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싫어도 통합당은 지지 안 해!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8 08: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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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패 이후 계속되는 미래통합당 지지율 폭락의 비밀

한국의 보수정당이 휘청거리고 있다. 5월8일 원내대표로 대구 지역 5선 당선자인 주호영 의원이 선택받았지만,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4월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통합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참패를 당했다. 지지층들은 실망했고 보수 유권자들은 통합당에 대한 가치 부여를 쉽사리 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선거 참패에 대한 원인 분석이 쏟아지고 있는데, 핵심적 진단은 지난 2016년 총선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데 있다. 2016년 20대 총선 전만 하더라도 당시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은 절반 이상 당선을 자신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180석 가까이를 확보한다는 절대 낙관적인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제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옥새 들고 나르샤’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을 풍자하는 유행어다. 공천은 지지층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고 선거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 이후 주어진 4년 동안 보수정당은 계속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면치 못했고, 새누리당은 두 번이나 개명을 해 통합당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한 정당에 대한 국민 반응은 싸늘했다. 정당이란 모름지기 지지층들의 결집이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보인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에 지지를 철회하는 ‘샤이(shy) 보수층’은 급격히 늘어났다. 반면에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대까지 치솟았고, 여당 지지율 역시 그 격차를 압도적으로 벌리고 있다. 통합당의 지지율은 정반대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정당 지지율의 기본 속성은 지역·세대·이념 기반의 결집이다. 통합당은 현재 이 세 가지가 모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5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경욱 통합당 의원이 투표관리관의 날인 없이 기표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비례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경욱 통합당 의원이 투표관리관의 날인 없이 기표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비례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이후 PK, 오히려 민주당이 지지율 앞서

먼저 통합당은 ‘지역’부터 무너지고 있다. 그 지역은 바로 부산·울산·경남(PK)이다. PK 지역은 오랫동안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하고 난 후 PK는 보수정당의 든든한 지역 기반이 되어 왔다. 하다 못해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 출마 후보가 등록을 하고 난 후 선거운동에 거의 나서지 않아도 당선되는 지역이다. 그만큼 보수정당의 기반이 튼튼한 지역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통합당이 압승을 거둔 곳이다. 총선 결과야 그렇지만 총선 이후 지역 정서는 속속 달라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5월6~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선호하는 정당’을 물어본 결과 민주당 46%, 통합당 17%였다. 통합당의 전국 지지율은 민주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PK 지지율이다. 통합당의 지역 기반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이 오히려 9%포인트 더 높았다(그림①). 이쯤 되면 지역 기반으로 인정해 주기도 어렵다. 지지층이 이탈하는 형국이다.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통합당의 지역 기반이 무너지고 없는 추세다.

두 번째로 통합당 지지율이 폭락하는 비밀은 ‘50대층’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50대는 보수 연령대로 인식돼 왔다. 그렇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연령대가 상향되면서 달라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와 보수 대결 구도의 분수령으로 인식되는 ‘캐스팅보트 세대’는 40대가 아니라 50대였다. 50대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선거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중간 연령이 5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4·15 총선에서 민주당의 다수 후보는 운동권으로 불리는 586세대였다. 즉 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다. 접전지가 많았던 수도권에서 50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는 당선되기 어려웠다. 또래 집단에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50대가 무조건 보수라는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나 가능했던 설명이다. 그럼에도 통합당은 세대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했다.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50대층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통합당보다 무려 20%포인트나 더 높았다(그림②). 심지어 60대 이상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통합당보다 2배 가까이 더 높다. 연령대가 높으면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이론조차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통합당 기반은 지역뿐만 아니라 세대까지 무너진 모습이다.

셋째로 통합당 지지율이 폭락한 비밀은 ‘이념’에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당의 정체성은 매우 중요하다. 진보적 성격인지 보수적 성격인지 구분된다. 통합당은 그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을 보더라도 보수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보수 지지층만 결집하더라도 통합당의 경쟁력은 언제든 과반 의석에 가까이 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예상 가능한 지지층은 결집되지 않았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많은 지지층은 보수정당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롭게 혁신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했다. 그렇지만 4년여 기간 동안 거의 변화는 없었고 실망만 이어졌다. 2016년 총선 패배 이후 2017년 대선은 물론 2018년 지방선거까지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보면서 지지층들은 ‘샤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 직전 유승민 의원의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당했지만 시너지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거에 이기는 공식은 빤하다. 자기 지지층에 중도층까지 끌어들이는 일이다.

중도층에서 통합당 지지율 고작 11% 그쳐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중도층에 ‘선호하는 정당’을 물어보았다. 중도층에서 민주당은 44%나 되는 데 반해, 통합당은 고작 11%에 그쳤다(그림③). 선거 참패의 원인을 분명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건 중도층에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무려 30%나 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결코 통합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통합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당 지지율은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기초체력이다. 정당 지지율이 낮아지는데도 원인 파악을 하지 못한다면 무책임한 일이다. 경쟁력 있는 정당은 지역·세대·이념 기반이 최대로 넓어야 한다. 4년 전 20대 총선 패배를 ‘환골탈태’의 교훈으로 삼지 못한 통합당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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