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에 바란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8 17: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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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관련법 처리해야

선거가 끝났다. 되짚어 읽을 곳이 많은 선거 결과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수 국민은 국가의 보호 안에서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4·3 전날 시작해 4·16 전날 끝난 선거기간은 날짜 자체로도 매우 상징적이지만, 실제로도 국가의 존재 의미를 곱씹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선거를 연기하지 않고 치러낸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된 가장 절실한 이유는 아마도 제대로 된 정부와 국가를 유지하고 싶다는 갈망이었음에 틀림없다. 강경화 장관이 말했다시피, 국가가 국민을 버렸던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현 정부와 국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20대 국회는 선거와 함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5월31일 임기가 다해야 끝이 난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헌법기관이다. 예산 결산을 심사하고 국정을 감사하며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법안을 고치고 다듬고 새로 만드는 일을 한다. 정당과 지역을 넘고 경쟁과 대립을 넘어 일해야 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선거 전에 해야 마땅하지만, 선거 후라도 하지 않으면 왠지 남은 날들을 허비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너무 크다. 이런 것이 아마도 정치불신이라 불리는 감정일 것이다. 그만큼 20대 국회는 보고 있기 힘겨웠다.

3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법사위 연석회의에서 백혜련 단장(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3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법사위 연석회의에서 백혜련 단장(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마지막까지 할 일 하고 가시길

정치를 비관적으로 설명하는 말로 국민은 자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가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수정되어야 하겠다. 한국은 선거법이라는 무기로 국민을 정치인 수준에 맞게 얽어매고 있다고. 지역주의에 기대면 너무 쉽게 선거할 수 있는 정당은 선거법을 근본적으로 손볼 마음이 없다. 성할당제도 마찬가지다. 만일 2004년 선거에 지역구 30% 여성할당제를 실시했다면, 그동안 정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했듯 중대선거구제로 바꿨다면 어땠을까. 승자독식 시스템으로 인해 지도를 뻘겋고 퍼렇게 칠해 동서로 쪼개버리는 이런 그림은 없었을 것이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제안했듯 차별금지법이 그때 이미 만들어졌다면 20대 내내 그리고 선거기간 내내 우리가 참아내야 했던 그 망발과 난동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천천히 진보하고 있다고 자기 다짐을 하지만, 다당제가 무너지고 보수여당과 극우야당 양당의 난장판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21대를 바라보며, 20대 국회는 유종의 미를 거두라고 말하는 일이 허무할 수 있다. 그래도 한 번 더 믿고 당부한다. 마지막에라도 할 일을 하고 가시라. 특히 낙선한 여성의원들이시여, 낙선이 끝이 아니다. 일하라. 견인하라.

20대 국회가 마무리하고 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들이다. 집단성착취 영상거래방(일명 n번방) 사건은 아직도 당연히 진행 중이다. 단순히 “벌주자”를 넘어, 유구한 남성 성폭력사회의 의식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끔 언어를 바꾸고 제대로 벌할 수 있게 촘촘히 다듬어야 한다. 이미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로 ‘n번방 3법’이라 불리는 법 개정안이 나와 있다. 권김현영이 주장하듯 인신매매법을 디지털 성착취에도 적용해야 한다.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이 인면수심의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각종 법안이 더 만들어지고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절반은 여성임을 기억하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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