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방 대화록 단독입수] 죄책감마저 사치였던 ‘성착취 놀이터’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3.27 14:00
  • 호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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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2만장 분량…‘n번방’ ‘일베’ ‘경찰’ ‘돈’ ‘죄책감’ 등 5개 키워드별 분석

그곳에서 죄책감은 사치였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라도 표현할라치면 어김없이 야유가 이어졌다. n번방의 후계자 ‘와치맨’이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은 성의식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시사저널은 3월24일 와치맨 전아무개씨(38·구속)가 운영했던 ‘고담방’의 대화 기록 등을 입수했다. 이 방은 음란물이 직접 거래된 방은 아니다. 대신 n번방을 포함해 각종 음란물 공유방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영 방식은 n번방과 유사하다.

고담방 가입자들은 대화록 입수 시점을 기준으로 2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그해 11월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음담패설을 쏟아냈다. 총 대화 분량은 A4 용지로 약 2만 장 정도다. 이들은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시사저널은 대화 내용을 5개 키워드로 나눠 정리했다. 자극적인 묘사나 피해자의 신상이 추측될 만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는다.

ⓒ일러스트 신춘성
ⓒ일러스트 신춘성

① n번방

n번방:“정리 끝났네요. 1번방 7명. 2번방 5명. 3번방 3명. 4번방 3명. 5번방 11명. 총 29명.” 2019년 7월10일 고담방의 한 가입자는 이와 같이 적었다. 각 n번방에서 피해 입은 여성의 수로 추정된다. 그러면서 “나이대는 9살부터 24살까지”라고 덧붙였다. 이 가입자는 나중에 계정을 삭제했다. ‘9살’이란 언급에 대화방은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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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10일 오전 2시56분>

● 9...?

● 와

● 9살은 뭐임

● 9살 개 로리(조숙한 소녀를 뜻하는 ‘로리타’의 준말)임

● 나도 거름 ㅋㅋ

● 근데 1번방이 7명이나 되나

● 방 주소 이제 안 나오나요? ㅠ

●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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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은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하다.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될 나이다.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성관계를 할 경우 형사 처벌받는 의제강간죄 기준(만 13세 미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고담방 가입자들은 n번방 링크를 알려 달라는 파렴치한 요구를 쏟아냈다. 

이에 ‘..’이란 아이디의 가입자가 “질문글이 전부 1~5번방 링크 달라는 글이네. 여기 계신 분들은 다 들어가 보신 거 아닌가요?”라고 했다. 이 가입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시자’ 또는 ‘시자’로 불렸다. 이는 와치맨 전씨의 또 다른 별명이다. 전씨가 암암리에 n번방 경험을 다른 가입자들과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n번방은 고담방과 다르다. 1번방부터 8번방까지 8개의 대화방으로 구성된 n번방은 성착취 영상물이 공유된 곳이다. 현재 경찰이 추적 중인 ‘갓갓’이 만들어 운영했다. 고담방에선 직접 음란물이 배포되진 않았다. 단 여기에선 n번방에 관한 정보 공유가 이뤄졌다. n번방 입장을 위한 ‘면접방’도 고담방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n번방과 고담방의 밀접한 연관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담방에선 n번방과 관련해 유독 자주 언급되는 가입자 4명이 있다. 아이디 ‘켈리’ ‘체스터’ ‘키로이’ ‘똥집튀김’이다. 이들은 이른바 ‘고담방의 사황(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4명의 해적왕)’으로 불렸다. 게다가 각자 자신의 대화방을 운영하면서 음란물을 직접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특히 켈리로 드러난 신아무개씨(32·구속)는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직속 후계자로 밝혀졌다. 신씨는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로 구속돼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외에 고담방 대화록을 보면 “키로이가 노사모방에서 켈리와 다른 관리자들을 강퇴시켰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로 추측하건대 키로이는 ‘노사모방’의 운영자로 보인다. 이 방은 또 다른 음란물 공유방이다. 방의 이름 때문에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와의 연관성도 의심받고 있다. 경찰은 노사모방에서 여성 신체부위가 노출된 사진·영상 1675건이 유포된 것을 확인했다. 이를 포함해 ‘고담방의 사황’이 관리한 대화방 4개에서 퍼진 음란물은 총 1만1297건에 달한다. 

