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러시(Cold rush), 극지를 선점하라!
  • (사)극지해양미래포럼 박수현 사무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3.19 14: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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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극에서 펼쳐지는 각국의 자원 개발 각축전

1848년 1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수터스밀에서 금이 발견되자 그 이듬해 약 8만 명이 미 서부 해안으로 몰려갔다. 이러한 골드러시(Gold rush)는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다. 서부가 발전하고 인구가 유입되는 요인이 됐다. 최근 극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골드러시에 빗대 콜드러시(Cold rush)라고 부른다.

지구상 마지막 미개척지인 극지는 아문센, 섀클턴, 난센 같은 위대한 탐험가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곳에서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남극과 북극에 세 개의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보호구역을 관리하는 등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무와 함께 국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극지는 우리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곳은 아니다.

남극은 1908년 영국이 가장 먼저 영유권을 선언한 이후 뉴질랜드(1923), 프랑스(1924), 노르웨이(1929), 오스트레일리아(1933), 아르헨티나(1942), 칠레(1940)가 연이어 남극의 일정 구역을 자국 영토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각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내세웠던 이유는 발견과 탐험, 지리적 인접성, 역사적 승계 등이었다. 남극을 둘러싼 영유권 주장으로 의견이 대립되던 1958년 세계과학연맹이사회 부설기관으로 창설된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Scientific Committee on Antarctic Research)는 국가 간 협력과 공동연구를 논의·조정하는 역할을 맡아 나갔다. 이러한 SCAR의 노력에 의해 1959년 12월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소련,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 등 12개국이 미국 워싱턴에서 남극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은 1961년 6월23일 발효됐다.

남극은 한반도 면적의 62배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이다. 대륙 전체는 평균 2300m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 ⓒ박수현 제공
남극은 한반도 면적의 62배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이다. 대륙 전체는 평균 2300m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 ⓒ박수현 제공

우리나라는 33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남극조약은 각국의 영유권 주장 유예를 바탕으로 남극의 평화적 이용, 연구의 자유 보장 등을 명시하고 있다. 2020년 3월 현재 남극조약 가입국은 54개국이며, 우리나라는 1986년 세계에서 33번째로 가입했다. 남극조약은 다른 국제조약과 달리 상당히 배타적이다. 조약의 운영 권한은 조약 가입국 중 12개 원초서명국과 과학기지 설치 등을 통해 실질적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17개 국가 등 29개국에만 있다. 이들 29개국을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이라고 한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은 해마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P·Antarctic Treaty Consultative Party)를 개최해 남극에 대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남극에 관한 과학적 연구수행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1989년 10월18일 남극조약협의당사국 지위를 획득했다. ATCP의 의결 중 주목할 만한 것은 199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체결돼 1998년 발효된 ‘남극환경보호의정서(Antarctic Environmental Protocol 혹은 Madrid Protocol)’를 들 수 있다. ‘남극환경보호의정서’는 남극에서의 광물자원(지하자원) 개발을 50년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환경영향평가와 외래종 관리, 환경 훼손에 대한 배상 책임 등 강력한 환경보호 조치를 본문과 6개의 부속서에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98년 의정서가 발효됐으니 50년 옵션이 만료되는 2048년 이후부터는 광물자원 개발 금지 규정이 해제된다는 데 있다. 물론 2048년 이후부터 남극에서 광물자원 개발이 본격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48년이 오기 전에 ATCP는 새로운 합의를 내놓아야 하며 이때 남극조약협의당사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발한 의견 개진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각국의 정책 추세를 예의주시하며 우리도 남극 관련 정책을 준비할 때가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극을 둘러싸고 각국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등 개별 국가가 연이어 영유권을 주장할 때 실질적인 연구 성과를 통해 자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남극에서의 리더십을 확보해 나갔다. 남극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맥머드(Mcmurdo)기지를 포함해 세 개의 상주기지와 세 척의 쇄빙선을 운항하며 ‘해수면 상승 규모와 속도’ ‘남극 생명의 적응과 진화’ ‘우주의 기원 규명’ 등을 3대 전략적 연구 우선순위로 두고 남극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영유권을 주장한 영국은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될 영유권과 환경정책을 분리해 남극 환경보호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은 ‘지구를 위한 극지과학(Polar Science for Planet Earth, 2009~)’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대기화학·생태계·환경변화·빙상·극지해양 등 6개 중점 연구 분야를 설정했다. 현재 ‘할리(Halley)기지’ 등 3개의 상주기지와 두 척의 쇄빙 연구선을 운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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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이 세종과학기지 인근 지역에 서식하는 선태류를 관찰하기 위해 구역 표식을 해 두었다. ⓒ박수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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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해의 기상 조건은 예측하기 어렵다. 세종과학기지의 경우 풍속이 9m/sec를 넘어서면 선박 운항을 금지한다. ⓒ박수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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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준공된 북극 다산과학기지. 과학자들이 필요할 때 일정 기간 방문하는 체류형 기지다. ⓒ박수현 제공

