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방 대화록 단독입수] “짭새는 안 잡는다” 경찰 조롱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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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와치맨’이 운영한 텔레그램방 대화록 2만1000장…피해여성 이름도 거론

n번방의 후계자로 알려진 ‘와치맨’이 텔레그램에서 활약한 추악한 실태가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3월24일 와치맨 전아무개(38)씨가 운영했던 ‘고담방’의 대화 기록 등을 입수했다. 이 방은 음란물이 직접 거래된 방은 아니다. 대신 n번방을 포함해 각종 음란물 공유방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영 방식은 n번방과 유사하다.

고담방 가입자들은 대화록 입수 시점 기준으로 2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그해 11월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음담패설을 쏟아냈다. 총 대화 분량은 A4 용지로 2만1000장에 달한다. 이 중에는 n번방에서 공유된 영상물로 성 착취를 당한 여성들의 정보도 일부 올라와 있었다. 

2019년 7월9일 한 가입자는 “정리 끝났네요. 1번방 7명. 2번방 5명. 3번방 3명. 4번방 3명. 5번방 11명. 총 29명”이라고 썼다. 각 n번방에서 피해 입은 여성들의 수로 추정된다. 또 “나이대는 9살부터 24살까지”라고 글을 올렸다. 

와치맨' 전아무개(38)씨가 지난해 5월부터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 '고담방'. 가운데 배트맨 로고는 고담방을 나타내는 프로필 사진이다. ⓒ 텔레그램 캡처
와치맨' 전아무개(38)씨가 지난해 5월부터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 '고담방'. 가운데 배트맨 로고는 고담방을 나타내는 프로필 사진이다. ⓒ 텔레그램 캡처

 

피해 여성 외모 평가에 음란행위 묘사까지

이 가입자는 각 여성들이 협박에 의해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진 음란 행위도 묘사했다. “몸매가 좋다” “피부가 하얗다” “안경 벗으면 미인상” 등 외모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심지어 여성들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해당 가입자는 계정을 삭제한 상태다. 

곧이어 ‘..’이란 아이디의 가입자가 “질문글이 전부 1~5번방 링크 달라는 글이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들어가 보신거 아닌가요?”라고 했다. 이 가입자는 고담방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글을 올렸다. 공지글이나 언론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댓글을 적극적으로 달아 주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은 다른 가입자들로부터 ‘감시자’ 또는 ‘시자’로 불렸다. 이는 와치맨 전씨의 또 다른 별명이다. 

고담방 대화를 들여다보면, 전씨는 ‘AV스눕’이란 블로그를 개설해 고담방을 홍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현재 폐쇄됐다. 하지만 기자는 인터넷에서 블로그의 과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각종 성범죄 관련 기사와 함께 ‘압수수색 받을 시 주의할 점’ ‘변호사 선임에 대하여’ 등 수사 대응 방법도 올라와 있었다. 

‘..’은 지난해 9월27일 새벽 “고담방 식구들 오늘도 수고 했어영”이란 글을 남긴 뒤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29일 경찰은 전씨를 구속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전씨에게 그해 4월부터 9월27일까지 불법 사이트(블로그)를 운영한 혐의를 적용했다. 구속되기 직전까지 불법 행위에 가담했던 셈이다. 그 외에 고담방 운영 혐의는 강원지방경찰청이 따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의 구속 다음 날인 지난해 9월30일, 고담방엔 ‘감시자 추모방’ 링크가 올라왔다. 여기에서 300여명의 가입자들은 국화꽃 그림을 올리며 전씨를 회상하는 기상천외한 행각을 벌였다.

지난해 9월 말 텔레그램에 개설된 '감시자 추모방'. 가입자들 300여명이 구속된 '와치맨' 전아무개(38)씨를 회상하는 뜻에서 국화꽃 이미지를 올렸다. ⓒ 텔레그램 캡처
지난해 9월 말 텔레그램에 개설된 '감시자 추모방'. 가입자들 300여명이 구속된 '와치맨' 전아무개(38)씨를 회상하는 뜻에서 국화꽃 이미지를 올렸다. ⓒ 텔레그램 캡처

 

‘와치맨’ 구속되자 활개 친 ‘박사’ 조주빈

전씨는 떠났지만 고담방 내에서 음란물 관련 정보 공유는 계속됐다. ‘박사’ 조주빈(25)이 전씨의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초부터 고담방엔 조주빈이 만든 ‘박사방’을 둘러싸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사는 또 정체가 뭐냐” “박사방은 뭐임” 등 단순한 궁금증이 올라왔다. 조주빈을 사기꾼으로 치부하는 가입자도 있었다. 

그러다 9월 말쯤 되자 “이제 박사방이 대세다” “박사방 가세요. 거기가 레알('진짜'란 뜻의 신조어) 재밌음” 등 찬양하는 세력이 생겨났다. 조주빈은 전씨와 달리 직접 음란물을 만들어 유상 배포했다. 박사방 입장료는 최고 150만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담방에는 와치맨과 박사 외에 ‘켈리’ ‘체스터’ ‘키로이’ ‘똥집튀김’ 등의 아이디를 언급하는 글도 종종 발견된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4명은 n번방과 고담방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은 또 다른 운영진으로 드러났다. 이 중 켈리로 밝혀진 신아무개(32)씨는 지난해 9월 구속됐다. n번방을 ‘갓갓’으로부터 물려받아 성 착취 영상을 재판매한 혐의다. 신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해 5월16일 고담방에서 욕설 섞인 대화를 주고 받는 가입자들. ⓒ 텔레그램 캡처
지난해 5월16일 고담방 가입자들이 주고 받은 욕설 섞인 대화의 일부 . ⓒ 텔레그램 캡처

 

앞서 지난해 8월 들어 고담방에는 “노사모 링크 좀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노사모는 고담방 내 운영자 4명이 각자 관리한 음란물 공유방 4개 중 하나다. 그 이름 때문에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와의 연관성도 의심되고 있다. 경찰은 노사모 방에서 여성 신체부위가 노출된 사진∙영상 1675건이 유포된 것을 확인했다. 이를 포함해 음란물 공유방 4개에서 퍼진 음란물은 총 1만1297건에 달한다. 

고담방 가입자들은 외부의 감시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고담방에 수시로 올라온 공지문에는 “이 방에는 경찰, 기자, 사이트 운영자, 해커, 유출 피해자, 최초 유출자 등이 있습니다. 공개된 방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가입자들은 수사 당국과 언론에 대한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짭새(경찰의 비속어)들 귀찮아서 다 안잡음. 대충 실적 채우고 수사 종결함” “실번호임^^ 짭새들 연락주시길~” “견찰(경찰의 비속어)이라 하면 ⨉나 대단한 집단인 줄 알어” 등의 발언을 통해 경찰을 시시때때로 우롱했다. 또 “기자들도 카카오톡 단톡방에 ‘n번방 공유 좀’ 이러고 있겠지”라며 비꼬았다. 텔레그램 음란물 공유 실태를 보도한 기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위협하는 내용도 있었다.

현재 고담방은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고담방 운영자 전씨에 대해 검찰은 3월19일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했다. 앞서 전씨는 2018년 6월에도 음란물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전씨에 이어 가장 악랄한 범행을 벌인 조주빈은 3월25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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