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숨기려 남의 면허증 사진 제시, 죄가 될까 [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 남기엽 변호사 (kyn.attorney@gmail.com)
  • 승인 2020.03.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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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 무면허 숨기려 휴대폰으로 촬영한 타인의 면허증 사진 제시, ‘무죄’

자신을 가장 오해하는 이가 누굴까. 바로 나 자신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고, 왜 내가 팔면 오르며,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원인을 남에게 이유를 찾지만, 여기에 자기객관화는 없다.

동일인물이 맞나 싶은 프로필사진, 당사자의 입장과 처지에서 출발하지 않은 일방적 해법 모두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남을 오해하게 한다.

이러한 오해는 “남들도 속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이끌어 범죄행위까지 나아가게 한다. 예전에는 ‘회수권’을 내고 버스를 탔다. 대개 10장 묶음이었는데 칼질로 교묘하게 11등분을 했던 것은 고전이다. 미성년임에도 클럽 입장을 위해 성년인 척 주민번호 숫자를 칼질하며 나이를 속이는 전통은 여전하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아직 우리나라는 고사장에서 홍채 및 지문 인식을 도입하지 않았기에 대리시험 적발이 어렵다. 그럼에도 시도된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국내 수능 대리시험이 적발된 적이 있다.

위 행위들은 당연히 범죄다. 그렇다면 무면허 운전을 숨기려고 자신과 닮은 친구 면허증을 대신 제시하면 어떻게 될까.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된다.

실무상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은 패키지로 온다. 음주로 면허가 취소된 뒤에도 음주운전 범죄 당시 준법의식이 작동하니 무면허로 운전하게 된다. 그 중에는 딱한 사정도 있지만 법원은 실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A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후 또 술을 먹고 무면허로 운전했다. 안 걸릴 줄 알았지만 ‘하필’ A가 가는 길에 음주단속이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실형을 받을까 두려웠던 A에게는 사실 계획이 있었다. 자신과 닮은 친구의 면허증을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던 것. A는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면허증을 두고 왔다며 핸드폰으로 찍은 친구의 면허증을 보여주었다.

처벌될까.

처벌되지 않는다. 무죄(無罪).

이 판결은 하급심과 대법원의 결론이 달랐다.

1,2심은 “면허증은 사용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되어 작성된 공문서에 해당한다”라며 “면허증을 촬영한 이미지 파일을 A의 면허증인 것처럼 보여주어 부정하게 행사했다”고 보아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경우는 면허증 자체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면허증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 것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사정만으로는 경찰공무원이 그릇된 신용을 형성할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문서부정행사죄는 공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됐다. 핵심은 공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저해할 위험이 있는지 여부다. 그러한 위험조차 없는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위조지폐를 쓰는 경우를 보자. 영화 《기술자들》에서 나오듯 정밀하게 위조한 지폐를 사용하면 처벌된다. 하지만 앞면만 컬러 복사한 위조지폐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지폐가 아니기에 통화위조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부루마불 씨앗은행 화폐를 제시해도 처벌 안 한다는 말.

휴대폰으로 촬영한 신분증 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진정한 신분증 제시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찰공무원은 입수 경위 등을 추가로 조사·확인해야 했으며 이미지 파일은 신용될 수도 없다. A가 무죄인 이유다.

무면허 숨기려 휴대폰으로 촬영한 타인의 면허증 사진 제시, 처벌되지 않는다.

사족1: 공문서부정행사죄의 객체는 적법절차에 따라 발급된 공문서여야 하며 ‘권한’과 ‘용도’가 특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분확인을 위한 주민등록증, 이에 더하여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자격증명을 위한 운전면허증은 공문서가 된다. 하지만 주민등록표등본과 인감증명서 등은 객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용권한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고 용도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등본의 경우 본인 포함 가족만 교부받을 수 있다고 오해되기 쉬운데 소송, 비송, 경매 등등 필요할 경우 제3자도 쉽게 교부받을 수 있다. 본인에게만 발급 가능한 면허증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사족2: 프로필사진 사기(이른바 ‘프사사기’)는 게시 자체로는 형법 제347조 사기의 구성요건해당성이 없으므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남기엽 변호사대법원 국선변호인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대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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