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인 “선거는 4월1일부터 시작, 국면 바뀔 것”
  • 송창섭‧구민주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7 16: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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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 수락 전 심경 털어놓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총선을 보름가량 앞두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19대 총선 새누리당, 20대 총선 민주당 등 여야 정당이 위기 때마다 그를 영입해 대성공을 거두면서 ‘닥터K’ ‘승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전 대표는 최근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펴냈다. 생애 첫 회고록이다. 그는 서강대 교수 시절 쓴 재정학 교과서와 자신의 전매특허와 같은 ‘경제민주화’ 관련 책을 제외하곤 어떠한 책도 쓰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에는 조부인 가인 김병로 선생과의 일화를 비롯해 자신의 유학, 교수 시절 있었던 일, 5공화국부터 문재인 정부 때까지 정치권 중심과 주변부를 왔다 갔다 하면서 겪었던 일이 자세히 담겨 있다. 정치라는 영역에 수십 년간 몸담았던 그가 내린 결론은 이 책의 제목처럼 ‘영원한 권력은 없다’다.

3월23일 오후 광화문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3월23일 오후 광화문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통합당, ‘보수’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없어”

인터뷰가 있었던 3월25일 김 전 대표는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김 전 대표를 21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에 영입하는 것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서다.

황 대표 입장에서 김 전 대표 영입은 반문 연대의 마침표’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렇게 되면 미래통합당은 ‘미래’는 둘째 치더라도 ‘통합’이라는 정치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인터뷰가 있었던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김 전 대표 사무실은 여러 인사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인터뷰도 약속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청년 정치를 주제로 인터뷰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통합당 합류 여부를 묻자 “특별히 얘기 오가는 것도 없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것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김 전 대표는 이튿날인 3월26일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통합열차를 탔다.

이날 인터뷰는 전반적으로 회고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중간중간 정국에 대해서도 물었다. 과거 17대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 선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서울 성북을에서 투표 2주 전 30% 이상 차이 난 것을 실제 선거에서 역전시킨 일화를 소개한 김 전 대표는 “이번 선거는 4월1일부터가 사실상 시작이며, 그 이후부터 얼마든지 국면이 변화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회고록의 부제로 사용된 ‘대통령들의 지략가’라는 찬사가 괜한 소리인지 아닌지는 4월15일이면 알 수 있다. 김 전 대표의 예측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질까. 자못 궁금하다.

 

정치권이 왜 선거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먼저 그 사람들을 찾아간 적이 없다. 하도 도와 달라 하고, 내가 판단하기에도 ‘이번에 이 사람 도와주는 게 좋겠다’ 싶어 그냥 도와준 거다.”

선거 때마다 어떻게 하기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유세장을 쫓아다녔다. 그때도 유세장 분위기와 관중들 표정을 보면 누가 당선될지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저 일반 국민의 흐름을 잘 들여다보면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명심해야 할 선거 전략은.

“선거 구호로 뭘 내놓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단적으로 통합당은 ‘보수’가 뭔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다. 자유한국당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을 때 스스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탄핵받은 정당이니까 ‘파괴적 혁신’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안 했고 통합만 하자 했다. 왜 통합했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간다. 오늘날 선거판이 이렇게 혼선을 빚고 있는 게, 되지도 않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위성정당이나 만들고 거기에 현역 의원들이나 꽂고 있잖나.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이럴 바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없애는 게 나을까.

“이런 제도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지.”

통합당에 기회가 올 거라고 보는지.

“이번 선거는 4월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변화에 따라 결판날 거다. 17대 때 조순형 민주당(새천년민주당) 의원은 12%에서 시작했지만 14일 만에 48%였던 상대방을 따라잡아 이겼다.”

통합당이 남은 시간 동안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하나.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 정강정책은 2012년 초 내가 가서 만든 거다. 그런데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변하면서 정강정책을 또 바꿨더라. 당신들(미래통합당)이 기본적으로 뭘 지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김 전 대표의 중도 정책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건 당연하지.”

선거 결과가 여당에 불리할까.

“상식적으로 정부의 지난 3년간 치적을 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권의 몇 개 선거구 후보를 바꾸지 않으면 선대위원장으로 안 가겠다고 했다던데.

“다 지나간 일이다. 그래도 최근 잘못된 공천 몇 개를 시정하긴 한 것 같더라.”

이러한 조치가 김 전 대표 영입을 염두에 두고 한 거라던데.

“그건 잘 모르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쪽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들었다.

“연락 온 적도 없고 볼 필요도 없다.”

통합당에 선거 전권을 달라고 했다던데.

“선대위라는 건 선대위원장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효율을 얻을 수 있다. 거기서 토론하고 의견을 모으고 이러면 선거를 끌고 갈 수가 없다. 이건 상식이다.”

