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30대 재벌가 오너 지분 가치 변화 공개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6 10:00
  • 호수 15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 재벌 울고, 신흥 재벌 웃었다
이재용·정의선·구광모↓ vs 이해진·김범수·김정주↑

우리 경제의 내일을 책임질 재벌가 차세대 경영인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해부터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의뢰해 국내 재벌의 보유 지분 현황을 파악해 왔다. 올해 4월20일 기준 30대 그룹 오너 일가 297명의 지분 가치를 조사한 결과 200억원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60세 이하 오너 경영인은 모두 5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비교해 일부 순위 변동이 있긴 했지만 순위권 내 인물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삼성·현대차·LG가(家) 후계자들이 금·은·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순위에 가장 많은 인물을 올린 곳은 범LG가였다.

재벌들의 보유 주식 가치는 지난해 1월2일과 비교해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순위에 이름을 올린 이들 대다수의 보유 주식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에 따른 언택트 문화 확산으로 유통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 하락률이 높게 나타났다. 지분 가치가 오른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에 신흥 재벌 중 상당수는 전년 대비 지분 가치가 오른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 사태라는 위기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굳어져온 국내 재벌기업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재벌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신춘성
ⓒ시사저널 신춘성

이재용·정의선·구광모, 금·은·동메달

올해 보유 주식 가치 1위는 예상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조7433억원)의 차지였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과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와 관련한 소환조사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자 이 부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지난 5월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4세 경영 포기와 무노조 경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2위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2조4830억원)이 올랐다. 그러나 정 부회장 역시 걱정이 큰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 불황으로 주력사인 현대·기아자동차 주가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올 1분기에는 신차 효과와 환율 도움으로 실적 추락을 겨우 방어했다. 문제는 더 이상 꺼내들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유럽·인도 등 주요 시장에서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2분기엔 실적 악화 폭풍을 속수무책으로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3위에 랭크된 구광모 LG 회장(1조4495억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코로나로 경영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각종 악재가 줄줄이 터지고 있어서다. 실제 올해 5월7일 인도의 LG폴리머스 공장에서 가스 누출사고가 벌어져 대규모 인명피해를 냈고, 사고를 수습하기 전인 같은 달 19일에는 충청남도 서산의 LG화학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임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5월15일에는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LG전자 본사가 경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 10위권 대부분은 삼성가 인물들로 채워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공동 4위(1조3134억원)에 올랐다. 또 범삼성가 인물로 분류되는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4115억원)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064억원)은 각각 9위과 10위였다. 10위권 내 절반이 범삼성가 일원인 셈이다.

전체 순위에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한 집안은 범LG가였다. LG그룹의 구광모 회장과 그의 사촌동생인 구형모 LG전자 과장(39위·578억원)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리스트에 포진했다. 그중에서도 GS가 일원이 6명으로 가장 많았다. 분모가 많아 개인에게 돌아가는 파이가 적은 만큼 전반적인 순위도 낮았다. 이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인물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20위·1626억원)이었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 허서홍 GS에너지 전무(30위·1073억원)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GS칼텍스 사장(31위·1021억원)도 30위권에 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보유 지분 가치 대부분 하락

이들 외에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의 장남 허철홍 GS칼텍스 상무(43위·538억원)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부사장(52위·289억원), 허진수 GS에너지 이사회 의장의 장남 허치홍 GS리테일 부장(53위·269억원),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의 장남 허주홍 GS칼텍스 부장(56위·236억원) 등은 40위권 밖에 머물렀다. 다른 범LG가인 LS그룹에선 구동휘 LS 전무가 49위(296억원)에 올랐다. 범LG가에 이어 두산가(9명)와 현대가(7명) 순으로 순위에 오른 오너 경영인 수가 많았다.

반면에 한 집안당 한 명씩만 순위에 오른 곳도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아들 준영씨(26위·1270억원)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의 장남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32위·820억원),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 최성환 SK네트웍스 상무(32위·1248억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장남 이성훈 부영주택 부사장(45위·443억원) 등이 그런 경우다.

이번 조사에서 순위권 내 인물의 보유 지분 가치는 대부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의 한파를 맞아서다. 이번 조사에서 금·은·동메달을 목에 건 이재용 부회장(-12.54%)과 정의선 부회장(-17.97%), 구광모 회장(-18.31%) 등도 지분 가치 하락은 피하지 못했다.

