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샤넬이 만든 진풍경…럭셔리 열병과 소비 사회의 함정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0 16: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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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럭셔리 브랜드 회사 샤넬이 한국에서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백화점 매장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일부 백화점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먼저 상품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 런’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 백화점에서 진풍경이 벌어진 것일까. 왜 이렇게 그들은 럭셔리 상품에 열광할까.

1960년대 독일 사회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사람은 자신의 상품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자동차, 음향기기, 고급 주택, 주방 도구에서 영혼을 찾는다”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상품의 소비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 꿈, 환상을 위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돈이 전통 사회의 신분을 해체하면서 럭셔리 상품이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착각을 갖게 된다. 인스타그램 시대에 레스토랑과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부자 체험을 했다는 기분을 제공한다. 외모 지상주의가 확산되면서 성형수술, 피부 관리, 네일아트가 새로운 쇼핑 리스트에 올라간다. 럭셔리 핸드백을 몰래 반입하려다 공항에서 벌금을 내야 하는 속물은 무의식처럼 소비의 욕망, 꿈, 환상을 좇는다.

대중소비사회에서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동등하게 부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층이 엄격하게 존재한다. 지나친 사치와 극단적 빈곤이 공존한다. 대중매체가 끝없이 내놓는 새로운 즐거움, 소비자에 대한 신격화, 럭셔리 상품에 대한 숭배의 결과는 상징폭력이다. 속물이 된 중산층이 부자를 모방해 과시소비에 탐닉하는 동안 가난한 사람에 대한 멸시도 커졌다. 속물들은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에도 반대하고, 복지 지출의 확대도 거부하고, 자녀가 부유한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한다. 소비의 양극화는 결국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고대 시대에 과소비는 부러움과 불만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치 금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쏟아지는 상품 광고의 홍수를 보면, 정부의 규제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제한하는 것은 무력해 보인다. 소비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불가피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소비는 광고를 통해 촉진되고, 기업은 엄청난 광고비를 대중매체에 뿌리고, 모든 사람은 소비의 강박에 휩싸인다. 애덤 스미스가 소비는 모든 생산의 유일한 종말이자 목표라고 지적했듯이, 소비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직업과 노동보다 소비와 여가를 통해 다른 사람과 구별하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구는 포스트모던 자아의 공허한 내면을 표현한다. 대중매체와 광고를 통해 소비의 미학화가 이뤄지면서 상징적 위계질서가 공고화된다. 사람들은 생산과 분배의 열등한 지위가 소비를 통해 가려지거나, 대체되거나, 심지어 우월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빠져든다. 소비가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 것이다. 정신적 만족이 인간의 행복에서 중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차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소비의 쾌락 대신 진정한 의미의 삶의 기쁨과 정신의 고양을 느끼는 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탄소 배출, 지나친 쓰레기,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하고, 지구적 사회정의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생활방식을 바꾸자는 주장도 울림을 가지고 있다. 소비주의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속물들이 세상을 망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분노의 외침이 필요한 시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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