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마스크 평등’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9 09: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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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대구·경북 지역 감염 확산을 기점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듯’ 혹독하게 우리 사회를 덮쳤다. 자고 일어나면 확진자 수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불어나는 상황이 이어져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대형마트나 시장은 물론이고, 작은 가게들도 고객이 줄어들어 큰 시름에 잠겼다. 특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취약계층은 이 사회적 고통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건강에 대한 불안감뿐만 아니라 생계에 대한 걱정도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급한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만난 택시기사도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네 시간 만에 처음으로 손님을 태웠다며 반가워한 그 기사는 이런저런 대화 끝에 마스크 얘기가 나오자 불쑥 큰 목소리를 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왜 정부가 마스크 확보에 소홀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언성을 높인 이유였다. 정부가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뒤늦게 허둥거린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한백화점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행복한백화점은 이날 오후 5시까지만 KF94 마스크를 1장당 1000원(1인 5매)에 판매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행복한백화점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행복한백화점은 이날 오후 5시까지만 KF94 마스크를 1장당 1000원(1인 5매)에 판매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그가 지적한 대로 지금 온 나라에 ‘마스크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적극 나서 공급을 늘렸지만 마스크 부족 사태는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KF 마스크를 찾아볼 수 없고, 동네 약국에서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 공적 판매처로 지정된 곳에는 마스크를 한 장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그런데도 원하는 만큼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는 이가 많다.

사람들이 이토록 마스크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마스크야말로 일반인이 믿고 기댈 마지막 방어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스크 확보는 가장 기초적인 안전망의 확보를 의미한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만 올바르게 써도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만큼 마스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느낄 심리적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마스크 한 개로 3일씩 쓰는데 아직 큰 지장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은 배경에도 그런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손 씻기는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아무 제약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스크는 다르다. 비용을 들여야 하고, 그마저도 지금처럼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 마스크를 확보하는 데 또 다른 기회의 불평등이 생기게 된다. 게다가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노년층 등 ‘정보 약자’들은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의 물량이 풀리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바이러스의 공격에 좀 더 취약한 그들이 마스크와의 전쟁에서도 뒤처지는 것은 결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번진 상황에서 마스크는 이제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생명선이 되어 있다. 이 ‘마스크의 평등’에서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원활한 마스크 수급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난해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마스크 지원 예산이 깎인 과정을 놓고 이제 와 남 탓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마스크는 지금 최소한이자, 동시에 최대한의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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