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예술인·아싸‧싱글맘 등 비주류의 화려한 국회 입성기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6 14: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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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당선인 김미애·김예지·문정복·임오경·장혜영이 밝힌 포부
남달랐던 삶, 남다른 의정 보일까

재산 22억원을 가진 55세 법조인 남성. 6월 문을 여는 21대 국회 당선인 300명의 평균상(像)이다. 국민의 대변인이 정작 국민의 평균과 거리가 멀다는 건 우리 국회를 향한 오랜 지적이었다. 그 때문에 평균에서 한참 벗어난 ‘비주류’ 당선인의 등장에 늘 기대가 모였다. 이번에도 전형적인 남성 엘리트 틈바구니에서 생존해 국회 문턱을 넘은 각 당 이색 당선인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여럿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 5인을 꼽아, 이들의 SNS·저서·인터뷰에 담긴 삶의 기록과 시사저널에 직접 전한 국회 의정활동 포부를 함께 소개한다.

ⓒ김미애 제공

“아이들의 대변인 되겠다” 여공 출신 싱글맘의 신선한 반란

김미애 미래통합당 당선인

부산에서 여성 후보 최초로 당선된 김미애 당선인은 이번 총선 도전자 중 단연 가장 특별한 이력서를 가진 인물이다. 여공 출신의 국선 변호사이자 입양한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맘. 하나도 갖기 어려운 이색적인 타이틀이 여럿인 그에 대해 다른 당에서도 “이만한 스토리를 가진 후보 찾기 힘들다. 의미 있는 공천이다”란 평가들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17세부터 부산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이후 작은 잡화점과 초밥집을 운영하던 그는 억울하게 영업정지를 당한 경험을 계기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29세 나이에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자신같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이유에서였다. 이후 5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해 변호사가 된 김 당선인은 다짐대로 주로 가난한 소년·여성의 변호를 맡았고, 15년 동안 국선 변호만 762건을 했다.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는 아이 셋의 엄마다. 친언니의 자녀 둘과 자신이 직접 입양한 아이 한명을 혼자 키우고 있다. 저녁에 갑자기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한 일, 아이 유치원 생활기록부 아빠 이름 칸을 놓고 한참을 고민했던 일 등 김 당선인은 본인이 겪은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자 한다. 그는 “약자들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이 의지가 가장 크다. 특히 약자 중 약자인 아이들은 누군가가 반드시 대변해 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해야 할 든든한 부모조차 없는 아이들에게 대변인이 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누구보다 관심 있을 입양 제도와 관련해서도 “국내 입양이 현저히 적어 해외 입양이 주를 이루는 상황인데, 해외 입양이 마냥 부정적으로만 비춰져 안타깝다. 국내 입양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의 허점을 개선해 많은 아이들이 가정 속에서 사랑받고 자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여성·장애·예술인 모두 대변할 최초의 국회의원

김예지 미래한국당 당선인

17대 국회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에 이은 두 번째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김예지 당선인은 여성 그리고 예술인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그가 가져올 변화에 더욱 기대를 갖게 했다. 당선 직후 이미 김 당선인은 그동안 불가했던 국회 회의장 내 시각장애인 안내견 출입을 허가토록 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국회로 출퇴근하는 최초의 안내견이 된 ‘조이’에 대해 그는 “눈 역할을 해 주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다. 친구이자 가족이자 내 신체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고 강조했다.

조금씩 어둠 속 세상에 대비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린 김 당선인은 이미 그 전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꿨다(책 《피아노 앞에서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김예지》 중). ‘사락거리는 원피스 소매의 스침과 구두의 또각 소리’를 좋아하던 그는 이후 그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무대에 올라 연주했고, 2014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그 와중에 바이애슬론 선수로도 활약하며 체육계에도 관심을 가져왔고 한국장애인예술인협회 이사를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우리 국회가 처음 맞는 ‘여성·장애·예술인’인 김 당선인은 이 세 가지 타이틀 중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겠다 다짐한다. 특히 “정치 입문 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연과 인식 개선 활동을 해 오는 과정에서 내 노력만으로 장애인에 대한 권리 보장을 제대로 이뤄내기 힘들겠다는 한계를 느꼈다”는 그는 “의정생활 끝까지 ‘장애인 삶의 질 향상’이라는 대명제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국회 입성 후 가장 먼저 ‘장애’와 ‘예술’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장애 예술인들의 지원책을 제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킬 계획이다. ‘역경을 이겨냈다’는 표현 또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해 달라는 김 당선인은 “4년 동안 모든 편견을 바꿔놓긴 어렵겠지만, 그 변화의 흐름에 작은 물결이라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정복 제공·민주당 시흥갑 홈페이지 

고졸 출신 4급 보좌관에서 국회의원으로 인생역전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눈부시게 빨래를 삶아서 널고 아이 키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제정구 의원님을 만나고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정치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정복 당선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다섯 편의 ‘문정복 이야기’ 중 첫 편 첫 문장이다. 1992년 이웃과 소일 삼아 시작한 제 의원의 선거운동원 활동은 이후 30년 이어진 그의 정치활동 첫걸음이었다. 이데올로기도, 시민운동도 뭔지 몰랐던 그에게 선거운동 중 마주한 새로운 세상은 충격이었다. 선거 내내 선거운동 일당도 반납하며 매일 자원봉사에 나선 이유였다.

