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이게 최선입니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5 10: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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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인해 증발한 논점들...세금 감면이 현금 지급보다 효과적일까

 

결국,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이 받게 됐다. 여론은 긍정적인 편이다. 따지고 보면 처음도 아니다. 재난지원금은 법률적으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생계 안정을 위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구호비다. 이를테면 지난해 강원도 동해안 대형 산불 발생 이후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전 국민이 처음으로 받는 대규모 재난지원금이라는 것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겠다는 것이 기본 취지다. 하지만 소비지출을 늘려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경기 부양의 목적도 있다.

아쉬운 것은 여당과 기재부의 갈등, 그리고 야당과의 정쟁으로 정책 효과와 대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증발해 버렸다는 점이다. 돈을 쓴다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렇다면 경기 부양에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현금 지급 대신 세금을 감면하는 것은 어떨까. 근본적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복지예산을 쓰는 것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대다수에게 복지예산을 제공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재분배에 더 효과적일까.

4월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4월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현금 지급 vs 세금 감면

정부가 돈을 직접 뿌리는 방식과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감세 방식부터 비교해 보자.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프리드먼의 항상소득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구적으로 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만 소비를 늘린다. 어쩌다 들어온 돈이라면 소비하기보다는 예금을 한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소비보다 저축에 집중한다면 경기 부양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감세는 아무 의미가 없고, 그래서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효과가 빠른 것은 감세보다 역시 현금 지급이다. 단기 부양이 목적이라면 사람들에게 현금을 직접 주는 게 그래도 제일 낫다.

물론 재난지원금 지급에 동의한다 해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로 제한할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순전히 피해를 구제한다는 정책의 효율성 관점에서 본다면 재난지원금은 정말 어려움이 심한 계층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이 낫다. 기재부도 그동안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원을 주장하면서 선별 지원이 보편적인 지원보다 소비 촉진 및 경기 회복 효과가 크다고 주장해 왔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논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재분배의 역설(paradox of redistribution)’이다. 1980년대 유럽 11개국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 빈곤층만을 겨냥한 복지정책은 빈곤과 불평등을 낮추기 어렵더라는 것이다. 선별적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을 ‘기여하는 집단’과 ‘혜택받는 집단’으로 나눠 특정 계층에 복지혜택을 집중하게 되면서 일반 국민의 복지정책 지지도가 낮아지고, 점차 재분배 정책에 투입되는 재원이 감소하면서 장기적으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가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유럽 각국의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반대로 재분배의 역설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과도 있다. 소득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국민소득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보편적 복지지출보다는 선별적 복지지출을 통해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재난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응력은 계층별로 다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도 있고, 견딜 만한 사람도 있다. 아예 재난에 개의치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 재난 지원을 결정한 국가 가운데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피해 기준으로 선별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인당 1200달러를 지급하는 미국도 연간 소득 9만9000달러가 넘는 경우엔 돈을 주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 제한적

사실, 재난지원금 지급의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정부와 지자체 재난지원금의 총 소요 예산은 전 국민 100% 지급으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14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모든 수혜자가 지원금 전부를 소비한다면 국가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지원금과 같은 크기로 증가할 것이다. 2018년 우리나라의 가계 최종소비지출은 약 825조원 규모였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규모는 가계 최종소비지출의 1.7%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한계소비 성향을 고려하면 그 비중은 1% 미만으로 다시 줄어든다.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모두 계산해야 한다. 재난지원금 조성을 위해 세출을 조정하려면 사회간접자본 투자 예산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인프라 투자 감소는 그만큼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국민의 70%에게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했을 때, 국회 예산정책처가 더하고 빼면서 계산해 놓은 것을 보면 성장률 제고 효과는 0.1%포인트 남짓이었다. 정부 추계도 크게 다르지 않아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GDP가 약 2조1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역시 지난해 우리나라 총 GDP의 0.1% 수준이다.

경기 부양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한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전 국민 대상의 재난지원금과는 별도로 피해가 집중된 계층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의 보편적인 지원 때문에 재원이 부족해진다면 이것도 곤란하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던 초기부터 기재부만이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도 전 국민 대상의 지급에는 주저했다.

경제적 피해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경기 부양에 들어갈 돈이 얼마가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재정 투입에 감세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오늘 쓰는 사람이 있으면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기재부 예산실은 원래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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