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국’ 스웨덴의 구멍 난 코로나19 대응법
  • 김민주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8 11:00
  • 호수 15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력·장비 부족에 취약계층만 검사…국민들 불안감 날로 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 국가와 사회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해 정신적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릴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을 고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3월22일 저녁,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는 다소 굳은 얼굴로 코로나19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6분 길이의 짧은 담화였지만 SVT2 채널에서만 스웨덴 국민 약 3만 명이 담화를 시청했다. 스웨덴 공영방송 SVT 관계자는 “(3만 명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높은 시청률”이라며 “이는 스웨덴 내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와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3월16일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 순드비버그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한 시민이 약국에서 빈 선반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
3월16일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 순드비버그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한 시민이 약국에서 빈 선반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

급증하는 확진자 수 감당 못 해

‘청정국’으로 불리는 스웨덴도 결국 ‘코로나19의 마수’를 피해 가지 못했다. 스웨덴은 상당 기간(1월~2월 중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1명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2월말 코로나19 위험 지역인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다녀온 30대 남성을 시작으로 확진자가 급증해 3월28일 기준 확진자 수는 3069명, 사망자 수는 104명에 이른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스웨덴은 코로나19 위험단계를 ‘매우 높음’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3월20일 뢰벤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스웨덴의 허술한 코로나19 대응이 사태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만 해도 위험 지역을 방문한 뒤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역학조사를 통해 확진자와 접촉했던 사람을 분류하고 필요하다면 검사를 진행해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가장 취약한 계층’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바꿨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겪더라도 취약계층에 해당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진단검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스웨덴 보건 당국의 이러한 결정은 첫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발생한 뒤 내려졌다. 지역사회 감염의 경우 바이러스가 해외여행이나 확진자를 통해 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감염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제한된 인력과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기 위해 가장 심각하게 아프거나 위험에 취약한 환자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꾼 것이다.

보건 당국은 모든 의심환자를 검사하지 않는 대신 계절 독감을 추적하는 데 사용했던 검사법(Sentinel testing)을 통해 계속 바이러스 확산 추세를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스웨덴 현지 언론은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로 이에 대한 정보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계절 독감에 사용하는 추적검사법으로는 확진자 수와 확산 경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스웨덴 보건 당국 관계자인 카린 테그마크 뷔셀(Karin Tegmark Wisell)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기조에 대해 “한 단계 더 빠르게 나아가는 행동”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급증하는 확진자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루에 1만 건 이상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스웨덴이 하루에 진행할 수 있는 검체검사 수는 2800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진료실이 턱없이 부족해 스웨덴 군대까지 동원돼 베스트라예탈란드(Vstra Gtaland)와 스톡홀름 지역에 야전병원을 설치하는 등 코로나19 관련 자원과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어 사태 진정에 더욱 난항이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자 이웃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신속하게 모든 교육기관, 학교, 유치원을 닫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스웨덴만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닫지 않겠다며 그 행보를 달리했다. 이미 스웨덴 내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수업은 원격교육으로 대체하도록 했으나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폐쇄만은 예외로 둔 것이다.

스웨덴 교육부 장관인 안나 엑스트룀(Anna Ekstrm)은 지난 3월20일 기자회견에서 “직장에 다니는 부모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닫게 되면 부모가 직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기능과 인력에 손실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후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부득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문을 닫아야 할 경우를 대비해 스웨덴 국회는 지난 3월19일 휴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시에 의료 서비스, 에너지 공급, 군사방위 등 사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분류되는 12개 직종을 법으로 지정해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더라도 돌봄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마스크 착용 권고 안 해…동선 공개도 일부만

코로나19 불안이 스웨덴 전역으로 번지고 있지만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쓴 현지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대한의사협회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권고해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오히려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 보건 당국은 공식 홈페이지 질의응답을 통해 “마스크는 건강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며 아픈 사람이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했을 때 비말이 주변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마스크는 (코로나19) 확진 환자와 가깝게 접촉하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지역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면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코로나19 의심환자로 ‘타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스웨덴 룬드 지역에 거주하는 유학생 A씨는 “이러한 시선 때문에 외출 시 마스크를 쓰지 못해 더욱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또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상세하고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 언론과 정부에서 공개하는 확진자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확진자의 나이, 성별, 지역(한국으로 치면 도 단위) 정도만 공개될 뿐 자세한 동선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검사 대상 제한으로 인해 역학조사가 사실상 불가한 상황이기 때문에 스웨덴 국민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