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자살 리포트] 위기의 10대 “어른한테 털어놓으면 나아져요?”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5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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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8년째 청소년 사망 원인 1위 …상담 위주 자살 대책, 패러다임 바꿔야

‘우리 자연사하자. 우리 자연사하자. 혼자 먼저 가지 마.’

2018년 듀오 ‘미미시스터즈’가 발표한 노래 《우리, 자연사하자》. 곡은 계속 ‘죽음’을 말한다. 다만 ‘자연스러운 죽음’을 권한다. 노래를 만든 가수 ‘큰 미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노랫말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죽자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죽지는 말자는 거예요. 자살하지 말고 같이 살아내 보자. ‘멋진 인생을 살자’가 아니라 그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자연사를 권하는 시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부자연스러운 죽음’은 뿌리 깊은 사회문제다. 정권마다 자살률 감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지만,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은 2020년에도 유효하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10대 청소년의 높은 자살률이다. 사회가 ‘나이 든 세대’의 자살만을 논하는 사이,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은 계속되고 방치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과연 누가, 왜,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과 의학·상담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러스트 오상민
ⓒ일러스트 오상민

늘어난 자살, 위험학생군도 270%로 증가

자살은 우리나라의 오랜 난제다. 역대 정권 그 누구도 자살 문제를 풀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자살의 악몽은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은 5년 만에 상승했다. 상승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였다. 2018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26.6명으로 전년 대비 2.3명(9.5%) 증가했다. 하루 평균 자살 사망자만 37.5명에 달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단연 1위다.

정부는 애써 침착한 모습이다. 먹고살기 어렵던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정확한 원인은 짚지 못하고 있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자살률 증가폭이 각각 20%, 40%대로 굉장히 높았다”면서 “그 정도 수준이 아니어서 경제적 원인과 연결해 말할 수 없다. 이번 통계는 사망신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거여서 사망 원인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의 해석처럼 최근 자살 문제는 과거처럼 ‘경제난’ 하나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특히 노인이나 중장년층의 경우 각종 만성질환부터 은퇴 후 불안감, 가족 간 갈등, 실직 등 각종 문제가 얽히고설켜 자살을 낳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만 이 같은 해석의 대부분은 기성세대가 처한 환경에 국한돼 있다. 문제는 자라나는 10대다. 사회로 미처 나오기도 전, 삶을 버거워하는 10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청소년(9~24세)의 사망 원인 1위는 8년째 ‘극단적 선택’이다. 2018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청소년은 10만 명당 9.1명이었다. 같은 기간 안전사고와 암으로 사망한 청소년은 각각 10만 명당 4.6명, 2.9명인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우울감을 호소해 자살위험군에 속한 학생 수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 및 조치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년 자살위험 학생은 2만3324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과 비교했을 때 270%가량 폭증한 수치다. 자살위험 학생 수는 △2015년 8613명 △2016년 9624명 △2017년 1만8732명 △2018년 2만3324명으로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 수도 줄어들지 않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청소년 자살 시도율은 △2015년 2.4% △2016년 2.4% △2017년 2.6% △2018년 3.1% △2019년 3.0%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0대 남학생보다는 10대 여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가 더 잦아지고 있다. 10대 남자 청소년 자살 시도율은 △2015년 2.0% △2016년 2.0% △2017년 2.0% △2018년 2.2% △2019년 1.9%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10대 여자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은 △2015년 3.0% △2016년 2.7% △2017년 3.2% △2018년 4.1% △2019년 4.0%로 남학생보다 높았다.

상담 나선 어른들이 내뱉는 ‘답답한 답’

몸에 상처를 내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10대들. 시사저널은 심리상담센터와 병원, 종교시설 등을 통해 10대들의 이야기를 취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10대들을 만났다. 이들의 사연은 제각기 달랐다. 자살·자해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었고, 그런 ‘범주화’는 오히려 10대들의 특정 상황에 대한 편견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실제 가정이 화목해도, 불화해도, 부유해도, 가난해도 우울증을 경험하는 10대가 나왔다. 그렇다면 왜 10대는 희망이 아닌 절망을 말할까. 시사저널은 서면과 대면 인터뷰를 토대로 가상의 청소년 박영훈군(가명·19)과 김지연양(가명·18)을 설정했다. 이들의 고민과 분노 안에서, 10대들의 우울감을 분노와 좌절로 전환시킨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작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영훈군은 학교를 가면 자꾸 싸움을 벌였다. ‘일진’이어서가 아니다. 친구의 말 한마디, 작은 접촉에도 쉽게 화가 났다. 그러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다만 자살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가 어느 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건, 영훈군에게 해법을 제시한 선생님의 상담 때문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상담을 한다고 저를 불렀는데, ‘뭐가 요즘 힘드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알면 말했겠죠. 정말 몰라서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그러더니 ‘학교에 있을 때가 좋을 때’라면서 ‘정신과 상담도 방법이긴 한데 그러면 괜히 소문나고 안 좋다. 밖에 나가 볼(공)이나 차면서 풀어’라며 웃으시더라고요. 그날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쉽게 답을 말하시는 것 같아서…. 저에게 답을 듣고 싶으면 저를 뭐 하러 불렀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 순간 화가 너무 나더라고요.”

