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이유 있는 김희애 전성시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5 10:00
  • 호수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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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변신·지적인 분위기·압도적 연기력 ‘3박자’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지수에서 김희애가 4주 연속 1위를 이어가고 있다(4월21일 기준). 한류 스타를 비롯해 수많은 핫스타를 제치고 데뷔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중년 배우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여성 배우가 중년 이상의 나이가 되면 급속히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김희애는 여전히 한가운데 서 있다.

기왕에도 톱스타였던 김희애를 특히 중년 이후 더욱 ‘핫’하게 만든 것은 치정멜로였다. tvN 《명단공개》는 2015년 ‘작품 속 희대의 불륜 캐릭터와 불륜 전문 배우로 거듭난 스타들’ 순위에서 김희애를 1위로 꼽았다. 김수현 작가의 2007년작 《내 남자의 여자》로 김희애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원래 김희애는 착하고 여린 주인공 역할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였다. 주연급 톱스타는 보통 이런 역을 맡는다. 그런데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희애는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팜 파탈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 섹시한 원피스와 뽀글 머리 파마로 스타일까지 새롭게 변신해 40대의 도발을 보여줬다.

ⓒJTBC
ⓒJTBC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모, 고모, 엄마 역할로 접어들 나이에 놀라운 변신과 도전으로 캐릭터를 새로 구축한 것이다. 김희애의 매력이 신선하게 부각됐고, 연기자로서의 전문성과 카리스마도 인정받았다. 마침 고령화로 접어들면서 중년이 더 이상 중년이 아닌, ‘꽃중년’이 대두되는 시대였다. 그런 변화를 선도하면서 김희애는 이미지를 ‘재정립’해 핫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실에선 뜨거운 로맨스를 감행하기 힘든 주부들이 김희애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김희애는 주부들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김희애 부부 파경설이 나돌 정도로 대중이 김희애의 불륜 연기에 몰입했고, 그해 SBS 연기대상이 김희애에게 돌아갔다.

김희애의 불륜멜로 연기는 2012년작 JTBC 《아내의 자격》으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당시는 아직 종편이 불모지였던 시절인데도 시청률이 3.4%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가히 JTBC 개국공신 수준이다. 연이어 2014년작 JTBC 《밀회》로 또다시 만루홈런을 날렸다. 이때까지도 종편 초창기여서 시청률은 5.3%에 그쳤지만 화제성은 당대 최고였다. 유아인과 커플 연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고혹미로 “특급칭찬이야”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그리고 이번 JTBC 《부부의 세계》로 치정멜로 퀸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희애만의 이미지, 김희애만의 매력

일반적으로 스타 여배우는 선망의 대상이다. 김희애는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일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범접할 수 없는 컴퓨터 미인 같은 느낌이 아니어서 더 동일시되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자기 관리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주부 시청자들의 몰입과 관심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다.

김희애만의 이지적인 느낌도 있다. 섹시하거나 화려한 배우는 많아도 지적인 느낌을 주는 배우는 많지 않다. 김희애가 그런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극의 막장성이 면책된다. 자극적인 불륜극이어도 김희애가 주인공이면 왠지 고급스럽게 느껴져 시청자의 거부감이 사라진다.

거기에 연기력이 화룡점정을 이룬다. 《부부의 세계》 원작을 방영한 BBC의 프로듀서는 한국판을 보고 “이 작품의 성공은 김희애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탁월한 연기로 자신의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한 여성의 모습을 아주 세심하게 그려내며, 최고 반전의 엔딩까지 이끌어갔다. 특히 냉담함과 따뜻함의 균형을 잡는 연기력이 압권이었다”고 평가했다.

《부부의 세계》는 심리 스릴러라고 할 정도로 심리 묘사로 자아내는 긴장감이 중요한 작품이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분노를 평면적으로 연기했다면 흔한 막장 드라마처럼 됐을 것이다.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터져 나오는 분노에 위태로워 보이고, 단아하다가도 어느 순간 카리스마 넘치는 팜 파탈이 된다. 복수의 칼날을 갈지만 동시에 연민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풍부하며 섬세한 김희애의 심리 묘사가 심리 스릴러의 힘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연기자로서의 능력과 함께 영화계에서 《허스토리》 《윤희에게》 같은 작고 의미 있는 작품들에 계속 출연하는 자세까지 더해져 김희애에게 진정한 프로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tvN 예능 《꽃보다 누나》를 통해 배려심도 보여줬다. 이래서 김희애가 계속 핫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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