남극 내륙 진출을 위한 코리안루트 개척 중

아시아권 최초로 남극에 진출한 나라는 일본이다. 1912년 1월28일 시라세 노부가 남위 80도 5분까지 도달했다.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1911년 12월19일 남극점에 도달한 것을 고려하면 개인 탐험가로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일본은 6개년 계획을 통해 국제공동연구에서의 리더십 확보와 협력 강화 정책을 추진하며, 남극해 조업을 통한 자원 획득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쇼와기지’ 등 네 개의 남극기지(상주 1, 하계 3)를 운영하며, 쇄빙연구선 ‘시라세호’에 이어 새 쇄빙연구선 건조를 추진 중이다.

중국도 뒤지지 않으려고 뛰고 있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우주개발 계획과 함께 극지연구 전략 및 인프라 확충을 위해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남극 전략은 해양-해빙-대기 상호작용, 빙붕-해양순환작용, 기지 주변 종합 모니터링, 빙하탐사 등 다섯 가지 프로젝트로 구성된 PANDA(Prydz Bay, Amery Ice Shelf and Dome A Observation)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2009년 건설된 ‘쿤룬기지’ 등 3개의 상주기지와, 두 척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남극 활동역량 축적기(2006~16년) 일정에 맞춰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를 준공해 남극에서의 독자적인 연구 수행능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현재는 남극 활동 도약기(2017~21년) 로드맵에 따라 남극 내륙 진출을 위한 코리안루트(K-Route) 개척, 빙저호 탐사, 극지연구 실용화 및 산업화를 추진 중이다. 남극에서의 과학적 연구 성과 및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극지 연구 선도국가 및 남극 관문인 칠레(푼타아레나스), 뉴질랜드(크라이스트처치)와의 협력 강화와 교류 확대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극지연구소(KOPRI)가 추진하고 있는 중국 극지연구소(PRIC), 영국(BAS), 일본(NIPR), 말레이시아(NARC) 등과의 남극 연구 파트너십 강화가 연구협력 차원을 넘어 남극에서의 입지 구축을 위해 주목받는 이유다.

북극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북방·극지연구실 발간 자료에 따르면 북극권에는 전 세계 석유의 13%와 천연가스의 30%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이아몬드, 루비, 희토류, 니켈 등 광물자원과 전 세계 매장량의 20%에 달하는 가스하이드레이트, 세계 전체 어업생산량의 40%를 상회하는 수산자원 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자원은 모두 북극권 8개국(미국·러시아·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스웨덴·아이슬란드)의 영토 안에 있기에 비북극권 국가들이 콜드러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들 8개국과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1996년 9월 북극권 8개 국가는 환경보존 및 지속 가능한 개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캐나다 오타와에 북극이사회(Arctic Circle)를 설립했다. 북극이사회는 8개 회원국이 중심이며 이뉴잇족·아타바스카족·사미족 등 북극 원주민 6개 단체에 상시참여자(Permanent participants) 지위를 부여했다. 옵서버(참관인)로는 13개 비북극권 국가(프랑스·독일·네덜란드·폴란드·스페인·영국·중국·이탈리아·일본·한국·싱가포르·인도·스위스)와 9개 국제기구(국제적십자사연맹, 국제자연보존연맹 등), 11개 비정부기구(해양보호자문위원회, 국제북극과학위원회 등)가 있다. 옵서버에게는 모든 회의에 참석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면을 통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의결권은 없다.

ⓒ박수현 제공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북극권 풍경이다. 북극권의 대부분은 북극해 해빙과 만년설로 덮여 있지만 남극과 달리 이들 지역은 북극권 8개국의 영토로 이어져 있다. ⓒ박수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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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운항을 시작한 우리나라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해빙을 뚫고 장보고과학기지로 향하고 있다. ⓒ박수현 제공

미국 개발 중심으로 북극 정책 전환

북극이사회의 의사 결정은 8개 회원국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각료회의(Ministerial meeting)’로 각 회원국의 외교장관 등 고위급 대표들이 참석해 2년마다 1회씩 개최된다. 북극이사회는 북극을 둘러싼 각종 현안과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북극 오염 대책 프로그램(ACAP), 북극 모니터링 및 평가 프로그램(AMAP), 북극 동식물 보존(CAFF), 비상사태 예방·준비·대응(EPPR), 북극 해양환경 보호(PAME), 지속 가능 개발(SDWG) 등 6개 실무 분과를 마련하고 있다.

