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에 뛰어든 안철수 다시 날아오를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6 14: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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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벗고 대구서 의사 가운 입자 지지율 점프…정계 입문 초기 신선함 떠올려

안철수 대표가 이끌고 있는 국민의당과 안 대표 지지자들은 ‘대권 재수론’을 크게 믿는 눈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일곱 번의 대선에서 4명의 대통령은 한 번 이상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내 경선에서 쓴맛을 봤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2년 18대 대선에서 3.5%포인트 차로 진 뒤 두 번째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런 점에서 대권 재수론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선주자는 전국적인 지명도가 필수다.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고 안 치르고는 나중에 큰 차이가 난다.

낙선 후 안 대표가 해외로 장기연수를 떠난 것도 대권 도전을 위한 숨 고르기였단 분석이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안 대표에게 독일로 가 머리를 식히며 4차 산업과 통일, 연정·다당제 연구를 권했더니 흔쾌히 따르더라”고 비화를 밝혔다.

당초 안 대표의 귀국과 관련해선 설왕설래가 많았다. 정치권이 안 대표의 귀국을 의미 있게 본 것은 ‘정치인 안철수’의 경험과 지명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설 연휴를 앞둔 1월19일 귀국하면서 정국 변화의 중심에 섰다. 귀국 후 일정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았다.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더니, 29일에는 자신이 만든 바른미래당을 뛰쳐나왔다. 2월3일에는 국민의당을 만들어 당 대표에 올랐다. 이 모든 일이 단 보름 동안에 진행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월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진료를 마친 후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월1일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관련 진료를 마친 후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安 대구행 이후 당 지지율 4.7%로 뛰어

물론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단 따르는 이가 많이 줄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안철수계 의원과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상당수가 미래통합당행을 결정한 것이다. 현재 국민의당에 합류한 이는 광주 광산을을 지역구로 둔 권은희 의원과 이태규 의원(비례대표) 등 2명뿐이다.

대부분의 의원이 안 대표와 다른 길을 간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와 국민의당 지지율 때문이다. 전직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통합당으로 간 안철수계 의원들의 정치성향은 보수에 가깝다. 일차적으로 안 대표의 (귀국 후) 바람몰이를 기대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영과 연대할 것을 기대했는데, 둘 모두 쉽지 않다고 판단되자 통합당으로 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성향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두 번째 이유인 흥행성은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고민되는 부분이다. t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2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 국민의당의 창당 후 첫 정당 지지도가 나왔는데 2.3%에 불과(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했다. 그다음 주에는 그나마 지지도가 1.2%로 더 떨어지며 반 토막 났다.

제2의 안철수 바람을 기대했던 국민의당이 승부수로 내세운 것은 2월28일 ‘지역구 무공천’이다. 사실상 ‘반문(反文) 야권연대’로 해석되는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현실적인 고민이 가장 컸다. 지역에서 당선 가능한 인물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승부수를 띄워보자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통합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연동형 비례의석을 싹쓸이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중도보수와 보수 지지자들에게 일부 표를 얻으면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고는 3월1일 새벽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함께 전격적으로 대구행을 결정했다. 대구로 내려간 안 대표는 현지 의료진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당의 공식적인 회의는 모두 화상회의를 통해 열고 있다. 당에서 공개하는 안 대표 일정은 10여 일 넘게 ‘공식 일정 없음’으로 돼 있다. 안 대표의 대구 봉사활동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tbs-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당은 3월 첫째 주 정당 지지도가 4.7%로 뛰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2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안 대표는 이낙연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30.1%), 황교안 통합당 대표(20.5%), 이재명 경기지사(13.0%)에 이어 4위(5.6%)를 기록했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3월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안철수 대표에 대해 “의사 부부로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묵묵하게 대구에서 봉사하는 모습에 국민이 감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23일 ‘2020 국민의당 e-창당대회’에서 당 대표수락연설을 마친 후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23일 ‘2020 국민의당 e-창당대회’에서 당 대표수락연설을 마친 후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머물며 대중 이미지 쌓는 데 주력

안 대표가 보름간의 대구 의료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15일 상경했다.  안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대구 동산병원에서 배포한 발표문을 통해 "국민의당 대표로서 충실하게 선거 준비를 하는 것 또한 저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국민에 대한 예의"라면서 "어려운 여건이지만, 이번 4·15 총선에서 최선을 다해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고 밝혔다.

대구에 내려간 이상 안 대표로선 대중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국민의당은 안 대표가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명확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구경북 의료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일정기간 대중과의 접촉을 꺼려야 한다. 선거 현장을 뛰어야 하는 대중 정치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다.

당 일각에선  비례대표 출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다. 귀국 직후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배수진을 친다는 명목하에 전 당원의 의사를 물은 뒤 비례대표 후보 제일 마지막에서 뛰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복병은 아직 남아 있다. 당초 미래한국당이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됐던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에 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 세력이 참여하면서 비례대표 선거에 올인하려던 국민의당의 총선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 당초 국민의당에선 7~8석 정도를 예상했지만, 범민주진영의 가세로 의석수는 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유일한 지역구 의원인 권은희 의원은 차기 총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당 주변에서 비례대표 출마가 거론되고 있지만, 현역 의원의 비례대표 출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팽배하다. 비례대표인 이태규 의원도 마찬가지다. 한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대표 덕에 의원 한 번 한 사람들이 또다시 꽃길(비례대표)을 걷는 것에 대한 지지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 정치를 표방하는 안 대표도 새 인물을 전진 배치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에서의 봉사활동은 과거 ‘컴퓨터 백신 무료 공개’라는 깨끗한 대중적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대표는 3월11일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통합을 제한 것과 관련해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가겠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 대표의 러브콜은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래통합당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되레 야권 정계개편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당내에 확산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에 실망한 중도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이 비례대표 선거에선 국민의당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대표가 부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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