을 가질 수 없다.”

아래는 임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수척해 보인다. 어떻게 지내셨나.

“언론이랑 인터뷰 안 하려고 했는데, (칼럼 고발이 알려진) 직후에 우리가 인터뷰 약속을 잡지 않았나. 약속 깨는 걸 정말 싫어한다. 사실 몸이 말이 아니었다. 계속 구토하고 기진맥진한 채 집에 있었다.”

온 뉴스가 ‘임미리 칼럼’으로 도배됐었다. 반응을 봤나.

“무섭더라. 신상도 공개되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개인 연락처와 이메일로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안 봤다. 신문도 사실 안 봤다. 단지 나를 걱정하는 지인들의 위로 문자만 확인했다.”

무섭다는 반응이 의외다.

“난 멘탈도 약하고 겁도 많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안 하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그거 안 하면 내가 나의 자존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나. 원체 비주류 마인드가 강하기도 하고. 물욕이나 권력, 명예욕은 없지만 마음 먹은 것은 해야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칼럼 논란이 뜨겁다. 제목부터 수위가 셌다. 논란 예상했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전 칼럼보다 확실히 반향이 컸다. 민주당이 고발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 난 성격상 돌려서는 얘기 못 한다. 민주당에 ‘이대로는 안 된다’고 협박한 것이다. 선거를 가장 무서워하니까, 민주당을 빼고 투표하라고 말해야 목소리를 듣고 겁을 먹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조국 사태가 칼럼의 도화선이 된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정치적 갈등과 조국 사태는 분명 달랐다. 진영 내부의 갈등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수구 대 진보 간 갈등이었다면 조국 사태는 소위 민주 진영 내 사람들 간의 갈등이 빚어졌다. 결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저버린 것이 조국 사태다. 남은 그렇게 살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이런 이들을 지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개했다.”

표현의 자유도 좋다. 다만 선거법 위반 소지를 인지하지 못했나.

“공직선거법 입법 취지가 무엇인가.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것, 부정부패 방지 차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선거법이 돈은 못 막으면서 입은 봉쇄시킨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 선거법은 폐지돼야 맞다.”

진보진영 학자로 분류됐는데 왜 하필 타깃이 민주당인가.

“조국과 민주당을 비판하는 칼럼은 많았다. 그런데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정치 칼럼니스트들이)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판을 해도 선을 안 넘는 거다. 선거를 몇 달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니까. 검열하지 않는 민주 진보진영은 그 자체로 한계다.”

민주당이 변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득권층의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탓에 진작 사라졌어야 할 ‘민주 대 반(反)민주’라는 논리에만 매몰돼 당이 자기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DJ 정권시절 수혈된 5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으로 대학교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50대의 나이를 가진 세대) 정치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 이상의 비전을 개발하려면, 운동권 정치인들이 신진 정치인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미래통합당은 어떤가.

“민주당이 기득권화됐다면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창당 전)은 구습에서 못 벗어난 과거의 흉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한국의 이분법적 정치 지형은 깨져야 한다. 이 지형 안에서는 같은 진영 내 이견의 봉쇄, 밖으로는 배타적 적대만 지속될 뿐이다. 조금 더 다원화된 전선이 형성돼야 한다.”

과거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문국현 캠프, 안철수 캠프 등에 몸 담았던 이력이 보도되기도 했다.

“난 선거 자체를 즐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출신 이력을 문제 삼는데, 2003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창당 당시 합류한 ‘독수리 5형제(이우재·이부영·김부겸·안영근·김영춘)’도 한나라당 출신이었다.”

민주당 지지들 중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택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대안이 없으니까 민주당을 찍는다? 그 생각 탓에 본인의 목소리를 못 내는 것이다. 물론 (칼럼 탓에) 보수당이 득을 볼 수는 있다.”

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곧 통합당의 승리와도 직결되는데.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4월 혁명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냈다. 진짜 무도한 정권이면 다시 한 번 그 정권을 몰아낼 것이다. 다만 최악의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게 무서워서 차악에 종속해서 표를 줄 경우 우리는 최선의 정당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정말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최선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 정당의 반성부터 필요하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가 고발을 취소하고 사과했다.

“나보단 국민에 대한 사과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가볍게 본 것인가. 나는 사실 이번 일로 시끄럽게 돼 굉장히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 저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면 안 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 기자들이 가야할 곳이 굉장히 많다.”

칼럼니스트가 아닌 학자로서 다음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

“(칼럼보다) 논문이 주목받았으면 좋겠다. 작년에 논문을 두 개 냈다. 이 중 2016년 촛불 시위에 대해 재해석한 논문이 있다. 아주 잘 쓴 논문은 아니지만, 비폭력에 대한 비판을 다뤘다. 지난 촛불 시위는 비폭력평화가 조장된 시위였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식을 다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