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 선포하고 ‘콩알탄’만 던졌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0 11: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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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부동산 대책’이 드러낸 정부.여당의 딜레마

1. 부동산 시장 안정화 2. 총선 승리. 다음 중 민주당 정부(청와대+민주당)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조건 1을 충족하면 조건 2가 뒤따라올 수도 있다. 집값 문제만큼 민심을 요동치게 하는 이슈도 없다. 그래서 어느 정권이든 조건 1을 목표로 제시한다. 조건 1이 흔들리면 어느 정권도 총선 승리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으로서는 강력하고도 충분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이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민주당 정부는 과연 이렇게 움직이고 있나?’ 더 나간다면 ‘왜 민주당 정부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최근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2·20 부동산 대책’이다. 지난해 ‘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나온 후 수원·용인·성남(수·용·성)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풍선 효과’를 줄이기 위한 조처인데, 시장에서는 대책이 당초 예상보다 약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3월3일 수원시 장안구 SK스카이뷰 아파트 단지 ⓒ시사저널 박정훈
3월3일 수원시 장안구 SK스카이뷰 아파트 단지 ⓒ시사저널 박정훈

왜 대출 조이는 금융 규제책만 썼을까

정부가 부동산 대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거나(금융 대책), 보유세를 강화하거나(조세 대책), 추가로 공급을 늘리는(공급 대책) 것이다. 이번 대책의 주요 골자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정대상지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정대상지역에 5곳을 새로 편입한 것이다. 정부는 규제 강화 방안으로 조정대상지역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60%에서 50%로 내리고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30%로 더 낮췄다. 그리고 조정대상지역 전체에서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며 1주택자가 대출을 받아 새집을 사려면 전입까지 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수원 영통·권선·장안구와 안양 만안구, 의왕시가 조정대상지역에 편입됐다. 즉 대출을 조여 부동산 수요를 줄이는 금융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금융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은 정부가 현재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단서다. 투기 수요가 원인이라면 보유세(종합부동산세)로, 공급 부족이 원인이라면 공급 대책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대출을 규제한다는 것은 현재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 이유가 ‘유동성 과잉’이고, 여기에 ‘투기 수요’가 더해져 발생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번 대책은 충분한 조치였을까. 불과 얼마 전에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을 천명했다. 그런데 이번 대책은 조정대상지역 규제를 일부 강화하고 규제 지역도 최소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예상됐던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나 세제 강화 등 강력한 카드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수원·용인·성남 가운데 수원만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미 조정대상지역인 용인·성남 지역의 경우 한 단계 규제 강도가 높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방안도 실현되지 않았다. 예상보다 약한 대책에 시장에서는 ‘수·용·성’에 이어 ‘남·산·광’ ‘오·동·평’ 등에서의 집값 급등을 전망하기도 했다. 시장 안정화가 아닌 또 다른 풍선 효과로 남양주·산본·광명, 오산·동탄·평택의 부동산 가격이 뛰어오를 것이라는 말이다.

언론의 평가도 박했다. 경향신문은 대책 발표 당일 사설을 통해 “정부의 이번 대책은 집값 급등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에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쪽짜리 대책이 나온 배경에는 코로나19와 같은 악재도 있지만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정치적인 고려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왜 반쪽 대책일까. 보유세 강화라는 ‘오래된 정답’이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논란이 큰 화약고를 피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총선 전에 지나친 규제에 나서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수용됐다는 해석이다. 즉 정치적 판단으로 국지적 풍선 효과에 핀셋 대응을 하면서 규제 지역을 강화하는 정도로 대책 수위를 조정했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는 부인한다.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이번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거를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올 초부터 부동산 추가 대응책을 놓고 불협화음을 냈다. 청와대는 최근 집값이 급등한 수·용·성 지역 등에 더 센 규제책을 검토했고, 민주당은 여기에 거듭 제동을 걸었다. 2·20 대책이 나오기 전에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찾기도 했다.

민주당은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해 보면 민주당은 ‘3기 신도시 역풍’을 경계했다. 3기 신도시 발표 후 수도권 북부인 고양 등의 민심이 악화했던 상황이 되풀이될까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수·용·성 지역은 민주당 텃밭이 아니다. 그럼에도 4년 전 총 13석 중 10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집값 상승과 부동산 규제 모두 표심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 민주당은 수·용·성 벨트 사수를 위해서는 ‘집값의 원상복귀’보다는 ‘더 오르지만 않게’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27일 청와대에서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월27일 청와대에서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민주당의 입장이 갈린 이유

민주당에 이런 선택은 합리적이다. 집값이 유독 도드라지게 오른 지역은 수·용·성 등 일부 지역에 불과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의 효과는 서울·수도권 전체 지역에 해당된다고 해도 그렇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 안정화라는 득을 본 다수 유권자들은 곧 이를 잊는다. 반면 집값 하락이라는 손해를 본 소수 유권자들은 똘똘 뭉쳐 표로 심판할 유인을 갖는다. 선거는 다수파를 차지하는 경쟁이지만, 정치인들은 역설적으로 ‘조용한 다수파’보다는 ‘결집한 소수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행하는 압력의 크기에 따라 움직인다. 기묘한 역설이지만, 정치인들은 이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이럴 때 다수파가 아닌 소수파의 손을 들어준다. 학계에서는 이를 ‘이익집단 포획’이라 한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좀 더 강력한 대책을 주장했을까. 총선 결과로 당장 울고 웃는 것은 민주당이지만, 사실 총선 결과에 따라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주체는 청와대다. 만약 민주당이 원내 1당 지위를 놓친다면 이후 청와대는 레임덕은 물론 검찰의 공격에도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좀 더 강력하면서도 범위가 넓은 대책을 고려한 데는 역설적으로 ‘이익집단 포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익집단 포획에서 벗어나는 고전적 해법은 논란을 전국 단위로 확대시켜 지켜보는 눈을 확 늘리는 것이다. 논란이 전국적인 이슈가 돼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면 정치인들도 소수파가 아닌 다수파의 손을 들어줄 유인이 생긴다. 소수 이익집단의 표 이상으로 전국적인 여론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립유치원 사태와 택시 문제가 바로 이 기로에서 움직였다. 대통령이 ‘투기와의 전쟁’까지 선포한 상황에서 청와대로서는 수·용·성 지역의 부동산 문제는 단지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과는 결이 다른 대책을 내놓을 유인이 컸던 셈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당·청은 금융 대책을 필두로 한 일정한 강도의 대책을 내놓았고, 시장은 그 강도를 평가하며 움직이고 있다. 총선은 이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결과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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