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코로나 기회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7 13: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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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KBO리그 중계, 현지는 어떻게 바라볼까

KBO리그가 2020 페넌트레이스를 스타트했다. 대만 프로야구가 먼저 출발하긴 했지만, 리그의 규모나 위상을 감안했을 때 KBO리그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의 차이는 상당하다. 무려 20개 가까운 외신이 개막에 맞춰 국내 야구장을 찾았다. AP통신·포브스·USA투데이·보스턴글로브·ESPN 등 해외 주요 매체들이 구장을 찾아 현지 리포트를 전했다. 축구·야구 등 주요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북미와 유럽 국가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아직 리그 시작조차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프로 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선 프로농구 NBA가 선수의 감염으로 조기 종료했고, 메이저리그도 7월 개막 얘기가 나오고 있다. 프로축구리그가 주류를 이루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최근 개막설이 나오던 영국 프리미어리그도 선수 감염자가 나오며 다시 모호해졌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일본의 KBO리그 라이브 중계가 관심을 끌었다.

미국 최대 스포츠 채널인 ESPN은 하루 한 경기를 생중계로 진행하고 있고, 일본은 유무선 플랫폼 스포존을 통해 하루 2경기를 역시 라이브로 중계하고 있다. 특히 ESPN의 경우 관련 뉴스 및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도 내보내고 있다. 물론 KBO에 소정의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중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과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 익숙한 미국 현지인들에게 KBO리그는 어떻게 다가서고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5월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한 외신 기자가 프로야구 개막전을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한 외신 기자가 프로야구 개막전을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전역 커버하는 최고 스포츠 채널로 생중계

그동안 미국 내 KBO 중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포·주재원·유학생 등 현지 한국인들을 타깃으로 한 중계 형태였다. 그에 비해 이번 중계는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자국 내 최고 스포츠채널을 통해 라이브로 나간다는 점에서 초유의 일이다. 메이저리그가 중단돼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현지 야구팬들의 야구 갈증도 심각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서 7개월을 커버하는 야구 중계가 사라지는 것은 편성상 심각한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10여 년 전 ESPN이 중계권료가 너무 오른다는 이유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소송까지 간 적이 있었다. 결과는 ESPN의 백기 투항이었다. 주 이유는 소송이 장기화되면 메이저리그 무중계로 편성에 큰 구멍이 생기며 결국 광고 유치에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ESPN은 중계와 하이라이트, 뉴스 등에 이를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KBO리그를 중계하는 현지 중계팀 모습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현장중계를 하지 않을 경우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대형 모니터를 보면서 중계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캐스터와 해설자 2명이 자택에서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면서 원격 중계를 한다. 경기 중간중간에 과거 KBO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나 한국 야구 관련자들과 인터뷰도 진행한다. 아직은 방송 초기여서 경기의 흐름을 쫓는 전통적인 중계 방식보다 자신들의 야구와 다른 점과 KBO리그 소개에 집중한다. 또한 그들에게 익숙한 선수들 소개에 열을 올린다.

이번 시즌 KBO리그 외국인 선수는 팀당 3명씩, 총 30명이다. 이들 중 LG 트윈스의 로베르토 라모스, KT 위즈의 멜 로하스 주니어를 빼고는 모두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다. 미국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선수들이 한국에서 많이 뛰는 것도 관심거리다. 또한 이대호·김현수·황재균 등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과 나성범·양현종·김하성·김재환 등 이번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도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접점이 만들어져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속칭 ‘빠던’이 이들에겐 상당히 큰 흥밋거리였다. 일본식 용어지만 ‘빳다를 던지다’는 말인데 현지 용어로는 ‘Bat Flip(배트 플립)’이라고 불린다. 우리에겐 타자가 홈런을 치고 배트를 보란 듯이 집어던지고 당당히 베이스를 일주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행위다. 야구 규칙상 문제는 없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가 홈런을 치고 배트를 던지는 행위는 상대 투수 및 팀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하나의 전통으로 뿌리가 깊고, 이런 행위를 한 선수에게는 다음 타석에서 몸 맞는 공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메이저리그에서는 보편적이다.

필자는 지난 2012년 KIA 타이거즈에서 잠깐 뛰었던 투수 호라시오 라미레즈가 입국한 날 그와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KBO리그에 대한 그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한국 타자들은 배트 플립이 보편적이니 감안하라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생각해 보겠다는 답을 주었다. 과거보단 많이 유연해졌지만 그들은 배트 플립을 어린 시절 리틀야구 때부터 금기사항으로 배워온 것이다 보니 우리 스타일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다.

 

“새벽에 방송되는 중계 시간대가 큰 장애”

과연 미국에서 얼마나 KBO리그를 시청할까도 관심거리다. LA에 거주하며 무역업을 하는 교포 윌리엄 김은 중계 시간대가 문제라고 했다. “한국 시간으로 평일 저녁 6시 반이면 미 서부 시간대로 새벽 2시 반이니 시청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교포일수록 관심도가 떨어지고, 주로 주재원이나 유학생과 같이 최근까지 국내 야구를 접했던 이들이 주 시청자인 듯하다”고 했다. “현지인의 경우도 중계 시간대가 큰 장애 요소이고 야구 관계자나 그쪽 관련 비즈니스 종사자가 보는 정도인데, 그것도 시간대가 맞는 뉴스나 하이라이트 쪽 시청이 많다”고 한다.

뉴욕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는 배아무개씨는 미국에서 취업하기 전까지 국내 야구의 열렬한 팬이었다. “근무 시간대가 유동적이라 시청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뉴욕 지역에 창궐하는 코로나19 여파로 근무시간이 늘어나 아직 시청은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재 지역 분위기도 그렇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KBO리그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학교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 혹은 은퇴자 중에 종종 KBO 야구를 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ESPN은 이번 중계를 앞두고 KBO리그 수준이 미국 마이너리그의 더블A와 트리플A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들의 판단이 옳건 그르건, 또 자신들에게 익숙한 선수가 늘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KBO리그 그 자체와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더구나 중계 시간대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메이저리그가 시작되면 다시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출발이라도 이렇게 미국 현지에 우리 야구가 소개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국내 스포츠계에도 의미 있는 첫 발자국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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