당시 제 의원 선거캠프 총무였던 백원우 의원이 2007년 고졸 학력의 문 당선인을 자신의 4급 보좌관으로 발탁한 일은 정치권 내 적잖은 파란이었다. 스스로 ‘40대 고졸 아줌마’가 보좌관이 된 건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곧 사건이 되는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다음 대선까지 문정복처럼 헌신할 사람들을 찾고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책 《시흥을 위한 시간》 중)”는 백 의원의 평가는 문 당선인의 지난 노력을 증명한다.

보좌관 생활 후 시의원에 두 차례 당선되고 2017년 선임행정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며 여세를 이어간 그는 마침내 과반의 득표로 국회의원 배지까지 따내며 극적인 계단식 승리를 이뤄냈다. 문 당선인은 “어려움을 직접 체득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 많은 문정복들이 나오도록 평범한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자신이 느껴온 ‘공정한 사회’의 전파를 각오했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정치로 두 번째 ‘우생순’ 꿈꾸는 금메달리스트 출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은 이제 ‘정치 국가대표’가 돼 또 한 번 우생순을 기록하길 꿈꾼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전성기를 이끈 임오경 당선인은 19대 국회에서 배지를 단 태권도 챔피언 문대성 전 의원 이후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핸드볼을 시작해 곧장 국가대표 꿈나무로 언론에 오르내린 인재 중 인재였다.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로 뽑힌 후 한국체육대학교 졸업, 일본리그 진출, 이후 감독 역임까지 체육계에서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이번 선거 훨씬 전부터 여야 불문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좀체 결단을 내리지 못하던 그는 2016년 최순실 딸 정유라 사건과 이후 미투 등으로 추문의 온상이 돼 버린 체육계를 보며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책임을 느꼈다고 말한다. 특히 핸드볼을 비롯해 비인기 종목 지원금이 삭감되는 설움을 지켜보며 ‘결국 정치만이 답인가’ 하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체육계 성폭력 사각지대를 없애고 비인기 종목을 지원하는 등 그는 ‘체육계 대변인’이 되길 자처하지만, 그만큼이나 20여 년 워킹맘으로서 겪은 고충 또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8년의 공백을 딛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건 임 당선인은 “출산 후 딸을 바구니에 넣고 다니며 우유를 먹이고 재운 뒤 코트에 들어가 훈련을 했다. 훈련 도중 아이가 깨면 교대로 아이를 돌봐주며 지옥훈련을 이어갔다”고 회상했다(2015년 여성체육포럼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말라’ 강연 중). 그는 이러한 경험은 본인에게서 끝나야 한다며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영화 《어른이 되면》 스틸컷·연합뉴스
ⓒ영화 《어른이 되면》 스틸컷·연합뉴스

‘약자의 정체성’ 가진 정의당의 기대주

장혜영 정의당 당선인

“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2018년 중증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장혜정씨와 함께 사는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장애인 인권운동가 장혜영 당선인은 이제 영화계 혜성에서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는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생의 탈시설을 삶의 변곡점으로 꼽는 그는 자신이 온몸으로 겪은 ‘돌봄 노동’의 부담을 알리며 ‘돌봄의 사회화’를 외쳐왔다.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유튜브 계정은 그가 동생과의 생활을 공유하며 장애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온 주요 통로다. 지난해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YMCA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지도자상’,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둘째 언니’와 더불어 장 당선인을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이별 선언문’이다. 2011년 그는 자신이 다니던 연세대를 자퇴하며 대학의 무한경쟁 체제를 지적하는 대자보를 ‘연애편지’ 형식으로 붙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교보다 더 좋은 게 있어 학교를 그만둔다”고 썼던 그는 실제 학교 밖에서 더 큰 가치를 찾아냈고, 이를 더욱 힘 있게 실현하기 위해 국회 문을 두드려 열었다.

장 당선인은 시사저널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갖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그것만으로는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서 정치를 마음먹게 됐다”며 스스로를 “불평등 현장과 연결돼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는 탈시설 장애 당사자의 가족이고 여성이자 청년이며 또 무주택자이기도 한, 약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기득권의 눈이 아닌 불평등을 겪는 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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