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도시권 구상과 개성 도시재생, 그리고 DMZ평화협력지대[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 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7 11: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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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의 국토 비전을 그려보자

동해북부선을 연결한다고 한다. 지난 4월27일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서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이 열렸다. 이는 동해북부선 남강릉~제진 사이 단절 구간 110.9km의 조기 착공을 가시화한 것으로서, 이 구간은 한반도 종단 동해선 철도 중에서 유일한 단절 구간이다. 이 사업은 국내 건설사업이라 유엔이나 미국의 대북제재와 무관할 뿐 아니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 횡단철도(TCR), 만주 횡단철도(TMR) 연결에 관심이 높은 북한·중국·러시아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촉매 구실을 기대할 수 있다. 제진역에서 북측 최남단인 감호역까지는 불과 10.5km다. 동·서독의 통일과 같은 방식보다는, 남북한이 서로를 인정하며 동반 발전하는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이라고 이해된다. 철도는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는 동맥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DMZ평화협력지대’ 건설을 발표한 바 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70년 군사적 대결이 낳은 비극적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변모했다. JSA(공동경비구역), GP(초소), 철책선 등 분단의 비극과 평화의 염원이 함께 깃들어 있는 상징적인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이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평화, 생태, 문화와 관련한 국제기구들을 유치해 국제평화협력지대로 조성하자는 제안이다.

이 사업은 판문점과 개성공단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국제기구, 환경·관광 지원 기능, 개성공단 등 경제특구 지원 기능 등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다. 이런 기능을 지원할 인력들의 거주와 활동을 위한 주택 및 편익시설들이 배치돼야 할 것이다. 국제기구 종사자들이 거주하고 활동하자면 상당한 수준의 주거·편익·공공시설들이 공급돼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규모 있는 도시개발이 필요하다. 구상 중인 고속도로와 철도역세권을 활용해 수도권으로부터의 접근성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2018년 4월17일 프레스센터에서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회 발촉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2018년 4월17일 프레스센터에서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회 발촉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서울-평양 대도시권의 비전

우선 개성공단 재개가 기다려진다. 개성공단은 군사적 대치 속에서도 경제교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방증으로서 경제공동체 실현의 시금석이다.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확장될 경우 북측은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대료와 사용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 사업을 시작하던 20년 전과 달리 북한 당국은 ‘사업시행의 셈’에 밝아졌고, 공단에서 우리 기업이 얻는 이득을 예상해 보고 또 멀지 않은 파주 지역의 땅값을 비교해 볼 것이다. 개성공단을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개성시 도시재생을 통해 혁신인력이 거주할 수 있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개성에는 고려시대의 국자감으로 이어지는 성균관대학이 있으며 공과대학도 개설돼 있다. 개성공단의 첨단화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을 지원하는 일은 개성공단의 첨단화뿐 아니라 북한의 경제회생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은 지구상에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다. 불과 70년 전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극명하게 다른 도시로 변화했다. 중국과 베트남처럼 개방·개혁이 이뤄진다면 평양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평양으로의 인구 집중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다. 부산, 대구와 같은 제2, 제3의 도시로 불릴 만한 곳이 없고 산업도시라 할 청진, 원산, 함흥의 기반시설은 취약하다. 평양으로의 급격한 인구 집중은 서울이 겪어 온 주택·교통·환경 문제 등 고질적인 도시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평양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 있어 서울의 경험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다.

하노이나 베이징과 같은 사유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는 확산된다. 직장과 주거의 선택,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면 도시는 광역화되고 시민들의 통근거리는 길어질 것이다. 토지와 주택의 사유화는 도시 토지이용의 분화(分化), 도심의 상업공간화, 광역화라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베이징과 상하이, 베를린과 모스크바 등 옛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변화다. 물론 평양의 사유화는 서울의 사유화와 같은 소유권의 사적 소유(privatization)가 아니라 베트남과 중국처럼 이용권의 거래(marketization)에 따른 사유화에 가까울 것이다.

현재 반경 5km, 300만 인구의 도시 평양은 빠른 시간 안에 1000만 평양대도시권으로 커질 것이며 그에 따라 심각한 도시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국유화된 토지에 그린벨트를 두르고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해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하면서 기존 평양 인구는 중심도시에 유지하는 ‘평양대도시권 성장 관리방안’을 그려보자.

서울과 평양을 잇는 고속철도 역사는 평양 대개조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서울은 1000만 대도시로 커지고 나서 한참 이후에 고속철도가 들어오면서 고속철도 역세권의 효과를 도시계획에 반영할 여유가 없었다. 평양의 고속철도 역세권은 런던의 킹스크로스(King’s Cross)역과 같은 초역세권으로 건설하고 공공주택과 교육·문화·복지시설과 같은 공공재를 공공기여로 확보해 가는 도시개발 전략을 제안할 수 있다. 역세권 개발 시 공공기여를 확보하는 도시 관리의 노하우를 북측에 전수함으로써 도시정책의 남북교류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에도 삼성역과 같은 복합환승센터와 판교의 스타트업밸리, G밸리와 같은 테크시티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인천공항과 같은 확장 가능한 국제공항의 새로운 입지도 필요하겠다. 평양의 역사도심은 고구려 시대의 국내성, 70년간의 사회주의 수도의 역사가 깃든 장소다. 서울의 4대문과 달리 역사도심으로서의 성공적인 보전이 이뤄질 수 있는 도시 관리의 노하우도 전수해 주면 좋겠다. 서울의 경험과 노하우, 베이징과 하노이의 사례는 평양의 미래를 그려보는 밑그림을 제공해 준다.

시진핑의 징진지(京津冀)는 베이징-톈진-허베이를 연결해 1억1000명의 대도시권을, 아베의 메가시티리전은 도쿄-나고야-오사카를 리니어 신칸센으로 연결해 6500만 명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구상이다. 성장지역을 초고속교통망으로 연결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혁신 잠재력을 높이는 대도시권 전략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미래국가전략이다. 평양의 미래에 더해 서울-평양 대도시권의 비전을 그려보자.

 

‘짧은 셈’보다는 ‘큰 꿈’을 꾸자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은 전 정부와 달리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교류하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동북아 철도공동체’다. 서울과 평양 간에 철도를 연결하는 일에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언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또 이렇게 힘든 일을 함으로써 어떤 이득이 있을지 따져보게 된다. 그런데 육로로 평양을 거쳐 베이징, 울란바토르, 모스크바,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연결되는 그림을 그려보면 ‘짧은 셈’보다는 ‘큰 꿈’을 꾸게 된다. 섬보다 더 고립된 국토를 벗어나 대륙으로 확장된 국토는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관을, 기업인들에게는 새로운 시장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할까. 도시계획학자라 비핵화, 대북제재 완화 등 정치 분야에는 문외한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과거에 그러했듯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 그 길을 평양대도시권 구상, 개성시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DMZ평화협력지대 구상 등의 비전플랜을 통해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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