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핑계로 우리 기본권 침해 말라”…독일 ‘저항 2020’의 외침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0 11: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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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反코로나 외치는 ‘저항 2020’ 세력 확산
녹색당 등 기존 정당 당원 수 넘어서

5월9일 토요일, 독일 전역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베를린·뮌헨·프랑크푸르트·슈투트가르트·쾰른 등 여러 도시에서 적게는 몇백 명부터 많게는 몇천 명의 사람들이 광장과 시내에 모였다. 경찰의 총동원 인원 역시 수백 명에 이르렀고, 베를린에서는 30명 정도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날의 모토는 친환경이나 난민 문제가 아닌 ‘반(反)코로나’였다.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 간 접촉을 금지한 상황에서 이 사람들은 왜 굳이 길거리에 나서게 된 걸까.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순간부터 독일에서는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루머가 떠돌았다. 중국 우한의 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바이러스라든가,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이유가 5G 기술 때문이라든가, 또는 사실 빌 게이츠가 백신을 이용해 인류를 좌지우지하려는 음모가 포함돼 있다든가.

다양한 음모론과 헛소문들은 일부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거쳐 각종 언론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주장들이 나올 때마다 그동안 대다수 독일 시민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며 비웃거나 혀를 차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이 돌연 거리로 몰려 나가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5월9일 독일 로어삭소니주의 한 여성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조치로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마스크를 쓴 채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9일 독일 로어삭소니주의 한 여성이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조치로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마스크를 쓴 채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 아닌 ‘모임’, 정체성 논란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화 주제인 ‘저항 2020’을 언급해야 한다. 저항 2020은 간단히 말해 현 상황에 대해 불만과 회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 정부가 각종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심한 무력감을 느낀 하노버 출신 빅토리아 함이라는 평범한 인물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녀는 ‘저항을 하고 싶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이 사이트를 통해 라이프치히에 사는 변호사 랄프 루드비히의 연락을 받았다.

둘은 유명 인사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SNS에서 명성을 떨치던 이비인후과 의사 보도 쉬프만이 합류하게 되면서 이 모임은 본격화되었다. 보도 쉬프만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일반 독감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지 않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인 셋은 지난 4월, 저항 2020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창당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5월3일부터 해킹 시도 등 다양한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더 이상 사이트를 통해 추가 가입자를 받을 수 없게 됐지만, 그 전까지 이미 10만 명 넘는 사람이 사이트에 접속해 정당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들의 기조는 ‘시민들이 원하는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존 정당과는 달리 자신들은 시민과 가깝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로 시작됐지만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군사력’ ‘동물 보호’ ‘지속 가능성’ ‘세금법 개정’ ‘언론의 자유’ 등 이미 사회 전반의 다양한 가치를 주장하며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갑작스레 생겨 여러 굵직한 가치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저항 2020의 정확한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스스로는 ‘정당’으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 사람들도 정당으로 칭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정당으로 분류되기에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단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당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의 ‘강령’이 있어야 하는데, 저항 2020에는 그게 없다. 또 하나, 전문가들은 익명의 기부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당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독일 정당은 기부금 운용에 있어 수입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데, 현재 저항 2020에서 하는 방식은 투명성 부분에서 기존 정당과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지지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면서 정식 정당으로 창당하려는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공식적인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기존의 좌파당·대안당·녹색당 당원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이 ‘모임’ 혹은 ‘정당’의 관심도와 중요성을 충분히 방증하고 있다.

 

난민·환경 이어 코로나로 분열 맞은 독일

저항 2020과 연대하는 사람들, 혹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 독일 정부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자유를 제한한다고. 코로나 사망률은 실제로 높지도 않고 매년 유행하는 독감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식당들이 영업을 중단해야 하며, 왜 박물관·미술관 등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아야 하고, 왜 개인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느냐고 말이다.

독일의 경우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 주변국과 달리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높지 않고 오히려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축에 속한다. 그렇기에 시민들에게는 코로나의 위험성이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러한 비판을 가능케 한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의 다양한 바이러스 학자와 의사들도 다양한 연구 결과나 자료를 내세우며 코로나의 위험성에 대해 끊임없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즉 어떤 전문가의 정보를 주로 접하느냐에 따라 코로나의 위험성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역시 최대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데도, 현재 베를린 대학병원 샤리테에 근무하는 바이러스 전문가 크리스티안 드로스덴의 의견에만 온통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 독일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 그 때문에 저항 2020 창립 멤버인 쉬프만과 같은 의사가 드로스덴과 다른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을 때 많은 독일 시민이 힘과 신뢰를 실어줬던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반발에 대해 독일 주류 언론들은 연일 힐난한다. 5월6일 독일 공영방송 저녁 뉴스에선 편집부장 라이날드 베커가 정부의 판단에 회의를 갖는 시민들을 ‘정신병자’ ‘이성을 상실한’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취해진 정부의 조치들은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해 내려졌으며 충분히 증명돼 타당한데, 일부 음모론자와 우익분자들의 선동으로 사람들이 비이성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항 2020을 비롯한 반(反)코로나 시민들이 극우의 언어를 차용하고 있으며 매우 선동적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저항 2020과 목소리를 같이하는 시민들은 “언론에서 이들을 그리는 그림이 기존 대안당 지지자들을 대할 때와 동일하다”고 반발한다. 이러한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멍청한 우익분자’가 돼 버린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국가 위기 사태에선 그저 국민은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는 게 옳은 걸까. 정부는 위기라는 이유로 어느 선까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건전한 비판과 음모론의 경계는 또 어디에 있을까. 독일 사회는 코로나로 인해 민주주의 가치를 비롯해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재고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난민·환경에 대한 문제가 아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다시금 독일 사회가 분열의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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