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책임공방, 돌고 도는 전염병의 정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3 14: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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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공격 집중하는 야당 모습 불편하지만, 그런 비판에서 여당 또한 자유롭지 못해

지난 2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판단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날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아직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소강 국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대통령과는 엇갈린 말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 발병이 시작되었고 지역 감염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다고 문 대통령이 직접 밝혔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종식’ 발언이 경솔했던 셈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취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최고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이 성급한 진단을 내놓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문 대통령의 책임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통합당은 “문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때 ‘메르스 슈퍼 전파자는 정부 자신’이라고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드린다”고 했다. 물론 메르스 사태와 코로나19 사태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처는 실제로 안이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드러내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보건 당국, 국민안전처, 대통령까지 모두가 늑장을 부려 사태를 키우다가 뒤늦게야 심각성을 깨닫는 모습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보여준 대처 능력은 많이 발전된 것이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구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 감염으로 촉발된 지역 감염 확산은 그 같은 초기의 노력과 성과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급기야는 중국의 환구시보 편집인으로부터 “중국인들의 눈에 한국의 전염병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의 행동이 느리다”는 설교를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스크를 쓴 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마스크를 쓴 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 생명을 두고 정쟁 일삼으면 역풍 불 수도

야당이 이러한 상황을 그냥 지나갈 리 없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상처만 주는 모습을 보이고, 총리는 하나 마나 한 브리핑을 하는 등 정권이 되레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성토가 통합당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합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메르스 사태 때 당했던 것을 실제로 그대로 돌려주듯이, 연일 문 대통령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국가적 재난 위기 상황에서의 과도한 정치적 공격은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가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대 감염원인 신천지는 입에 담지도 않고 중국 얘기만 한다. 누가 봐도 정략적이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가 “우한 코로나19 위기만큼은 절대 정쟁과 정치공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전광훈 목사가 이끌었던 집회의 자제를 뒤늦게야 촉구했던 것도 그런 여론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면 야당은 마땅히 짚어야 하지만,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면 안 된다. 

어찌 보면 돌고 도는 광경이다. 감염병 사태가 있을 때마다 집권세력은 자신의 노력을 부각시키고, 야당은 정부의 방역 실패를 공격한다. 메르스 사태 때 늑장 대응 비판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는 우리가 이전에 경험을 한 번도 못해 봤던 감염병”이라며 노무현 정부의 사스 대처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처를 비교하는 데 대한 불만을 직접 드러내기도 했다. 그때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던 민주당은 이제 집권여당이 되어 야당의 비슷한 공세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이해찬 대표는 “일부가 코로나19를 정치에 이용하고 있어 참으로 유감”이라며 “코로나19 극복이라는 당면 과제를 저해하고 국민 단합을 해치는 등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통합당 쪽을 비판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와중에 정권 공격에 집중하는 야당의 모습도 보기에 불편하지만, 그런 비판에서 지금 여당의 과거 또한 자유롭지 못함도 사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 대통령 앞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대처하고 있다며,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누구보다도 낱낱이 증언할 수 있다”고 굳이 공개적으로 두 정부를 비교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정부가 더 잘했는지에 대한 비교와 평가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어느 시기든 전염병이 확산되면 “정부의 책임이다”는 주장과 “정부의 책임이 아니다”는 주장이 충돌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어디 정당들만 그러한가. 정권 지지자들은 권영진 대구시장의 책임을 지적하고, 정권 반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신천지 책임을 강조하고, 반대 쪽에서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을 부각시킨다. ‘기-승-전-정치’로 연결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코로나와의 전쟁 끝난 뒤 잘잘못 가려야  

그런 사회니까 대구 시민들이 받는 고통은 헤아리지도 않고 “대구 시민들은 자기 도시가 왜 일본과 비슷한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거룩한’ 훈계가 나오고, 그런 페이스북 글에 수천 개의 ‘좋아요’가 눌러지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편 가르기 논리는 역병의 재앙 앞에서도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작동하며, 서로의 책임을 놓고 집단적 난투극을 벌인다. 전염병의 창궐 앞에서도 사람들은 하나가 되기보다는, 정치적 편을 갈라 정반대의 얘기를 한다. 이편도 아니고 저편도 아닌, 오직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의료인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장면들이다.

월터 리프만은 그의 대표적 저작 《여론》에서 인간의 고정관념과 이기심이 사실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우선 보고 그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다음에 본다”고 리프만은 말한다. 만약 고정관념이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한다면, 우리의 인식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진리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의 고정관념에 따라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결론을 내린다는 얘기다.

코로나 재난을 눈앞에 두고도 그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정권 아래서든 반복되는 ‘감염병의 정치화’라 할 만하다. 국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위중한 상황에서도 멈출 줄 모르는 정치적 공방. 정치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가.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를 하는 이유여야 한다.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감염병과 싸워야 할 때이니,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끼리 총을 겨누지는 말자. 대신 코로나와의 전쟁이 끝난 뒤, 잘잘못에 대한 책임은 엄정하게 가리자. 그것이 옳은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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