지연양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해를 했다. 처음엔 호기심에서였다. 우연히 SNS에서 본 한 자해 사진이 계기가 됐다. 물론 아팠다. 자해가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디서 오는지 모를 ‘막막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자 지연양은 ‘사람들’을 가해자로 짚었다. 그는 ‘그냥’과 ‘같아요’라는 말을 계속 섞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을 이었다.

“그냥 ‘비교’가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냥 일상이 비교의 연속이잖아요. 성적도, 외모도, 아빠 직업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쓸데없는 궁금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입술에 틴트를 바르면 친구가 물어봐요. 어떤 브랜드냐, 얼마냐. 그럼 그게 또 괜히 스트레스죠. 얼평(얼굴 평가)도 심하니까 꾸며야 하는데 엄마는 또 간섭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스트레스가 되니까… 그냥 ‘나 좀 내버려둬’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면 영훈군과 지연양은 이제 나아진 걸까. 그들을 괴롭게 했던 ‘어른들’ 또 ‘사람들’은 어떻게 바뀌길 원할까. 영훈군은 “정답을 말해 줄 것도 아니면서, 저를 단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렇게 상담하려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지연양은 “선생님한테 이 얘기를 털어놓는 순간, 아싸(아웃사이더) 인증하는 거 같아서 싫어요. ‘꼰대’ 같은 말을 할 거면 무시하는 게 차라리 도와주는 거 같아요”라고 했다.

 

생명지킴이 100만 명 양성?…정부 대응책에 찍힌 물음표

가상의 인물로 풀어냈지만, 실제 상담 및 인터뷰 답변이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 ‘경보음’이 됐다. 그러나 학교도 주변 어른도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되레 상담이 청소년들의 우울감과 분노를 더 심화시키는 단초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가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다루는 주요 방법은 ‘상담의 활성화’다. 매년 ‘학생자살예방대책 시행계획’을 수립, 상담 중 자살 및 자해 감지 시 유관기관에 연계하는 24시간 청소년 위기문자 상담망을 운영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자살예방도우미 육성사업, 이른바 ‘생명지킴이’ 역시 상담 서비스의 일환이다. 생명지킴이란 자살 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해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기관, 전문가)에 연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생명지킴이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개발한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복지부는 생명지킴이를 매년 100만 명 이상씩 양성하겠다는 계획으로, 현재 군인과 교사 등 231만 명이 생명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특히 청소년 상담에 임하는 교사의 경우 ‘전문 상담가’에 준하는 역할을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명지킴이 역시 주변인들의 ‘자살 신호’를 인지하는 역할을 할 뿐 전문 상담가는 아니다. 교육시간 50~180분을 이수하면 생명지킴이 자격을 얻는데, 청소년의 ‘자살 신호’를 알아채고 적절한 대응을 할 만한 역량을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생명지킴이 자격을 이수한 한 교사는 “학교에서 누군가는 (생명지킴이가) 돼야 한다길래 교육을 들었다”며 “분명 학생들을 관리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학생들의 ‘자살 신호’라는 게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를 상담이나 반응만으로 인식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전문 상담 서비스’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현주 한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의학적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우리 아이는 괜찮다, 내지는 정신과적인 치료 자체가 나중에 아이를 망치는 게 아닌가, 이런 거부감 때문에 못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보호자 동의가 없다 하더라도 위험이 감지됐을 때는 아이들한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에게 ‘책임’ 돌리기 전 ‘구조’부터 바꿔야”

자살은 오답이다. 다만 ‘틀렸다’고 외치기만 해서는, 10대들의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 경쟁과 이에 함몰된 교육 시스템, 입시 상담에 특화된 교사는 있지만 심리 전문가는 없는 학교의 현실 등이 10대들의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자살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더불어 청소년들의 마음을 옥죄는 교육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혁진 정의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집행위원은 “청소년 자살 문제를 상담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개인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정상 청소년’을 범주화하고 ‘비정상 청소년’을 가려내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자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결국 청소년이 자살을 택하는 건 행복하지 않아서다. 근시안적인 해결이 아닌 구조를 바꿔야 한다.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청소년 자살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0대 자살 문제는 기성세대가 풀어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내린 섣부른 ‘진단’은 분명 10대에겐 독이 된다. ‘미미시스터즈’의 노래 《우리, 자연사하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는 마.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너무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지 마. 일단 내가 살고 볼 일이야. 힘들 땐 ‘힘들다’ 무서울 땐 ‘무서워’ 말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정신적 고통 등을 주변에 말하기 어려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자살예방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언론도 청소년 자살에 책임 있다…‘베르테르 효과’ 아닌 ‘파파게노 효과’

한편, 최근 잇따르고 있는 아이돌 등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유명인을 자신과 동일시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탤런트 최진실이 사망한 다음 날 자살자 수는 78명에 달했고 5일째 되는 날에는 90명 가까이 목숨을 끊었다. 당시 하루 평균 자살자 수는 30명 안팎이었다. 복지부는 중앙자살예방센터의 2013년 분석 결과를 인용해 유명인의 자살 후 2개월간 자살자 수가 평균 606.5명 증가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언론이 일명 ‘파파게노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파파게노 효과란 언론이 사망한 이들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하게 보도해 자살을 감소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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