한편 북극이사회는 2014년 1월 북극권 국가 민간기업인들로 구성된 북극 비즈니스 포럼인 북극경제이사회(AEC·Arctic Economic Council)를 설립했다. AEC는 북극 지역에서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사업 발전 촉진을 목적으로, 북극이사회와는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획득해 국제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2017년 한국선주협회(KSA)가 비북극권 기업으로는 최초로 AEC 회원으로 가입했다.

러시아는 북극에서의 입지 강화를 위해 북동항로를 중심으로 한 자원개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북극지역의 사회경제발전 2020계획’에 따라 2017년 야말 LNG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러시아 노바텍사(社)는 LNG 환적터미널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18년 2월에는 북극 지역에 181조원을 투자해 북극 자원을 개발하고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으며, 3월에는 2025년까지 북동항로 물동량을 10배 수준인 8000만 톤까지 증가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장기적으로 북동항로는 아시아-유럽 구간에서 기존 항로(수에즈 운하 경유) 대비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물동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보호를 우선했던 오바마 대통령 때와 달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3월 ‘미국 우선주의 기반 해양 에너지 전략’을 통해 북극 대륙붕 석유 시추 탐사를 승인하는 등 개발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지난해에는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혀 주목받았다. 북극권에 대한 러시아의 기득권과 중국의 공격적인 접근에 예민해 있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북극 진출 정책을 마련하는 데 관심이 크다.

북극권 국가 중 가장 먼저 ‘북극 전략(2006)’을 수립한 나라는 노르웨이다. 2017년부터는 새로운 북극 전략인 ‘노르웨이 북극 전략: 지정학과 사회발전 사이’를 통해 인적자원과 국제협력을 통한 지식 기반 비즈니스 및 인프라 등 지속 가능한 개발에 초점을 맞춘 북극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덴마크는 세계 제1의 해운선사인 머스크를 중심으로 북극항로 이용을 위한 시범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석유 광물자원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비북극권 국가 중 가장 활발하면서도 공격적인 북극 정책을 펴고 있다. 2018년 1월 발간된 ‘북극정책백서’를 통해 ‘북극 이해, 북극 보호, 북극 개발, 북극 거버넌스 참여’의 4대 정책을 목표로 제시하며 중국 주도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지칭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완성을 중국-북극-유럽을 잇는 ‘극지실크로드(Polar Silkroad)’로 정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야말 LNG 프로젝트’와 ‘Arctic LNG-2’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북극 전담 쇄빙연구선 건조를 추진하는 등 북극 진출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케이프워싱턴은 황제펭귄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 ⓒ박수현 제공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케이프워싱턴은 황제펭귄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 ⓒ박수현 제공

우리나라도 ‘북극 비즈니스’ 추진 중

우리나라도 뒤질 수 없다. 2013년 12월 ‘북극 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2018년 ‘북극 활동 진흥 기본계획(2018~2022)’을 마련했다. 정부의 목표는 ‘경제·비즈니스 창출, 국제협력 강화, 과학연구 강화’ 등이다. 이를 위한 로드맵으로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진출(2013년), 북극항로 시범·상업운항 추진, 북극 정책 기본계획 수립 등 북극 정책 추진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2018~22년 다산과학기지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차세대 쇄빙선 건조’ 및 ‘북극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부처 간 인식 차이로 차세대 쇄빙선 건조 계획이 늦어지고 있어 10대 북극 정책 주도국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북극 활동 진흥 기본계획’의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북극을 둘러싼 정책은 경쟁과 협력을 오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할 부분은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과 북극 진출 인프라 확충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 나가며 이와 병행해 북극 거브넌스 협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극지와 관련해 최근 주목되는 것은 부산시의 활동이다. 부산시는 지난 1월28일 서남극권 관문도시인 푼타아레나스를 포함하고 있는 칠레 마젤란주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와 동시에 북극권 진출도 도모한다. 부산시는 이를 통해 동북아 극지 관문도시 도약을 꿈꾼다. 이미 남구 용호만 매립지 2만3000㎡ 부지에 ‘극지연구 실용화센터’ ‘극지체험관’ ‘극지연구 인프라 시설’ 등이 들어서는 ‘극지타운’ 건설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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