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초라해질 때, 그때야말로 시가 필요한 순간”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9 11: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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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펴낸 시 에세이스트 정재찬 교수

“삼시 세끼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밥을 먹고, 그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고 땀 흘리는 우리들. 그것은 지겨운 비애가 아니라 업(業)의 본질을 엄숙하게 지켜가는 저 성스러운 수도승에 비겨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자신의 소명을 알고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살리려고 밥을 먹여주며, 불을 끄고, 수술을 하고, 이마를 덮어주는 것. 바라건대, 그렇게 사는 우리에게 시의 아름다움과 낭만, 사랑마저 가득하기를.”

베스트셀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로서 각종 방송과 매체를 통해 시를 전하며 메마른 가슴에 시심(詩心)의 씨앗을 뿌려온 ‘시 에세이스트’ 정재찬 교수가 신간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펴냈다. 이 책은 인생의 무게 앞에 지친 이 시대의 모든 이를 위해 자기 삶의 언어를 찾도록 이끌어줄 열네 가지 시 강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인생에 해답을 던져주거나 성공을 기약하는 따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여러분은 시가 안내한 그 기막힌 경관의 자리에서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시로 듣는 인생론은, 그래서 꽤 좋을 것입니다.”

정 교수는 밥벌이, 돌봄, 배움, 사랑, 건강, 관계 등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에 관한 지혜를 60여 편의 시에서 찾아 들려준다. 시는 인생에 대한 통찰과 성찰을 담은, 아니 그 자체가 삶을 응축한 또 하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교수의 이번 강의는 지긋지긋한 밥벌이 속에서도 업의 본질을 찾아내고, 수많은 난관에도 ‘모든 것이 공부’라며 미소를 띠게 하고, 지독한 현실 속 우리가 잊고 살던 마음들을 소환하는 특별한 인생 수업이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지음│인플루엔셜 펴냄│356쪽│1만6000원 ⓒ인플루엔셜 출판사 제공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지음│인플루엔셜 펴냄│356쪽│1만6000원 ⓒ인플루엔셜 출판사 제공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다”

“먹고산다는 일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마치 로마 병정처럼, 내 몸속의 피와 땀과 눈물을 내주고 그 대가로 귀한 소금을 받아 그걸로 몸을 만듭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생업을 ‘소금 버는 일’이라고 했을까요. 생판 모르는 남과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가족을 꾸려 서로를 돌보며, 밥벌이를 위해 종일토록 수고하고 땀 흘리는 우리들. 하지만 때로 그 고단한 인생의 길목에서 사랑, 자유, 고귀함 같은 마음속의 빛나는 말들이 점점 사위어가고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덜컥 멈춰 서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시는 가르쳐줍니다. 보통의 삶에서 밀려나 먼 곳을 우회하는 것 같을 때 그 굽이진 길 덕분에 볼 수 없는 것을 돌아보았노라고.”

생의 모든 과정은 말 그대로 고해(苦海)와도 같다. 그 혹독한 인생의 과제들을 헤쳐 나가는 동안 인생의 무게 앞에 내 삶이 초라해질 때 우리는 무엇으로 삶을 더 채울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정 교수는 ‘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우리 인생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나지막이 되묻는다.

“어느 나무가 더 노인네인지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습니다. 나이를 이마의 겉주름이 아닌 나이테를 속에다 쟁여 넣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을 소환하는 인생 수업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수차례 집필하고 미래의 국어교사들을 가르쳐온 정 교수의 수업 방식은 특별하다. 흘러간 유행가와 가곡, 오래된 그림과 사진, 추억의 영화나 광고 등을 넘나들며 마치 한 편의 토크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시를 사랑하는 법보다 한 가지 답을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온 학생들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돌려주고 싶었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인생의 관문에는 늘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정답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살 만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정 교수는 이 책에서 시(詩) 소믈리에가 돼 정해진 답이나 위로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인생의 맛을 되새기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한 편의 시를 건넨다. 지친 우리를 늘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듣기 좋은 구호나 허울 좋은 통계가 아니라, 마음에 품은 작은 희망이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헤아릴 수 없는 열정과 그리움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에 대한 관조와 성찰, 가슴 터지는 열정과 마디마디의 상처들, 높이 날고 낮게 포복하면서 구한 지혜와 위로, 그 덕에 시인들은 언제나 인생길의 적재적소에 미리 자리해 있었습니다.”

정 교수는 독자가 직접 강의를 듣는 듯 느끼도록 차분하고 담담하게,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입말을 사용하며, 시가 안내하는 인생길의 경관으로 독자들을 친절하게 이끈다. 그가 펼치는 열네 번의 시 강의는 박목월, 신경림, 이성복, 황동규, 문정희, 나희덕, 김종삼 등의 60여 편에 달하는 주옥같은 시 작품뿐 아니라 인문학, 영화나 가요 등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가득하다. 그것들로 독자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마음은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영혼은, 채우는 겁니다. 얼마나 선한 것, 얼마나 귀한 것,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으로 채울까. 그런 것들로 채우는 삶은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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