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절하지 말고 잘하라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4 09:00
  • 호수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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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절을 한다. 고개를 가볍게 숙이는 목례에서부터 허리를 직각으로 꺾어 굽히는 90도 인사,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붙이는 큰절까지 형태의 다양함만큼이나 절에 담기는 의미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미래통합당의 국회의원 당선인 모임에서 초선인 자칭 ‘남자 막내’ 당선인이 ‘선배’ 당선인들에게 큰절을 올려 많은 뒷말을 낳았는데, 그 행위에도 여러 복잡한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특히 절을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기는 선거철이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도 그랬다. 많은 후보자가 거리에 나와 시도 때도 없이 절을 했다. 의례를 위한 제스처 가운데 가장 극진하다고 여겨지는 큰절 또한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큰절을 했고 정동영 후보도, 김진태 후보도 길바닥에 바짝 엎드려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제주도에 출마한 통합당 후보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세 명 모두 큰절로 유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큰절을 한 그들은 모두 선거에서 낙선했다. 몸을 한껏 낮추어 예를 다했음에도 기대한 성과를 끝내 얻지 못한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 연신 큰절을 한 일부 정치인은 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읍소’도 빼놓지 않았다. 위태로워진 판세를 의식한 듯 “도와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를 연발했다. 황교안 후보는 “정부 여당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부탁드린다. 도와 달라”고 호소하며 신발까지 벗고 길 위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김진태 후보도 “혼자 외로운 섬처럼 싸우고 있다. 도와 달라. 살려 달라”고 간곡한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했던 “도와 달라” “살려 달라”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뚱맞기 그지없다. 주객전도가 지나쳐도 이만저만 지나친 것이 아니다. 지역구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도와 달라’ ‘살려 달라’라니. 대체 누가 누구를 돕고 살린다는 말인가. 국민들을 돕고 살려야 할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결코 아니다. 선거가 낙선 위기에 빠진 후보자들을 도와 주고 살려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 이벤트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지역구민의 안전과 살림보다는 자신들의 안전과 살림에 더 몸 달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제발 절하지 말고 잘하라”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 충고는, 절을 한다고 나쁠 건 없지만 절할 시간에 잘할 방도를 찾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일침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국회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조기 처리를 놓고 여야 간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국회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조기 처리를 놓고 여야 간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국민을 돕고 살리기 위해 존재하듯, 당연히 정부도 국민을 돕고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정부가 국민을 돕고 살리기 위해 추진한 긴급재난지원금은 표류를 거듭하면서 ‘긴급’이란 의미 자체를 일찌감치 잃어 버렸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빗발치는데도 국민을 돕고 살려야 할 국회와 정부가 엇박자만 계속 드러내며 ‘골든아워’를 놓친 것이다. 게다가 ‘자발적 기부’ 얘기까지 나오면서 모양새도 구겼다. 국회의원 후보들의 “도와 달라” “살려 달라”라는 말이 생뚱맞은 것처럼 시민사회가 아닌 정부에서 먼저 ‘기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다. ‘기부’는 시민사회가 제안한다면 몰라도, 정부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나서서 할 말은 아니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국민들을 앞에 두고 엉뚱한 곳에서 나오는 “도와 달라” “살려 달라”는 호소는 언제 들어도 거북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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