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급하다고…” 개학에 불편한 시선 보내는 영국민들
  • 방승민 영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4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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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6월 점진적 수업 재개 결정…교사 95% “학교 문 여는 일 걱정”

최근 유럽 전역의 코로나 사태가 정점을 지나면서 각국 정부들이 국가 정상화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영국도 교육 정상화를 시도한 덴마크를 모델 삼아 6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학교 수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6월 개학은 유치원 및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나머지 학년, 중·고등학교 순으로 이뤄진다. 입시를 앞두고 있는 졸업반의 경우 온라인 원격수업과 더불어 필요에 따라 6월1일부터 면대면 수업을 일부 재개할 예정이다.

학부모를 비롯한 교직원, 의료진은 감염률이 높은 현시점에 개학을 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5월10일 발표에서 6월1일을 기점으로 전국 학교들의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영국 교육부 장관 개빈 윌리엄스는 취약계층, 그리고 위험한 가정환경에 처한 아동에게는 오히려 학교가 더욱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며 이와 같은 정부의 발표를 지지했다. 런던정경대 연구진은 평균적인 학업 성취율을 보이는 학생이 4주 이상 수업을 받지 않을 경우 학업 성취율이 하위 3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하며 이러한 정부 결정을 뒷받침했다.

영국 정부가 6월1일 점진적 개학을 발표하면서 유치원·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REUTERS
영국 정부가 6월1일 점진적 개학을 발표하면서 유치원·초등학교마다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REUTERS

교육 당국 “교실 수 늘리고 학생 수 줄여라”

영국 정부 아동위원회도 더 이상의 등교 지연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백신이 나와 100% 안전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으며, 아이들의 경우 성인에 비해 코로나 감염 증상이 양호하다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가정환경과 경제력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감염 방지를 위한 강력한 안전 대책을 마련한 후 등교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은 5월17일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업이 재개되더라도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며 이와 관련한 지침이 준비돼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현시점에서 개학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학·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해 수업 재개에 문제가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던 지난 몇 달간 필수 근로자로 분류된 의료진과 병원 근로자의 아이들이 다닌 유치원 내에서 감염 사례가 전무했음을 밝히며, 수업이 재개돼도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순차적 개학을 통해 등교하는 학생 수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면 전염이 확산되는 위험을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소규모 수업 진행, 청소 강도 및 빈도 높이기, 손 씻기, 교내 위생 기준 강화 등 추가 안전 방안을 실행한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그러나 기존 방침대로 환자 발생과 같은 응급 상황이 아닐 경우 교내 일상생활 중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권고하지 않고 있다. 등교 시 별도의 체온 검사 역시 하지 않을 예정이다. 감염돼도 발열 증세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감염자를 구분하는 데 체온 검사가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 정부는 정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준수해야 할 사안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학교별로 개학 전 안전 평가를 마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6월1일 수업이 재개되면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기존의 한 반을 둘로 나누어 총 15명 미만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도록 한다. 또한 교실 내 책상 간 거리는 최대한 멀리 띄워야 한다. 이후 순차적으로 개학하게 될 중·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분반 원칙이 적용되며 2m 거리 두기 원칙에 따라 학생 간 거리를 최대한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교실 내 책상을 재배치할 예정이다. 교직원 수 또는 교실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원칙을 따를 수 없는 학교의 경우, 학생들을 주변 학교에 보내 수업을 받게 하며 저학년을 우선순위에 두고 고학년부터 이웃 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받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침을 짜놓았다.

개학 후 교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해당 학생과 가족을 포함한 동일 학급 나머지 학생들,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자가격리를 하도록 한다. 동시에 영국 정부가 개발해 도입을 앞두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웹사이트, 핸드폰 기반의 코로나 확진자·접촉자 추적 프로그램을 활용해 발 빠르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이다. 단 감염자 발생 시 예방 차원에서 해당 학급, 학년 혹은 학교 전체를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할 수도 있으나 일단 해당 학교를 휴교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발열 체크 없고 교내에서 마스크 안 써도 돼

그러나 여전히 영국 내 하루 추가 확진자 수가 3000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영국 의사협회를 비롯한 학부모, 학생, 그 외 많은 이들의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국의 대표 교사 노조인 NASUWT가 3만 명가량의 교사 노조원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 정도만 6월1일 개학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나머지 95%는 이른 개학으로 인한 불안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영국 내 또 다른 교사 연합회인 국립교육노조(NEU)는 정부의 6월1일 개학 방침은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사와 학부모들은 안전한 개학과 수업 진행을 위해 개학 전후 교직원들에 대한 주기적 감염 검사가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의사협회도 “현재 영국 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이 매우 높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6월 개학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동시에 비록 아동의 경우 감염 후 증상이 성인보다 경미하지만 어떤 경로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동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 탓에 잉글랜드 지역 내 1500여 개 초등학교가 6월1일 개학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리버풀이나 하틀풀 등의 경우 지역 내 감염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 개학 일정을 정부 방침보다 최소 2주에서 1개월가량 미룰 예정이다. 그 외에도 브리스톨·사우샘프턴·뉴캐슬 등을 포함한 많은 지역이 개학 시점을 학교 재량에 맡기거나 안전이 확보된 시점에 다시 정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이러한 불안을 감지한 듯 뒤늦게 추가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당분간은 적절한 사유 없이 학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등교시키지 않아도, 기존에 부과되던 벌금을 물리지 않기로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가 요구하는 개학 재연기 방침은 일단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개학 이후에도 당분간 영국 내 코로나 확산 우려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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