그중에서 직격탄을 맞은 업종은 유통이다. 업황 불황으로 정체기를 겪던 중에 코로나 사태로 외출과 대면을 꺼리는 언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실적 악화가 가중됐다. 이 때문에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조사 대상 중 지분 가치가 가장 큰 폭(-51.45%)으로 하락했다. 그의 형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지분 가치도 37.29% 낮아졌다. 이들 외에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 남매의 지분 가치 하락률도 각각 36.60%와 15.29%에 달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21위·1616억원)도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보유 지분 가치의 42.37%가 증발했다.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유가가 급락하면서 업황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의 1분기 실적은 연결 기준 487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두산그룹의 경우 최근 두산중공업 경영 위기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태로 건설 경기 악화까지 겹치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두산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도 크게 휘청이고 있다. 실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29위·1104억원)과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36위·734억원), 박진원 두산메카텍 회장(38위·580억원), 박석원 (주)두산 부사장(44위·444억원),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46위·402억원), 박혜원 오리콤 부회장(47위·392억원),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48위·322억원), 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공동 50위·296억원), 박형원 두산밥캣 부사장(공동 50위·296억원),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55위·266억원) 등 두산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 가치는 20~30%가량 하락했다.

이 밖에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로션 부사장(16위·2956억원)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공동 24위·1340억원),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공동 24위·1340억원) 등 한화가 삼형제는 물론 순위권 내 영풍 오너 일가 전원의 지분 가치도 모두 전년에 비해 낮아졌다.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포토·뉴스뱅크이미지·뉴시스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포토·뉴스뱅크이미지·뉴시스

지분 가치 오른 이들은 대부분 ‘착시효과’

물론 순위권 내 모든 인물의 보유 지분 가치가 하락한 건 아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차녀 정명이 현대커머셜 부문장(12위·3243억원)과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18위·1919억원) 부부의 보유 지분 가치는 각각 7.18%와 7.38% 상승했다. 특히 정 회장의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보유 지분 가치는 47.66% 올랐다.

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세 자녀인 은민·준범·하민(공동 40위·567억원)씨의 지분 가치도 각각 10.50%, 부영그룹 이성훈 부사장도 4.85% 상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보유 주식 대부분이 비상장사라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비상장사 주식 가치는 자본총액에 지분율을 곱하는 식으로 단순 산출했다. 코로나 사태의 영향이 주식 가치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효성가는 지분 가치가 소폭 하락에 그치거나 일부 오르기도 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회장(7위·6528억원)은 0.45% 하락하는 데 그쳤고,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31위·892억원)과 삼남 조현상 효성 사장(6위·6587억원)은 각각 1.99%와 2.46%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지난해 1월2일 효성 오너 일가의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로 지주사인 (주)효성 주가가 4만7950원까지 낮아졌다. 그해 9월23일 (주)효성 주가는 8만8100원까지 치솟았고, 올해 1월까지도 7만원대 중반을 유지해 오다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올해 4월20일에는 6만6100원까지 낮아졌다. 결국 효성가 삼형제의 보유 지분 가치도 코로나 사태의 영향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GS가의 허세홍 사장도 지난해 대비 보유 지분 가치가 5.11% 올랐다. 이는 허 사장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급락장에서 자사주 매입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올해 2월과 3월 지주사인 (주)GS 주식 44만1110주(약 190억원)를 매입했다. 허 사장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정유경 총괄사장과 정의선 부회장도 올해 4월20일 이전 각각 137억원과 817억원을 들여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지난해 보유 지분 가치 하락을 방어하지 못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23위·1501억원)과 이경후 CJ ENM 상무(33위·835억원)의 지분 가치도 전년 대비 각각 23.33%와 40.72% 상승했다. 이는 승계작업 과정에서 보유 지분 가치가 올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CJ가 남매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지분을 소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를 그룹 지주사인 CJ(주)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CJ(주) 지분을 확보했다. 그 결과 이 부장과 이 상무의 CJ(주) 지분율은 각각 2.75%와 1.19%로 상승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13위·3126억원)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14위·3111억원), 조현민 한진칼 전무(15위·3104억원) 등 한진가 삼남매의 주가는 무려 600% 이상 올랐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지주사인 한진칼 주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폭락장에서도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신흥 재벌들은 되레 코로나 특수 누리기도

이처럼 국내 전통적인 재벌가는 코로나 사태로 고전하고 있지만 신흥 재벌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코로나 특수를 누린 이들도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언택트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들 회사의 쇼핑·간편결제·콘텐츠 등 핵심 사업부문은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이로 인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의 4월20일 기준 보유 지분 가치는 1조1402억원으로 전년 대비 31.91%나 증가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같은 시기 보유 지분 가치가 전년 대비 47.90% 오른 3조670억원을 기록했다.

언택트 시대와 궁합이 잘 맞는 게임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정부가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와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는 모멘텀에서 게임을 혁신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한다는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망도 밝아졌다. 이로 인해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의 보유 지분은 올해 4월20일 기준 8556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8.97% 늘어났다.

셀트리온도 코로나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은 올해 2월부터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고, 7월말까지 인체에 투여할 임상 물질 생산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로 인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올해 5조185억원으로 전년 대비 11.66% 상승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