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생의 딜레마와 위생의 개념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2.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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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의 역습》ㅣ유진규 지음ㅣ김영사ON 펴냄ㅣ280쪽ㅣ1만5000원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출판된 책을 소개하는 규칙을 벗어난 구간(舊刊)이다. 출판 당시 소개할 기회를 놓치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심각 단계를 맞아 대응책에 대해 함께 지혜를 모아보자는 뜻에서 출판된 지 7년 된 이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1970년대 필자가 유년기를 보냈던 남해안 작은 섬에는 병원은커녕 변변한 약국 하나 없었다. 농사와 어업에 바쁜 부모들의 손길이 멀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끼리끼리 흙과 개울을 놀이터 삼아 ‘매우 비위생적’으로 마구 뒹굴며 컸지만 대부분 건강하게 자랐다. 그 섬에 ‘선이 아재’가 있었다. 40대 나이의 아재는 성격이 온순하고 성실해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었지만 한 가지 흠이라면 평소 먹고, 입고, 씻는 것들의 개인 위생관리가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어른들이 환갑 주변에서 세상을 떴음에도 아재는 팔순까지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 김영사ON
ⓒ 김영사ON

딜레마(Dilemma)는 진퇴양난의 모순(矛盾)을 말한다. 어느 한 쪽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청결의 역습》은 위생관리의 딜레마를 논한다. 과학 덕분에 발전한 위생관리는 삶의 질을 개선했다. 하지만 질병의 위험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요소도 동시에 제거했다. 만약 유해 중금속과 함께 미네랄 등 몸에 이로운 영양물질까지 걸러내는 정수기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개인 위생의 목적은 유해한 세균이 몸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위생이란 우리에게 친구가 되는 무고한 세균들에게 항균물질과 항생제를 마구 퍼붓는 홀로코스트를 가하지 않으면서 유해한 병원균들을 적절히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친구 세균들의 도움을 받아 나쁜 세균을 견제하고 물리치는 것이다.

세균학자들이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친구 세균들 때문이다. 아이가 산도를 지날 때 건강에 이로운 친구 세균으로 샤워를 하고, 모유를 통해 공급 받은 친구 세균이 평생건강의 원천이 돼준다. 종종 뉴스가 되고 있는 ‘기적의 놀이터’에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흙, 모래, 개울 등 천연 놀이터가 신체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불리하지 않다는 신뢰도 포함됐을 것이다. 야생의 잡초가 온실의 화초보다 생명력이 강인한 것과 유사한 이치가 아닐까? 오늘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유해 세균들이 우리 몸 속에 침입하고, 우리 몸은 자체 면역체계로 이들을 물리치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남해안 끝자락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감염인과 밀접 접촉했던 11명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불행 중 다행인 뉴스가 떴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등 개인 위생관리와 방역, 치료, 정보공개를 철저히 하되 지나친 공포를 조장하거나 가질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어떤 재난상황에서든 근거 없는, 지나친 공포가 사회를 혼란과 붕괴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데 ‘알아도 몰라도 병’인 지점에 서서 인류가 《청결의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망연히 서있다. 비전문가로서 조심스럽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 몸의 면역력과 친구 세균들의 지원을 믿는 것 또한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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