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멈췄던 올림픽, 바이러스에도 멈출까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2 17: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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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개최 도쿄올림픽 취소 가능성 불거져…일본에 재정적 재앙 부를 수도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국내 스포츠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계 스포츠계에도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스포츠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국내 양대 스포츠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올 시즌 리그 진행이 당장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프로축구는 1983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막 연기를 결정했다. 프로야구는 시범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릴 예정이다. 특히 대구에서 벌어질 예정이던 6경기는 장소를 변경해 상대팀 홈구장에서 열리게 된다.

일본에도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7월 개최되는 됴쿄올림픽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AP 연합
일본에도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7월 개최되는 됴쿄올림픽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AP 연합

선수들 가운데 확진자 나오면 ‘리그 중단’ 최악

겨울철 실내 스포츠인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이미 무관중 경기를 벌이고 있다. 핸드볼코리아리그는 대회 일정을 축소하고, 챔피언결정전을 없애고 페넌트레이스 성적만으로 우승팀을 가렸다. 부산에서 3월22일 개최 예정이던 세계탁구선수권대회도 3개월 뒤인 6월21일로 연기되었다.

아시아축구연맹은 3월4일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현대 대 호주 퍼스글로리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도록 권유했고, 3월26일 천안에서 벌어질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도 무관중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

축구나 야구, 농구, 배구 같은 구기 종목들은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는 구조다. 만약에 선수 가운데 확진자가 나올 경우, 그 팀은 물론 상대팀도 수십 명이 격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리그 자체를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면 그날 경기에 입장한 수천, 수만 명의 관중들이 검진을 받고, 자가격리되어야 한다.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7월24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도 초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모든 올림픽은 ‘자원봉사자 올림픽’이라고 할 정도로 매 대회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 ‘올림픽의 꽃’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적극적인 서비스와 홍보 그리고 봉사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선수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대회 전에 수개월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도쿄올림픽 지원봉사자 교육은 일단 3월에서 5월로 연기되었다.

2월13일 존 코츠 IOC 조정위원장(왼쪽)과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13일 존 코츠 IOC 조정위원장(왼쪽)과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어려우면 개최지 변경보다 취소가 맞다”

또한 3월12일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헤라 신전에서 성화 채화식이 있을 예정인데, 행사를 주관할 그리스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초비상 상태다. 채화된 성화는 7일간 그리스 내에서 봉송할 때 봉송자들이 마스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성화는 3월19일 일본으로 건너간다. 3월26일 후쿠시마현에서 출발해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7월24일까지 일본 전역을 도는데, 1만여 명이 참여하기 때문에 철저한 ‘코로나19’ 예방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은 이미 자국 내 성화 봉송 릴레이 때 국민들에게 현장에 나오지 말고 TV 중계로 지켜봐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최근 리처즈 딕 파운드 전 IOC 부위원장이자 현역 위원은 “도쿄올림픽이 열리지 못하게 되면 영국 등 다른 곳에서 열지 말고 아예 취소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데일리스포츠’ ‘타임스’ 등 세계 유력 매체들도 조심스럽지만 도쿄올림픽 취소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와 역대 최대 금액인 10억 달러의 중계권료 계약이 체결됐고, 일본도 인프라 구축에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지불한 상태이기 때문에 올림픽의 연기나 취소는 재정적 재앙을 부른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을 전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취소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젊은 선수들은 출전권 획득과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훈련하고 있다. 그같이 수년간 피와 땀을 흘린 세계의 젊은 선수들을 감안하면 올림픽 연기나 취소는 세계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취소된 경우는 언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근대올림픽이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올림픽은 1916년(1차 세계대전)과 1940년, 1944년(2차 세계대전) 등 전쟁으로 인해 세 차례만 열리지 못했을 뿐이다.

1916년 올림픽은 원래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유력했다. 그러나 서서히 고개를 드는 독일의 전쟁 도발 조짐을 감지한 IOC 위원들이 헝가리를 설득해 독일 수도 베를린에 만장일치로 개최권을 넘겨주었다. 당시 쿠베르탱은 베를린에 올림픽 개최권을 부여한다면 독일의 평화주의 세력을 자극해 전쟁을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14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베를린올림픽은 물거품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은 12회 도쿄올림픽과 13회 헬싱키올림픽을 사산(死産)시켰다. 193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가 전쟁의 화마(火魔)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1972년 독일에서 열린 뮌헨올림픽도 중단될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 단체인 ‘검은 9월(Black September)’이 대회기간 중인 9월5일 선수촌 담을 넘어가 이스라엘 선수단 2명을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정치범 200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결국 검은 9월단 사건은 이스라엘 선수와 임원 11명, 아랍 게릴라 5명, 독일 경찰 1명 등 총 17명의 사망자를 냈다.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 피로 물들자, 전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 중지 요구가 빗발쳤다. 당시 브런디지 IOC 위원장은 “올림픽이 정치 상업화의 도전을 받아오다가, 심지어 범죄단체의 횡포까지 일어났지만 그럴수록 올림픽은 계속되어야 한다”면서 24시간 중단되었던 뮌헨올림픽을 속계했다. 만약 그때 중지시켰다면 올림픽 역사는 또 한 번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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