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문구는 이렇다. “법(法)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면 / 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혀(舌)만을 보호하라!”
이 영화 제목이 다시 소환되는 중이다. 1988년이 아니라 1964년 5월6일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64년 그날, 18세 처녀 최아무개씨는 집에 놀러온 친구들을 배웅하다가 강간을 당할 위기에 처해그 남자의 혀를 깨물었다. 정작 기소된 것은 강간미수범이 아니라 최씨였다.과잉방어라는 비난을 당한다. 여기까지는 88년 사건과 같다. 그런데 64년의 판사는 최씨의 행실이 불량하다고 했다. 여자가 남자로 하여금 범죄할 마음을 품게 해 놓고도 가해자와 결혼하려 하지 않으니 유죄다. 법원 밖의 세상에서도 최씨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앞날이 창창했던 처녀의 앞길이 막혀버렸다. 보호할 가치가 없던 혓조각 조금 때문에. 고구마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목이 졸린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20년 5월6일, 최씨는 비로소 재심청구를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촉구하는 청원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 이후 많은 학자가 성폭력 사건에서 정당방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질문하며 법원의 판결이 어이없음을 비판해 왔다. 영화로 만들어진 유사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왜 그동안 재심을 청구할 엄두를 못 내었을까.
56년 만에 낸 용기
추측하건대, 재심 과정에서 다시 되풀이될지도 모를 모욕과 능멸이 두려웠을 것이다. 1990년 영화가 나온 뒤로도 사회 담론은 여전했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어린이를 협박해 살해에 가까운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죄인 손정우에게 고작 1년6개월의 형을 선고하는 판사가 여전히 있다. 어린이날에 자기 아들이 강도, 살인, 강간 미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서 미국 보내지 말아 달라는 청원을 올리는 손정우의 부친이있다. n번방 피해자에게 여전히 빌미를 준 죄를 묻는 세상이 있다. 이 속으로 또 들어설 엄두를 내기가 쉽겠나. 그래도 그는 2018년 시작된 미투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와서 보면 이 두 사건은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다. 24년 만에 법원은 결과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했지만, 다시 32년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사회 상식은 이미 이 사건이 무죄일 뿐 아니라 국가가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대가 그만큼 밝아진 것이다. 법원은 시대에 슬쩍 묻어가면 안 된다. 판결로 ‘잘못했다’고 명확히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도 그냥 잘못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저지른 2차 가해를 다 사과해야 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여성에게 아무렇게나 해도 되던 시절이 이미 갔다는 것을 법원의 입으로 말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