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은 정말 안전할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8 10: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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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달러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분류…위험도 제대로 살펴야 손실 방지

일반적으로 투자자산은 위험한 수준에 따라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구분한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와 미국 달러,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반대로 주식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이다, 위험자산은 수익이 불확실하다. 수익의 크고 작음을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은 보통 가격이 움직이는 방향도 다르다. 안전자산인 국채 가격이 오를 때 위험자산인 주식 가격은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전자산은 시장이 불안할 때 투자자들이 선호한다. 수요가 몰리다 보니 위기일수록 안전자산 가격은 거꾸로 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위기상황에서 주가가 내린다면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안전자산은 정말 ‘안전’하기만 할까. 한결같이 전문가들이 보유를 권한다고 하는 미국 달러부터 보자. 작년 말 1156원 했던 미국 달러는 3월3일 현재 1193원이다. 역시 바이러스 충격의 영향일까, 많이 올랐다. 하지만 정점을 찍었던 것은 2월24일 1219원이었다. 그 뒤로 달러 가치는 오히려 떨어졌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가치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금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지만,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지나치게 쉽게 움직이는 단점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연합뉴스
금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지만,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지나치게 쉽게 움직이는 단점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연합뉴스

위험자산 vs 안전자산

얼핏 이상한 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지난 1월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드론을 이용한 미군의 공격으로 살해됐다.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높아지고, 일촉즉발의 위기가 펼쳐지는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는 하락했다. 안전자산인 달러화는 지정학적 위기에서 강세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 혹은 글로벌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달러는 항상 안전자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경기 상황, 기준금리 등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교 가능한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유동성 여건이 달라지지 않는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보다 엔화나 스위스 프랑화가 더 주목받는다고 한다. 길게 봐도 특별히 안정적인 투자가치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지난 10년 동안 달러 가치가 가장 높았을 때는 바로 10년 전인 2010년 5월이었다. 1275원까지 올라갔던 달러 환율은 그 뒤부터 지금까지 당시 환율을 밑돌고 있다.

인류 역사에 전통적인 안전자산이라고 해야 할 금은 어떨까. 금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부의 기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요즘에는 안전자산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금괴를 사서 집 안 금고에 보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금은 역시 디폴트 위험이 없다.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되면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금 역시 달러 가치는 물론이고 물가, 정치적 이슈 등 다양한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상품이다. 금값의 역사적 추이를 보면 엄청난 기복을 보인다. 1980년 1월 금값은 온스당 850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뒤 끝없는 하락이 이어졌고 세기말인 1999년 8월에는 온스당 251달러까지 급락했다. 그러다 다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000달러를 넘기 시작해 2011년 말에는 1900달러까지 뛰며 정점을 찍었다. 그 후로는 다시 지지부진했다. 2018년 130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금 가격은 미·중 무역분쟁 이슈를 계기로 다시 지금까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금은 공급보다는 수요 측면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정치적, 지정학적 이슈는 금 가격에 단기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심지어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도 금값 상승 요인이다. 세계 금 수요의 20%를 중앙은행 및 국제기구가 차지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신문은 금이 수요에 지나치게 의존해 가격이 움직이며, 취약한 변동성으로 인해 가격이 쉽게 오르고 내린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을 안전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당장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금값 상승세는 오히려 꺾였다. 주요 증시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금을 내다 팔면서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 2월28일 하루에만 2013년 이후 가장 큰 폭인 5%까지 하락했다.

미국 달러나 금 못지않게 안전자산으로 거론되는 것은 국채, 그 가운데서도 미국 국채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 나라의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국가가 채무를 책임지는 주체라는 점에서 이른바 무위험자산으로 불린다. 어느 나라 정부든 발행했던 국채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설사 국고에 남은 돈이 한 푼도 없다 해도 돈을 찍어서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 더구나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라면 걱정할 일이 없을 듯하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국내외 증시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박정훈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국내외 증시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박정훈

안전자산도 가격 변동성 심해 

그러나 채권 역시 투자자들은 매매를 통해 손실을 볼 수도, 반대로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주식이 가격 변화를 하듯, 채권 역시 주식만큼은 아니어도 가격 변화라는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한때 거의 반 토막까지 떨어져서 물의를 빚었던 독일 국채 연계 DLF 상품들이 그렇다. 다른 채권도 아니고 독일 정부가 발행한 국채였다. 그리고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신용도가 가장 우수한 국가였다. 그러나 채권도 가격이 변하면 매매 과정에서 손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안전은 채무불이행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일 뿐이지, 결코 가격 변화에 따른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자산이라는 말은 편의적으로 쓰는 용어일 뿐이다. 안전자산의 기준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변동성을 감안하면 과거에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던 금도 가격 변동이 심한 위험자산이다. 투자상품을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으로 분류할 때 위험한 것은 안전자산이 가진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다. 투자론에서 정의하는 안전자산의 의미는 변동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안전이라는 말은 그저 외부 충격을 비교적 덜 받는다는 의미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일이 생겨도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안전자산이라고 믿었던 금융상품이 위험자산으로 바뀌는 혼란을 이미 경험했다.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안전자산 가운데는 ‘강남 아파트’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때 얘기다. 안전자산이라고 해서 언제나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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