3월26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택을 찾아 당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를 제안해 합의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래통합당
3월26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택을 찾아 당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를 제안해 합의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래통합당

제안했을 때 황 대표 반응은 어땠나.

“그 당이 통합당 성격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

박근혜·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하면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은 어떤가.

“갑자기 당에 들어갔고 경험도 없다 보니 장악력이 떨어진다. 인간적 차이는 별로 없다.”

직접 만나보고 황 대표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법을 공부하고 검사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곧은 사람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다만 아직 정치력이 크게 발전한 사람은 아니다.”

조부인 가인 김병로 선생도 법조인이자 정치인이셨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도, 변호사도 하셨다. 해방 후엔 최초로 당을 만드셨다.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신 분이다. 요즘 법률가들은 사고의 폭이 좁다. 황 대표도 그런 면이 있다. 노력해서 극복할 부분이지….”

책을 보면, 가인 선생께서 “내가 앞장서지 않으면 지금 우리나라 야당이 태동하기 어렵다. 정치인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숙명처럼 맡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한 말씀을 썼는데, 이번에 통합당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런 의미일까.

“내 나이 팔십에 무슨 욕망을 갖겠나. 나라가 좀 잘되는 방향으로 선거를 치러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뿐이다.”

나라가 잘된다는 건 건강한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건강한 야당이 돼 행정부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 지난번 4+1 합의 같은 건 없어야지. 그런 식으로 의회가 제 기능을 못 하면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통합당을 돕게 된다면 이는 곧 건전한 수권 야당을 만들고 싶단 뜻인가.

“그렇다. 여당이 함부로 할 수 없는 당을 만들고 싶다. 국민이 각성을 안 하고 선거에서 잘못 판단해 표를 던져 나중에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20대 국회의 경우, 의회와 정부 간 갈등이 소모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기본적으로 권력을 잡은 쪽이 양보하고 권력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책에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게 곧 권위주의이고 독재정부’라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는데.

“어느 조직이든, 정부든 내부 비판이 없으면 권위적으로 간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 면에선 군사정권보다 더 경직돼 있다. 자기들이 여당이 되면 과거 여당이 했던 짓을 안 해야 하는데 결국 똑같잖나.”

독재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더 독재화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렇지. 그래서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한 사람이 시어머니 되면 더 독해진다는 거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능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 성격이니 내가 뭐라 말할 건 없지만, 지도자는 자신감을 좀 더 가져야 한다. 자신이 없으니 남의 말을 다 고깝게 듣는 거다.”

최근 통합당의 영입 과정은 어떻게 보나.

“솔직히 통합당 내에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내가 민주당을 도와 자기 정권을 무너뜨리게 한 사람이라고 본다.”

청년 정치는 이번에도 제대로 안된 것 같은데.

“희망을 걸어봤는데 결과를 보니 역시 목적의식을 갖고 한 것에 불과했다. 누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면 거기에 가서 의석이나 하나 얻으려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한국에서 마크롱이 나오긴 아직 이른 것 같다.”

책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꾸준히 언급했다.

“70년 이상 역사를 가졌지만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통령이 단 한 사람도 없지 않나. 일차적으로 제도가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완전히 고장 난 엔진은 서둘러 바꿔야지, 운전사만 바꿔선 안 된다.”

희망하는 권력구조는 내각제인가.

“제대로 된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나오려면 대통령제에선 어렵다. 결국 내각제가 돼야 하지 않나 싶다.”

통합당의 특정 지역 공천을 거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 어디를 찍어 얘기해 본 적은 없다. 서울 강남갑에 공천된 태영호 전 공사의 경우 잘못됐다 하긴 했지. 비례대표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또 강남을 공천이 바깥에서 이상한 얘기가 있으니 좀 시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긴 했었다.”

지금 통합당 현실이 20대 총선 때 민주당보다 더 복잡하다고 보나.

“훨씬 더 복잡하다.”

 

회고록에 노태우 정부 핵개발 비화 등 담겨

신간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는 박정희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한국 정치·경제사를 관통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나를 ‘여의도의 포레스트 검프’라 부른다”고 밝혔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자신의 삶을 그는 그렇게 평가했다.

무거운 현대사의 변곡점만 다룬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 때 극비리에 핵개발에 나선 것이나, 독일 뮌스터대에서 먼저 수학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며 당시 김 추기경의 지도교수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라는 등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담았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정책이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경제민주화를 핵심 정책으로 집어넣는 과정에서 벌인 갈등,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자택까지 찾아와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

“국민의 의식과 판단에도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각성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 정치,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정치권에 적당히 바뀔 것을 주문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국민이 산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게 책의 강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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