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앞다퉈 내놓은 ‘지역화폐’…담배 사재기로 악용되기도
  • 세종취재본부 이진성 기자 (sisa415@sisapress.com)
  • 승인 2020.04.0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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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세종시 등, 지역화폐 구입자에 10%대 할인 혜택 제공
품목 제한 없어 담배 사재기 등 꼼수 활용 문제도

#1. 흡연자인 직장인 A씨는 최근 담배 구입을 위해 서울시가 발행하는 제로페이를 충전했다. 체크페이 앱을 활용해 지역상품권을 구매할 때 15% 할인 혜택(4월7일 이후 충전시 10% 할인으로 변경)을 받을 수 있는 데, 이를 담배 구입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A씨는 5만원 상품권을 통해 담배 7갑(갑당 4500원)을 구매한 후, 나머지 금액은 환불 받았다. 결과적으로 A씨는 담배 7갑(3만1500원)을 23.8%(7500원) 할인받은 2만4000원에 구입한 셈이다. 상품권 최대 구입한도인 월 100만원을 모두 5만원 상품권으로 구매해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담배 140갑(14보루)을 샀을 때 무려 15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2. 세종시에 거주하는 B씨는 사용금액의 10%를 캐시백으로 바로 준다는 지역 화폐(충전식 카드 방식)인 '여민전'을 신청해 사용중이다. 담배를 구입한 금액도 캐시백을 주기 때문에, 매일 1갑을 소비하는 B씨는 구입 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프로모션 기간에만 10% 캐시백을 주고, 이후 6%라는 소식에 B씨는 월 한도금액(50만원)에 맞춰 담배를 미리 사둘 계획이다. 생필품 등의 다른 소비에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다른 품목은 일반 소매점에서 구입 후 받은 캐시백을 고려하더라도 사용이 제한된 대형마트가 더 저렴하고 혜택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세계보건기구는 담배 1갑당 1만3000원이 돼야 흡연율의 대폭적인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세계보건기구는 담배 1갑당 1만3000원이 돼야 흡연율의 대폭적인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각 지역에서 발행하는 지역상품권이 담배 사재기를 위한 용도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품목을 가리지 않고 할인을 해주다 보니 평소 할인이 불가한 담배 구입에 쏠리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도 일부 지자체는 지역 상품권에 품목 제한을 두지 않는 게 문제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소매인이 담배를 할인 판매하게 되면 담배사업법에 따라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이번 사례와 같이 상품권의 사용용도에 대한 규제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담배사업법에서 담배 할인 판매를 못하게 막아놨더라도 충분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때문에 국민의 복지 및 건강 등을 위한 정책을 펴야할 지자체의 상품권이 건강을 해치는 용도에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국립암센터 교수)는 "(금연)정책에는 목적이 있는 데, 국민 건강을 해치는 방식으로 상품권이 사용된다면 제한이 필요하다"면서 "서울시의 상품권이 시민들의 복지 및 복리를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한다면 건강을 해치는 부분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지자체가 지역화폐 사용을 확대하는 데만 집중해서다. 표면적으로 지역화폐 취지에 어긋나는 대형마트 및 쇼핑몰, 백화점 등의 사용용처는 제외하면서도 품목제한은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담배의 경우, 다른 품목과 달리 전국 어디서나 할인이 불가능한 품목이라, 이를 악용하는 흡연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역화폐가 담배 할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면서 "품목제한에 대한 협조요청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뿐만이 아니다. 지역 상품권을 발행하는 행정수도 세종시도 품목제한을 걸어두지 않아, 담배 할인 구입에 사용되는 실정이다. 세종시가 발행하는 지역화폐인 '여민전'은 10%캐시백을 주고 있어 10%할인 효과가 발생한다.

세종시 관계자는 "지역화폐가 담배 할인 구매에 사용되고 있는 지 몰랐다"면서 "전국에서 품목 제한을 걸어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전국에서 발행중인 지역화폐가 담배를 할인 구매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상은 이렇지만, 지자체들은 문제점은 인지하면서도 개선에는 수동적인 모습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역화폐가 담배 할인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면 비판적인 시각이 가능할 것 같다"면서도 "품목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비흡연자인 A직장인은 "지역화폐 할인이 결과적으로 지역주민들의 세금인데, 담배 구입에 사용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쓰일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가 발행하는 서울사랑상품권 800억원어치는 시판 1주일 만인 4월8일 완판됐다. 앞서 같은 할인율이 적용된 상품권 500억원어치도 시판 열흘 만인 지난 4월1일 동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는 10%할인 혜택을 제공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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