 

② 일베

지난해 8월4일 전씨는 고담방에서 “일베 때문에 고담방 떠난 사람이 수백 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시로 공지문을 올려 “일베 드립 금지”라고 강조했다. 소용없었다. 고담방에서 ‘일베’는 총 1462번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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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18일 오후 1시14분>

● 난 처음 텔레(그램)방 왔을 때 번호방(n번방) 받으려고 노무현 프사(프로필 사진) 달고 일베 말투로 하루 종일 XX 빨아서 겨우 받았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노오력(노력)하는 애들은 ㄹㅇ(‘진짜’란 뜻의 신조어) 그 X랄이라도 하든가

● 프사는 바꾸기 귀찮아서 그때 프사 계속 쓰는 중

● X중복이어도 자기가 젤 아끼는 자료 먼저 보내면서 형님형님 하면 노오력 때문에 구해서라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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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n번방의 입장 조건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 고담방 가입자 2000명 중 일부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패러디한 아이디의 소유자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행위는 일베의 전형적 특징이다.

일베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발언 역시 고담방에 때때로 올라왔다. “텔레방도 전라도 차단 기능이 필요함” “여성부 좀 폭파시켜주십쇼” 등이다. “좌파 X끼들 이중성은 알아줘야 함”이라며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세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고담방 내 성착취 행각은 꼭 일베만의 특성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각은 각종 온라인 메신저에 만연해 있는 일종의 놀이 문화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③ 경찰

n번방이 생겨난 건 2018년 11월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경찰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시사저널도 지난해 4월 텔레그램의 음란물 공유 실태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n번방은 수면 아래에 깔려 있었다. 본격 수사에 돌입한 건 지난해 7월 대학생 취재팀 ‘추적단 불꽃’이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비교적 늦게나마 감시망이 드리웠지만, 고담방 가입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담방에 수시로 올라온 공지문에는 “이 방에는 경찰, 기자, 운영자, 해커, 피해자 등이 있습니다. 공개된 방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가입자들은 수사 당국에 대한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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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16일 오전 4시1분>

● 내가 짭새(경찰의 비속어)면 여기 안 온다. 귀찮게. 잡기 쉬운 X신들 천지인데. 

● 내가 단속도 두 번 맞아봐서 아는데 탕 맞을 때 필(feel)이 오거든.

● 상부에서 지시가 없다면 짭새 X끼들이 얼마나 지 할 일만 하는 공무원 그 자체인데

● 하긴 텔레(그램)는 양놈꺼잖아

(중략)

● 단속 맞을 때 수사하던 X낀데 동향이라고 잘 봐주더라 

● 지가 이득 되는 거 아니면 손도 안 댄다 

● 좀 아네 

● 한국 짭새가 텔레 수사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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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도 경찰의 수사력을 깎아내렸다. 그는 지난해 7월31일 “아청물(아동·청소년 음란물)이라도 다운로더 별로 신경 안 쓴다. 웹하드에서 아청물 받아도 그냥 넘어간다”고 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판매 목적으로 갖고 있었다면 10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전씨는 또 “텔레그램에서 추려내 잡는 거 자체가 불가능”이라고도 했다.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 때문에 범죄에 종종 악용된다. 본사 측이 수사 협조 요청에 소극적이라 이용자의 흔적을 추적하기도 어렵다. 전씨의 텔레그램 관련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강원지방경찰청의 전형진 사이버수사대장은 “어쨌든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기 위해 접촉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전씨가 고담방 홍보를 위해 사용한 블로그 등 다른 플랫폼을 수색하면 음란물 시청자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④ 돈

성착취물은 돈이 됐다. n번방을 물려받은 ‘켈리’ 신씨는 음란물 재판매로 2500만원의 이익을 챙겼다. 고담방에 이어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25·구속)의 자택에선 1억3000만원가량의 현금이 발견됐다. 범죄 수익으로 추정된다. 전씨는 ‘음란물 공유가 적발되는 경우는 돈 욕심 때문’이란 취지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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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14일 오후 6시29분>

● 새로운 서버 구축 중이라 하니 잡힌 것 같진 않네요. 애초에 성인사이트 운영자들 잡힌 거 보면 코미디던데.

● 대부분 광고 대준다고 접근해서 잡힘.

▶ (‘와치맨’ 전아무개씨) 90퍼 돈 때문에 잡히죠.

● 들리는 바로는 일반 성인사이트에 절대 안 풀린 자료부터 해서 딥웹(IP 추적이 불가능한 특수웹) 심해 자료마냥 진아청부터 완전 그들만의 리그라고 들었습니다.

▶ (전씨) 지금 성인 사이트들도 현실적으로 못 잡습니다. 아청물을 다루지 않는 이상 해외 서버로 운영하면 잡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대부분 ‘실수’ 때문에 잡히는 거죠. 딥웹도 마찬가지고요. 그 ‘실수’는 90% 이상 돈에 관련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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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갓갓이 솔까(솔직히 까놓고 말해) 욕심 부려서 방 입장권 팔고 자기가 챙겼으면 벌써 잡혔을 겁니다. 욕심 없으니 안 잡힌 거죠”라는 말도 남겼다. “마음먹고 입장권 팔았으면 못해도 수천만원은 벌었을 것”이란 추측도 뒤따랐다.  돈 욕심은 경계했지만, 전씨는 음란물 거래 방법으로 암호화폐는 신뢰했다. 특히 암호화폐의 하나인 모네로에 강한 믿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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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19일 오전 11시47분>

● 코인 중에 FBI도 추적 못하는 거 있을까요?

▶ (전씨) 모네로

● 페도(소아성애자를 뜻하는 페도필리아(Pedophilia)의 준말)들 많이 이용하겠네... 절대 안 걸리니까.

▶ (전씨)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이용합니다. 모네로. 일단 불법적인 건 다 모네로 이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 비트코인이 훨씬 더 유명하고 불법적인 거 많이 이용되잖아요. 모네로는 쩌리로 보이는데...

● 그럼 어떤 코인도 안전하지 않다는 말씀?

▶ (전씨) 하여튼 모네로는 안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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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로는 처음부터 익명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됐다. 중개 플랫폼을 거치지 않는다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다크코인’이라고도 불린다. 2017년 세계를 강타한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해커들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뜯어낸 비트코인을 모네로로 바꿨다. 

국내 다수 언론은 “모네로도 추적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업체 관계자는 “암호화폐 전송이 거래소를 통해 이뤄졌다면 100% 추적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단 빗썸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는 n번방 사건 해결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블록체인 관계자는 “개인 암호화폐 지갑을 이용해 거래했다면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해외 거래소를 활용했을 경우에도 추적이 힘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씨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거래소 지갑은 당연히 추적된다”고 했다. 또 다른 고담방 가입자는 “누가 거래소 지갑으로 하냐. 국내 걸로 하는 흑우(‘호구’의 신조어) 없제?”라고 했다. 전형진 강원청 수사대장은 “모네로의 추적 여부는 밝히는 순간 또 다른 빌미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⑤ 죄책감

고담방에선 기사에 담기 힘든 반윤리적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싶다거나, 미성년자나 장애인을 능욕하고 싶다는 글이 공공연히 올라왔다. n번방의 여성들이 협박에 의해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진 음란 행위에 대한 묘사도 있었다. 이들에게 일말의 죄책감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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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14일 오후 6시30분>

● 뭔 죄책감이여. 다 사람 업보지.

● 죄책감 가질 거면 들어오지를 말지.

● 노예 30명 넘어서 하루 한 명씩 토론해도 한달 후딱임

● 예전에 소라넷 카페에 성봉사 모임 있었는데 장애인들 상대로 성욕 풀어주는 카페.

● 먼 X선비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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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방에서 죄책감은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가입자 중 한 명은 “쓰레기 같은 인간임을 인정하고 즐길 수밖에 없다”며 “일말의 죄책감이 든다면 그냥 떨치는 수밖에”라고 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죄책감은 동등한 인간끼리 느끼는 감정”이라며 “여성을 성적 착취의 대상이자 도구로 생각하는 남성들은 죄책감을 가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이번 사태는 여성 혐오가 가득 찬 남성 우월주의자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씨는 지난해 9월27일 새벽 “고담방 식구들 오늘도 수고했어영”이란 글을 남긴 뒤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이틀 뒤인 9월29일 구속됐다. 검찰은 올해 3월19일 그에게 징역 3년6개월형을 구형했다. 곧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이에 검찰은 이례적으로 재판 연기를 요청하고 추가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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